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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9
    2009/06/29
    나르맹
  2. 2009/06/28
    Outtakes from the Karate Kid Video by Jonny(2)
    나르맹
  3. 2009/06/25
    대한늬우스 영화관 상영에 반대하는 직접행동?
    나르맹
  4. 2009/06/25
    현재 이란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것, 비폭력저항(5)
    나르맹
  5. 2009/06/23
    후카이도 테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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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6/23
    " SWEET CHILD O' MINE " SHERYL C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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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10. 2009/06/04
    2009/06/04(4)
    나르맹

200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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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takes from the Karate Kid Video by Jonny

 

 

헤이스팅스에 있는 홈스맘 Ann이 대뜸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내서 내가 유명해졌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시 보았더니 조나단이 이번엔 가라테키드 뮤직비디오 NG모음? 버전 정도 되는 비디오를 다시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아주 잠깐 지나가긴 하지만 조나단과 내가 ukulele를 치고 있는 모습이 삽입되었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영국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헤이스팅스에 하룻밤 내려가 지내던 날 밤에 조나단과 둘이서 똑같은 곡을 계속 쳤던 것 같다. 앞엔 비디오 녹화버튼을 눌러놓고 말이다.ㅋㅋ 조나단이 이 때 찍은 영상으로 다음에 뭔가 하날 만드면 연락준다고 했는데 넉달 정도가 지난 지금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본 셈이다. 푸하핫.

 

Outtakes 를 보고 있자니 조나단의 호탕한 웃음, 내가 홈스테이 하던 집, 타운에 있던 프렌치스 펍, 그 쪽 지방 특유의 억양 등등 떠오르는 게 많다. 그냥 긴장이 풀리고 유쾌해진다. 조나단의 누나 안젤리는 이번 주 수욜에 드디어 쌍둥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쌍둥이 사진을 받아봤는데..

 

 

 

이름이 Nathan 그리고 Chloe란다. 아들 딸 쌍둥이..귀여운 것들..

 

 

조나단의 가라테 키드 원 뮤직비디오 감상은 유튜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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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늬우스 영화관 상영에 반대하는 직접행동?

사실 나는 780년대에 영화관에서 상영됐다던 대한늬우스를 직접 경험해본 세대가 아니다. 단지 황지우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나 김환태 감독의 병역거부 관련 영상에서 그 당시 모습이 차용되어 온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해보았다. 아 그리고 논술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사례로 언급을 해본적도 있었겠지.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땐 낯설기만 하던 일상들이 일주일도 채 안되어 다시 익숙해지더니,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들도 이젠 웬만해선 날 놀라게 하지 않는다. 사실 평화주의자를 자칭하는 자에게 맘에 드는 사회가 어디가 있겠냐만은.. 점점 더 숨을 조여오는 이 곳에 살면서 세상에 분노하기보다는 당장 내 관계의 문제, 먹고 살 궁리를 하느라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활동에 대한 힘이 불끈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이거 원. 그냥 생각없이 야구 응원하고 친구랑 술 마시고 늦잠자는 게 익숙하니..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개콘의 '대화가 필요해'를 빌려와서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을 한단다. 좀 웃긴 것 같다. 이럴 때마다 유인촌 같은 사람도 이해가 잘 안되고 이런 구상을 밑에서 담당하며 실무를 했을 공무원들도 어떤 사람들일지 참 궁금해진다.

 

용산에선가 어디선가 어느 경찰 간부는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에요' 라고 말을 했다던데. 자기는 단지 상부의 명령을 따르기만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한 나치 하 공무원들에 관한 역사적 교훈을 한국 공무원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님 알면서도 지금 자기의 밥줄이 더 중요하다며 끝없이 타협하는 것일까?

