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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마지막 밤

6월의 마지막 밤

 

어제는 일요일. 홈스테이에서의 마지막 날. 조나단과 조나단의 10년지기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가든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다. 나를 위해 특별히 베지테리안 소시지도 준비해주시고, 정말 화창한 날씨에 맛있는 음식,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오후 5시쯤부터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해서 밥을 먹으면서는 와인으로 전환, 몇 병을 비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무튼 제대로 취해서 새 플랏으로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누워 잤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홈스맘은 그냥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는데, 마음이 살짝 흔들렸지만 꾹 누르고 플랏에서 얼른 또 새로 정을 붙이기로 마음 먹었다.

 

어제는 기분 좋게 적당히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침에 어찌나 머리가 아프던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숙취였다. 덕분에 또 학교를 빠졌다. 지난 목요일 빠지고 금요일 나가고 다시 월요일 오전 수업을 빠지고. 이거 원 참. 지금 여기가 얼마짜리 학굔데 하는 생각은 항상 나중에 든다. 이번 주 다음 주는 결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착실한 자취생이 되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중이다. 거의 혼자 사는 거나 다름 없어서 편하긴 하지만 사람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울컥 울컥 올라와서 나 몰라라 밥도 안 챙겨먹을까봐 스스로 걱정이 되긴 하지만, 오늘 처음 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나니 맘이 조금 놓이는 기분이다. 세탁기도 처음 돌려봤는데, 어떻게 다루는지 대충 파악이 된 것 같다.

 

월요일 저녁엔 항상 웰커밍 파티가 있는데, 하필 프렌치라는 펍에서 늘 하기 때문에 가기가 망설여진다. 알바 지원 폼을 작성해서 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인걸 보면 얘네 문화로 보건데 나를 고용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꼭 게이처럼 보이는, 때로는 인상 좋아 보이지만 때로는 차가워 보이는 알바생이 날 알아보면 어쩔까 싶어서 프렌치에 갈 엄두가 안 난다.

 

내일 저녁은 나의 러블리 조나단이 올드타운에 있는 한 펍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만만한 사람 좀 꼬셔서 그 펍에 같이 가볼 생각이다. 겸사겸사 올드타운 분위기도 파악을 해서 만만한 알바 자리 좀 물색해봐야겠다. 올드타운에 있는 어느 가게에서 한국 여자분이 알바를 하는 곳이 있다던데, 그런 가게는 유색인종에 좀 더 관대할 듯 하니 더 알아봐야겠다.

 

플랏에 인터넷을 깔아달라고, 돈을 따로 낼 의사가 있다고 랜드로드한테 말했더니 오늘 랜드로드가 가격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초기 설치비가 한국돈으로 약 22만원, 그리고 나선 월정액이 4만원 돈이 약간 넘는단다. split 하기로 했으니 한달에 2만원 정도씩 내면 되는 셈이다. 설치비가 문젠데, 내 상식으론 설치비는 집주인이 내야 맞지만, 눈치가 설치비도 내가 절반을 부담해얄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돈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파온다.

 

정말 하루하루 사는 게 일이다 일. 당장 내일은 뭘 하게 되고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 찬다. 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것, 어쩌면 이게 내가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또 하루하루 치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새로 정착한 플랏에서 일주일 이주일을 살다보면 조금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라고 기대해본다. 그때쯤 되면 인터넷도 설치가 되있을 거고 그럼 생각나는 한국 친구들한테도 연락을 해볼 수가 있겠지.



홈스테이를 떠나는 마지막 날, 가든에서 바베큐파티를 하다. 최후의 만찬도 아니고, 암튼 무진장 먹어댔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다음날 숙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는 조나단. 존레논 이매진을 부르는데 감동이었다.

 


플랏 들어와서 처음으로 해본 요리. 내 저녁이다. 홈스테이 맘의 식단에 영향을 받아 앞으로도 늘 샐러드와 마늘빵을 함께 할 것 같다. 나름 만족. 자신감도 붙었고. 히히

 




헤이스팅스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책. 피스라고 선명하게 쓰여진. 올해 출판된 책인데 피스마크의 기원과 그 동안의 역사를 많은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이제 서문밖에 못 읽었지만, 암튼 읽을 거리를 찾았는데 잘 된 것 같다. 생각보다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이 많은 것 같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하 1층에 따로 이쪽 방이 마련 되어있는데 한 사람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이 동네도 인문학의 위기인걸까? 살짝 짐작해본다. 물론 지역 도서관의 접근성은 최고이다. 사람들도 책 정말 많이 읽고. 소설 쪽은 친숙한게 안 보여서 그런지 선뜻 손이 안 간다.

 


나의 러블리 홈스맘과 하우스메이트였던 빅터. 저 맛있는 음식을 이젠 먹기 힘들겠지. 흑. 홈스맘이 월요일 밤에 문자가 와서 나 없이 빅터랑만 저녁을 먹어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고 얘기해줘서 완전 감동. 조만간 또 한번 놀러가게 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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