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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4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수도자는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립은 공동체와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매 순간 형성되어 간다. 

 

절대 고독이란, 

의지할 곳 없어 외로워서 흔들리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당당한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수행자가 가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오묘한 도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 그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로 삼지는 말라는 뜻이다. 

자기를 바로 알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는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수행자'中.  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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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법정스님의 글을 읽게 될 줄이야. 지난 목요일에 같이 교생 나간 간호대 쌤 한 분이 대뜸 이 책을 빌려주셨다. 안 그래도 요즘 책 읽을 여유가 없었는데, 그래도 빌려주신 거라 짬짬히 틈 내서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다. 요즘 하는 고민이 관계에 대한 고민들이다 보니 눈에 확 들어왔나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이 책 제목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말이 보통은 '부자되세요'처럼 천박하게 들릴 때가 많아서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도 사실 잘 와닿진 않는 것 같다. 법정스님이든 틱낫한 스님의 글이든 이 쪽 글들은 그 글 자체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의미 전달이 직설적이기에 그다지 큰 감동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싶을 땐 차라리 괜찮은 소설책 한 권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mb가 자기도 법정스님 글을 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느낌. 베스트셀러나 관중 1000만을 동원했다는 영화는 오히려 더 안 보게 되는 심리처럼 법정스님 글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도 위에 베낀 구절은 묘하게도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와닿았다.

 

김훈태 쌤이 수감 중에 틱낫한 스님 글을 번역해서 내보내던 기억이 난다. 나도 언젠간 삘이 꽂혀서 이 쪽 글들을 독파할 때가 오게 되려나. 흠.

 

 

 

 

 

 

라디오를 듣다가 느낌이 팍 와서 바로 검색해봤는데 역시나 Phamie Gow의 음악이었다. Rackwick Bay. 이번 주도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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