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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기의 진수

금요일 저녁, 서울에선 친구들이 생일 잔치 한다고 모여서 논다는 얘기에 새삼스레 부러운 마음과 묘한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선택해서 비행기를 탔고 여기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으면서 막상 또 사람들 소식을 듣고 그 곳에 같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으니 이건 앉아서 두 가지 욕구를 다 충족시키려는 거 아닌가. 아무튼 안드레아스 쥴리안 모두 각자의 집으로 퇴근을 하고 혼자 금요일 저녁의 사무실에 앉아있으려니 집중도 안 되고 나도 바로 집으로 향했다. 혼자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하나 보고, 거나해진 술기운에 일찍 잠을 청했다.

토요일 아침, 바깥 날씨가 너무 좋아 보인다. 봄이 벌써 다 온 것처럼만 느껴졌다. 여기에도 꽃샘추위 이런게 있는진 모르겠다. 이리저리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다가 카메라와 장바구니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테이트 브리튼을 향해. 템스강변을 따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걷는 것도 좋았고, 테이트 브리튼의 작품들도 기억에 남는다. 저녁에 돌아와선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김치전을 혼자 붙여먹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붙여본 지짐이 중에 가장 맛있게 붙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이런 기분에 와인이 아쉬워 또 홀짝홀짝. 저녁을 만들기 전에 혼자 거울을 보고 머리를 잘랐는데 썩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므흣하다. 시작부터 무대뽀로 막 자르긴 했지만  자르다 보니 좌우 균형 맞추느라 계속 조금씩 짧아지는 악순환이.. 다 맘에 드는데 다만 뒷머리는 마땅한 거울이 없어서 보지 못하고 그냥 감으로만 뚝딱뚝딱 잘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느낌에 윗머리 옆머리에 비해 뒷 기장이 기이하게 긴 것 같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 또 한번 도전해 보지 뭐... 암튼 오늘 하루를 정리하자면..혼자 자기 만족 하며 잘 논 하루인 것 같다.





집에서 걸어나가면 있는 버스 정류장. 2번은 빅토리아 역 방향으로 88번은 테이트 브리튼을 거쳐 웨스트민스터 방향으로..





런던 버스정류장의 표식. 이 정도면 무지 잘 갖추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를 알면 어떻게든 직접 찾아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어 있다.





테이트 브리튼 뒷 길 정류장에서 내렸다. 바로 앞에 있는 가든의 모습. 이름을 까먹었네.. 날도 따땃하니..한가한 정원의 분위기. 너무 좋았다. 책이라도 있었음 나도 벤치에 앉아 책이나 좀 읽는건데..





테이트 브리튼 바로 앞에 있는 템스강의 모습.. 날씨가 좋으니 모든게 다 이뻐보인다..





기분이 마냥 좋아져서 테이트 브리튼 바로 안 들어가고 강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웨스트 민스터도 바로 보이고..런던 아이도 보이고..햇살이 너무 하얘서 런던아이는 심지어 사진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앞 다리쪽으론 멀리서 봐도 관광객들이 한움큼씩 보였다





다리를 건너 강 맞은편으로.. 이 길 따라 쭈욱 걸으면 런던 아이도 나오고 사우스 뱅크가 펼쳐진다. 늘 뭔가가 있는 곳. 쭈욱 걸으면 워털루 역 더 가면 런던 브리지 더 가면 타워브리지까지. 자전거가 있었으면 한번 타고 쭈욱 따라가도 좋았겠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한두시간 정도 보고 나와 집 방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한 컷.. 여행객 신분으로 뮤지엄들을 돌다가 이제는 동네 주민처럼 슬슬 나와서 대애충 한번 보고 돌아갈 수 있어서 기분이 므흣하다. 세미나 2시간 넘어가면 힘들어듯 뮤지엄도 2시간 넘어가면 힘들어지는 기분이다.





정처없이 발가는 대로 돌아보다가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림. 이 그림이 전시된 곳 컨셉이 그런 거였다. 예전의 그림들에서 수줍은 듯 묘사되던 여성들이 어느 시점 부터 좀 더 자신감있게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런 그림들을 모아놓은 방이었다. 이 그림 설명이 흥미로웠다. 울타리는 다름 아닌 인간 문명의 경계를 상징하는데 여성이 서있는 자리가 바로 문명의 경계인 울타리라고..

Augustus John OM , Dorelia Standing before a Fence, 1903-4





오늘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작가 세실 콜린스의 그림 중 하나. 상상력이나 표현들이 4차원틱하면서도 은근히 이해가 되는 그림들이었는데..샵에서 엽서를 사려고 봤더니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었다..흑
이 작가의 문제의식이, 우리 인간은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순례자들인데 예술은 그 여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다른 때 이런 멘트를 들었다면 종교 냄새가 난다며 거부감부터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 그림들을 먼저 보고 설명을 읽고 나니 이상하게 공감이 되었다. 나무가 소재로 그려진 그림이 많아서 ㅁㅅ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더 엽서를 찾고 싶었는데..

Cecil Collins,
The Sleeping Fool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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