 

조직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차이는 엄혹한 세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이 너무 먹고 살기 힘든 곳이라 그런 공무원들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자기 밥줄이 잘리고 나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기대를 하기 힘든 곳이기에. 세계 경제11위의 국가에서 아직도 생존권 투쟁이 가장 큰 투쟁이 된다는 게 낯설지 않은 곳이니. 뭇 사람들의 처절/천박하고 도무지 여유없는 삶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착잡하다. '다 먹고 살자고 한다'는데 사실 내가 그 사람들 밥줄을 책임지는게 아니니 쉽게 뭐라 하지도 못하겠다. 난 그렇게 천박하게 살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근데 생계의 문제에 있어선 쉽지가 않은 것 같다(몇 천만원씩 벌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관에 보고싶은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여러번 고민해야 하는 빈한 삶을 살고 싶진 않으니까. 이런 내 욕구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아빠가 당신들의 삶에 있어 좀만  덜 처절/천박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튀지 않고 평균만 가자는 삶의 방식을 존중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앞장서서 권력에 충성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보고 있기가 힘들다. 애틋함보단 역겨움이 앞선다.

 

부활한 대한늬우스에 대한 말들이 많은데 이에 반대하는 직접 행동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에 반대하는 직접행동을 펼쳤던 것처럼 말이다(그 때 이후론 친구들이랑 야구장에 가면 국민의례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처음엔 함께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벌렁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여러가지 액션에도 불구하고 국기법 개정안은 통과됐고 여럿이 벌금을 물었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혼자 생각만 하는 것보단 맘이 편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한늬우스를 상영하는 영화관 목록을 보내서 상영하지 말아달라고 서한을 보내면 될까? 상영관 입구에서 부스를 차리고 캠페인을? 상영관 안 어둠 속에서 뭘 하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겠지?-_- 영화관에 갈 일이 생기면 난 어떡할지 상상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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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란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것, 비폭력저항

현재 이란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것, 비폭력저항

Don’t give up on nonviolence in Iran

 

by Bryan Farrell | June 23, 2009, 3:13 pm

 

지난 주말 시위 중에 총격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이란 여성인 네다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이 증폭되면서 기존에 비폭력 저항을 외치던 뉴스보도들의 초점이 이제는 이란 정권의 폭력적인 시위진압 쪽으로 옮겨졌다. 이와 같은 보도 분위기 속에서 비폭력 저항에 대한 회의감이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다.

 

의 한 기사에서는 위와 같은 분위기 변환에 주목하면서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한 시위 영상에 나오는 문구를 다음처럼 인용하였다.


“사람들은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을 평화적 시위의 사례로 주목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마틴 루터 킹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의 투쟁은 현재 이란의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 한편, 간디가 운동을 전개했을 당시는 지금과는 다른 독특한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인도의 민중들에게 외세(영국)에 지배받아선 안 된다는 점만 납득시키면 되었기 때문에 평화적인 시위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란의 경우에는 민중들이 맞서 싸울 외세가 존재하지 않으며, 수백만의 지역적 지지자들을 수반한 독재정권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이 곳 이란에서는 폭력적 저항이 필요하다.”

 

방금 인용한 것과 같은 주장은 보통 비폭력에 대한 피상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것은 비폭력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울 때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역사적 실례들을 통해 반박된다. 칠레의 피노체트, 필리핀의 마르코스, 세르비아의 밀로세비치 등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폭력 저항의 힘을 확인하였다). 비폭력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또한 간디나 마틴 루터 킹의 성공 사례들이 평화적인 시위대들을 때려잡지 않는 문명화된 권력을 상대로 싸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마틴 루터 킹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미국 남부지역에서는 지역 관료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안 시위대들에 대한 린치들이 허다했다는 점, 혹은 인종주의자들이 마틴 루터 킹의 집에 폭탄을 던졌던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렇게 당시 미국에서 시위대들에게 폭력을 가한 집단들이 지금 재집권에 성공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수백만의 지역 지지자”들과 과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도의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는 암리차르 학살 사건이다. 그 당시 90명의 영국 군인들 비무장 상태이던 400여명의 민간인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1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학살하였다. 이 때 민간인들은 단지 추수를 기념하는 종교 의례를 치르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마틴 루터 킹이나 간디가 행한 비폭력 저항이 쉽게 행해진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적 저항이 맞닥뜨렸던 손실을 간과하는 것이며 동시에 비폭력 저항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보여줬던 엄청난 용기와 헌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이란에 제3국이 개입을 해야 한다거나 이란의 시위대들이 무장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유는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이란 민중들이 이미 예전에 폭압적인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비폭력의 방식을 택한 적이 있다는 귀중한 역사적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미국이 세운 샤 정권의 통치가 25년째를 맞이하던 1979년, 이란 민중들은 불매 운동과 파업, 비협조 전략을 택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비무장 반란>의 저자 커트 쇽은 책에서 비폭력 운동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면서 다음처럼 진술한다. “샤 정권 하에서 사람들이 흘렸던 피들이 시민들의 거대한 불복종 운동으로 씻겨져 나갔다.”


