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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onhall, Cork

영국에 재입국하며 비자를 다시 받기 위한 목적으로 고르던 지역 중에 당첨된 아일랜드. 더블린이란 이름을 이런 저런 연유로 많이 들어 왔기에 그렇게 쌩둥맞은 곳은 아니었다. 논술 제시문에 늘 인용되는 19세기 중반 감자 기근 사건으로도 친숙한 곳. 영어과 전공을 들을 땐 그렇게 지루한 수업 중에 하나가 영문학이었는데, 그 때 잠깐 듣고 잊혀졌던 제임스 조이스의 이름도 다시 기억에서 꺼내왔다. 더블린에 가면 '원스'에서 남자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그 거리를 가볼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은 찾아낼 수 있어서 너무 기뻤던.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에 체결된 뭐시기 협정 때문에 더블린 공항에서 받은 도장만으로 영국 관광비자 3개월짜리 밖에 받을 수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visa run'은 절반의 성공이 된 셈이지만 비자와는 별개로 아일랜드의 풍경들은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국에 와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다시 보면서 마지막 크레딧 올라갈 때 영화의 주무대가 Cork 라는 걸 알아냈다. 코크는 홈스맘의 쌍둥이 동생이 사는 곳. 아일랜드에 갈까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홈스맘이 먼저 자기 동생 사는 데 놀러가서 며칠 묵으라고 제안을 했다. 공짜로 먹고 잘 수 있는데 그런 고마운 제안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ㅎㅎ





홈스맘의 쌍둥이 동생 Tom 이 사는 집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난 처음 코크가 하나의 도시 지명인 줄 알았는데 하나의 카운티 전체를 이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더블린에서 코크 씨티까지 버스로 네시간 반정도.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서쪽 끝을 향해 1시간 반 정도를 가면 leap 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픽업을 나온 톰의 차를 타고 다시 10분 정도 깊숙히 들어가면 Unionhall 이라는 톰이 사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톰이 사는 곳은 이 마을의 중심지에서 다시 차로 5분 정도 또 들어간다.-_-;; 워낙 오지라 핸드폰 신호도 없고 텔레비전 수신도 안 되어서 약간의 보상금 이런 걸 받는다고 한다.

'leap' 을 거기 사람들은 '렙' 이라고 읽는데 나는 계속 '립'이라고 읽어서 버스 안에서 사람들한테 물어볼 때도 사람들이 못 알아듣곤 했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까봐 조마조마 했다.ㅎ 예전에 영국 군인한테 쫓기던 아일랜드 사람 한 명이 말을 타고 도망을 가다가 폭포를 만났는데 그 말 덕분에 폭포 맞은편으로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던 스토리에서 지명의 기원이 유래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입구 간판에는 말을 탄 사내의 그림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톰이 사는 지역인 'west cork' 는 예전부터 'beyond west cork, beyond the law' 라는 말이 있었다고. 영국을 상대로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태백산맥>에 그려지는 지리산 산자락과 빨치산이 떠올랐다.ㅎ 야트막한 언덕들이 쭈욱 펼쳐져 있는 모습들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나오는 풍경들과 비슷비슷해보였다.





지금은 공식교육과정에서도 영어가 사용되지만 곳곳에 아이리쉬 언어들의 흔적들도 많이 보였다. 집 앞 대문에 새겨진 아이리쉬.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톰의 차를 타고 해안을 따라 쭈욱 드라이브를 했다. 날이 약간 흐리긴 했지만 아일랜드의 겨울 치곤 나쁘진 않은 날씨였던 것 같다. 집들이 언덕 하나 넘어 하나씩 있고 그렇다. 독일 쪽 사람들이 집을 사서 별장으로 쓰는 집도 많다고 한다. 톰은 자기 손으로 직접 일을 하고 생계를 꾸리는 카펜터인데 얘기를 듣다 보니 이 동네 집 중에서 톰이 일을 안 가본 집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대학에 안 가고 바로 도제수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는 언제쯤 그런 기술을 배울 기회가 생기려나..

워낙 한적한 동네이다 보니,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오면 처음 만나는 게 이 곳 해안선이라 마약이 들어오는 주요 통로로 활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중남미에서 출발한 어마어마한 마약을 실은 배 한척이 바로 이 근처 해안선으로 접선을 시도했는데 이 곳 물흐름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배가 이내 곧 침몰되어서 결국 경비정에 의해 구조를 받고 바로 체포된 적도 있다고 한다.





흐릿하게 나온 톰과 front room의 모습. 진짜 장작을 갖다가 떼운다. 이번 겨울엔 보일러를 아예 떼우지 않는데 저 불의 열기로 front room은 무지 따뜻하고 아늑했다. 보일러를 떼우지 않아서 2층에 있는 침대방은 밤에 정말 추워 죽는 줄 알았다. -_-;;

집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데 다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고 붙이고 장식하고 한 거라고.. 이제는 더 이상 남 눈치 볼 필요없이 'please myself' 만 하면 되니깐 편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주말에 이사와서 방에 없는 이것 저것 중고싸이트에서 찾아 직접 받으러 여기저기 왔다갔다 했더니 어느 새 일요일 하루가 다 가버렸다. 12월 한 달 정도 떠돌아 다니면서 늘 'ready to pack and leave'의 자세로 살다가 앞으로 한 3개월 정도 눌러 살 공간이 생기니 그동안 억눌렸던 욕구가 슬슬 발동을 하는 건지 어느 새 방에 새로운 물건들이 생겼다.ㅎ 혼자 버스 타고 이동 하고 혼자 장 보러 가고 혼자 밥 해먹고 하다 보니 남 눈치 안 봐도 되는 해방감이 불쑥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친구든 애인이든 마음 맞고 눈치 안 봐도 되는 사람이 한 명 같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톰처럼 진정으로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키며 또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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