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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9

* 금요일 저녁에는 올드타운 펍에 나가서 놀았다. 여기 4월부터 머물던 일본 친구와 같이 조나단 생일 파티가 있던 펍에 가서 같이 합류를 했다. 조나단은 결국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에서 잔 것 같진 않고,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술에 쩔어서 아마도 친구 집에 실려 간게 아닐까 싶다. 오늘 저녁엔 성대한 홈스맘이 준비한 성대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홈스맘은 금요일에도 반틈만 일하고 오후 내내 아들 생일 파티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도 아마 한시도 쉬지 못하고 구석구석 청소하려 저녁 준비 하랴 케잌 만드랴 정신 없어보였다. 캠브리지에 사는 딸 안젤리도 어제 여기 찾아왔는데 가족 세명이서 모여 수다떨며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보였다. 문득 울 엄마 아빠 생각이 나면서 서글픈 마음도 좀 들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막 내 생일이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 와서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여기는 한국처럼 9시 뉴스도 없고, 네이버나 다음처럼 포탈 싸이트 개념도 없고, 그냥 가족들 소소한 삶이 가장 중요한 일상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비비씨 뉴스에서는 미국 대선이 어떻고 영국 경제 상황이 어떻고 런던 어느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났고 등등 한국 뉴스와 다르지 않게 방송을 해대지만 뭇 사람들에게 그렇게 영향력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여기 사람들이 현재 삶을 더 충실하게 즐기는 걸지도.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자기 삶과 동떨어진 소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그런 응집력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liberal 한 사람들이니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사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랄까,,,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렵사리 설명을 하고 나면 상황 자체를 이해를 못하고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늘 받는다, 적어도 내가 함께 사는 호스트 패밀리에 한에서는 말이다.

* 서울에 있을 땐 해마다 귓전에 들리던 여의도 불꽃축제니 하는 걸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와서 난생 처음으로 불꽃놀이 구경을 했다. 1066년은 여기 사람들에게 중요한 연도인데, 윌리엄 대제?가 지금 영국 왕조의 시작을 연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흔히 '브이'라고 불리우는, 사진 찍을 때 손가락 모양이 여기서는 'peace'의 표시로 여겨진다. 그 손가락 모양 상태에서 손목을 안쪽으로 뒤집으면 'fuck you'와 같은 수준의 욕이 되는데 그 기원이 프랑스에서 건너오던 '적'을 상대하면서 활을 쏠때 사용하던 손가락에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적(아마도 노르망디?)에 포로로 잡히면 활을 쏘는 두 손가락이 잘렸기 때문에 그 두 손가락을 펴보이는 게 여기서는 상대를 모욕하는 심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암튼, 바다 건너 여기를 공격해오는 배가 보이면 바로 봉화를 쏘아 올려서 런던까지 소식을 알리곤 했는데, 최초 발견 시점부터 런던에 소식이 도달하기 까지 봉화로 걸리는 시간은 약 두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서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 두시간 남짓 걸리는데, 봉화의 속도가 꽤나 빨랐던 셈이다. 오늘 헤이스팅스 해변에서 있었던 bonfire & firework 의 역사가 바로 이 봉화 시스템이었다고 하니 꽤나 흥미로웠다. 매년 가을 이맘 때쯤 매주 토요일마다 봉화 길을 따라 도시를 이동해가며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거다. 오늘 어찌나 인파가 붐비던지, 이 마을에 사는 주민 모두가 나온 걸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천만이 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와 십만이 채 안되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의 인파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암튼 여기 와서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람들이었다. 하늘에서 연달아 색색깔깔 흩어지는 폭죽을 보면서, 10세기 즈음인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됐다던 화약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_-), 한편으론 사방으로 흩어지는 불꽃처럼 나도 저렇게 스러지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염없이 흩어지는 불꽃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똘똘 뭉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자아, 신념, 고집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너무나 진지하게 갈구하며, 가끔 자아 분열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원운동을 하는 것만 같은 내 모습과는 반대로 중심에서 최대한 멀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 아랫집 사람들과 자전거 여행을 다니면서 좋았던 기억 중에 하나는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던 기억인 것 같다. 처음 영국 건너와서도 최대한 긴장을 풀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즐겨보려고 의식적으로 더 맥주를 사다가 마시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화 상대 없이 혼자 마시는 술은 괜한 궁상과 센치함을 불러왔지만 말이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펍에 나가서 파인트를 두 잔이나 마셨고, 오늘 낮에는 여기 학생들 몇명과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맥주를 또 한 잔하고, 저녁에는 거나한 생일상과 함께 와인을 마셨고, 불꽃놀이에 가서는 보온병에 든 따뜻한 매실주를 마시고 그 뒤에는 다시 펍에 가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잔을,, 한 달에 한 두번 갈까 말까 하던 펍을 이틀 연속으로 가다니, 1파운드에도 벌벌 떠는 내가 3파운드씩 하는 파인트 한 잔씩을 이틀에 걸쳐 마셔대다니 참 드문 일이다. 이것도 여기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징후인 것일까.

* 12월 8일 저녁 9시 더블린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왕복 20파운드+공항 수속비8파운드+카드수수료 8파운드. 12월 15일 월요일 런던 컴백. 6개월 관광비자를 무사히 받게 되면 내년 3월까진 런던에서 별일 없이 머물게 될 것 같다.  후우






조커 복장의 조나단과 갱스터 안젤리. 여기 와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홈스맘이 손수 만든 생일 케이크,,







한국 돌아가면 여의도 불꽃축제에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불꽃놀이가 일본 친구 말로는 '하나비'에 비할 바는 못 된다고 하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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