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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ㅈㅅㅁ가 '벌목후유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두세번 곱씹어보니 표현이 참 그럴 듯 하다. 한 두달 만에 다시 찾은 도장리. 찬우물 막걸리는 역시나 맛있었다. 산마을학교가 인가학교이기 때문에 교생실습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에 혹했다. 학교를 찾아가보니 교생실습 신청서도 있다. 부속 초등학교로 교생을 나가서 함께 수업듣는 사람들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깝깝한 정장 입고 한달을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는 공기좋은 곳에서 한달 살면서 부대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찌될랑가.. 참,,

 

* 그냥 생각없이 보려고 <연애의 목적>을 다운받아 봤는데, 보고나선 또 심란해져버렸다(영화 스포일러 있으니 감안하세요). 흔히 말하는 '성폭력 사건'이 떠올라서 보는 동안 힘들었다. 사실 박해일 이름을 보고 본 영화였는데 특히나 영화 초반부에는 박해일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여성에 대해 '유부남 홀리는 가정파괴범'이나 '성폭력 피해자'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뭔가 불편한데 그 불편한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한 여성이 그 공간의 물을 흘리는 불결한 존재로 되어버리는 건 뭐 이제 놀랍지도 않지만, 그 같은 여성이 어느 순간 갑자기 또 성폭력 피해자라는 지위를 획득하면서 갈등의 양상이 뒤바뀌며 종결되는 모습에서 계속 찝찝함이 남는다.

박해일이 선생 자리를 짤리고 나서, 강혜정이 도시락 통을 설거지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한 2,3년 전의 나는 이해를 못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여성의 감정노동이 선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믿던 시절과 그렇지 않는 지금의 차이랄까. 강혜정이 박해일을 다시 찾아가 박해일의 기분을 맞춰주고 함께 자는 장면을 다른 친구는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나이를 먹을 수록 세상에 항상 옳은 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가치판단은 더 모호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기분. 그렇다고 모든 게 맞다는 식의,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무르게 사는 것 같진 않은데. 머리가 커질 수록 맘에 안 드는 것은 더 강렬해지고, 그래서 하나 잘못 걸리면 그거랑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근데 반대로 딱히 싫은 게 아니라면 그냥 이 말도 맞고 저말도 맞는 것 같고, 논쟁에 섣불리 뛰어들질 않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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