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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7

오늘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2차 대전 종료 이후 영국이 군사적인 개입에 연루되지 않은 적이 단 2,3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식적인 전쟁이든 비공식적인 무력 행사 모두를 합해서 말이다. 여기 모병 광고를 보면 되게 얼핏 그럴듯한 멘트들을 날리는데 'power, money, career' 등의 가치를 내거는 것 같다. 실제론 흔히 말하는 '인생의 loser' 들이 마지막 선택으로 입대를 많이 한다고. 입대하면 첫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 훈련 중간 중간에 한달 정도씩 쉬는 텀이 있는데 그 기간 중에 할일 없는 직업 군인들이 술이나 마약에 많이 중독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11월 11일이었나, 얘네 remembrance day에 기념하는 건 양대 세계 대전이라고 한다. 2,3년의 기간을 제외하곤 수도없이 파병을 하고 군사분쟁을 겪으면서 죽은 군인이 적지 않을텐데 그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대 대전은 영국 사회에서 명예로운 전쟁으로 기억되지만 예컨대 한국 전쟁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에겐 흥미로운 발견이었던 게, 양대 대전에 참전한 군인은 모두 징병된, 하지만 국가를 위해 명예롭게 죽어갔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모병제로 바뀌고 갈수록 영국 군대는 (특히나 아프리카에서) 일종의 용병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죽거나 다쳐도 사람들은 그냥 당연한 일이려니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들은 월급도 충분히 받았으니 죽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논리랄까. 모병제가 운영되는 사회의 멘탈리티를 일부나마 맛본듯한 느낌이다.


* 왠지 이 화두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리저리 혼자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예전에 전쟁수혜자 모임에서 읽었던 정유진씨 글이 떠올라서 파일을 찾아냈다. 여전히 나에겐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니 좀 더 이해가 된 듯한 느낌도 든다.


"모병제 추진 논의는 군사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문제를 사회 구성원들이 고통을 둘러싼 관계에 개입하여 교섭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간주되는 그들’에게 군대와 관련되는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논의는 자업자득이라는 미명아래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을 스스로 간과하거나 묵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때의 간과와 묵인은 군사력에 의존한 국가안보에 대한 암묵적 동의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묵인은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고통에 개입하여 문제를 공론화/정치화하기 보다는 고통을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로 격리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습니다. 제도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베트남전에 미군의 정신과 의사로서 참전했던 스코트 펙은 “특정 집단을 ‘전문 살상 집단’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우리가 전쟁을 통해 누군가를 꼭 죽여야만 한다면 사회구성원이 ‘떳떳하게’ 자기 자신을 개입시켜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병제 보다는 징병제가 전쟁 억지 효과가 있다, (군대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군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복무기간을 대폭 줄이고 남녀 모두 참가하는 (전문화되지 않는 형태의)군대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1)

 “만약 우리가 징병제를 실시하여 의원들과 행정부 관리들의 자녀가 위험한 장소에 가게 된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대통령과 행정부는 결코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미 의회 세입위원회 위원장 찰스 랭겔 의원의 발언2)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서 마이클 무어가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의원들을 향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라”라고 입대 원서를 들이대자 의원들이 황급히 도망치는 장면에서, 왜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는지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전쟁 억지 효과가 있다는 스코트 펙의 지적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고통을 사회적인 것으로 제기하면서 구성원들이 그 고통과의 관계의 끈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성찰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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