1979년의 이란 혁명이 결과적으론 지금처럼 온갖 종류의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정권을 불러왔다고 사람들이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이란인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스 헤지스는 그가 쓴 최근의 칼럼(“이란이 가졌던 민주주의는 우리가 빼앗아 간 것이다")에서 다음처럼 서술한다.

 

이란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자유와 대의 정부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투쟁을 통해서 이런 가치들을 학습한 바 있다. 오히려 배워야 할 것은 우리이다. (중략) 우리야말로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잔혹한 폭력을 통해서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과 오사마 빈 라덴이 존재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었다. 우리가 이 지역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폭탄 파편들을 떨어뜨리면서 이슬람 지역을 쥐고 있을수록 우리 자신의 왜곡된 거울로 존재하는 괴물들은 세를 더욱 더 불려나갈 것이다.

 

우리가 이란의 거리에서 싸우는 시위대들에게 도덕적인 지지를 보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폭력적인 저항을 말하는 것은 아마도 외국군의 개입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결국 이란의 민주주의 시계를 우리가 이미 이루어 놓은 것보다도 더 이전으로 돌리는 것 밖에 안 될 것이다.

 

*Bryan Farrell is a New York-based writer, covering topics that range from the environment and climate change to foreign policy and militarism. His work has appeared in The Nation, In These Times, Plenty, Earth Island Journal, Huffington Post and Foreign Policy In Focus. Visit his website at BryanFarrell.com.

 

*기사 원문 출처 http://wagingnonviolence.org/2009/06/dont-give-up-on-nonviolence-in-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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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알게된 라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 중에 제목이 흥미로워보여서 읽다가 낼름 번역까지 해보았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번역을 해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비비씨 들으면서 이란 얘기가 자주 나오기도 했고 마침 오늘 만난 염한테 이란과 중동의 정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기도 해서 비폭력에 관한 글이길래 비록 논의의 수준이 그다지 깊은 건 아니지만 흥미롭겠다 싶어서 옮겨왔다.

 

사실 오늘 비폭력 핸드북 번역과 관련하여 얘기를 나누다보니 번역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이렇게 또 후딱 해버려서 참으로 민망하다.

 

원 기사에 달려있던 링크들을 번역문에도 달아보려 했는데 예전처럼 링크 달때 누르던 source 버튼을 눌러보니 뭔가 약간 변화가 생긴 듯 하다. 내가 아는 짧은 html 독해력으론 어떻게 못 할것 같아서 그냥 쉽게 포기했다. 파이어폭스를 써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_-(기사에서 인용된 뉴스나 칼럼 링크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원문 페이지로 가셔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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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이도 테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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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짱은 지금 후카이도에서 일을 구해서 지내고 있다. 나랑 비슷한 시점에 일본으로 돌아와서 같이 놀아줬는데 그러고 얼마 안 되어서 바로 후카이도에 일자리를 구해서 배를 타고 휙 떠난 것이다. 영국으로 건너가기 전에도 후카이도의 어느 농장에서 소를 몰며 일을 하던 친구였는데 이번에 구한 자리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자체의 어느 조그만 사무실이거나 그냥 가게인 듯 하다. 자기가 사는 마을 인구가 6천명 정도라고 한다. 계절상으론 여름이지만 기온이 20도가 채 안 된다고.

 

처음엔 테짱한테 거기서 몇년이나 더 있을거냐고 물어본 거였는데 대뜸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strange'라고 묘사를 하는 걸로 봐서 테짱처럼 4차원의 삘이 있는 사람을 잘 만났나보다. 심지어 결혼 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거기 앞으로 몇 년간은 쭈욱 지낼 생각이라서 내가 나중에 거기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면 자기는 기쁜 마음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거기 농민들이 베지테리안을 이해못할 것이라는 점, 농장에서 일하면 휴가 개념이 따로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오사카나 교토가 아무래도 낫지 않겠냐고 그런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백수일 때 일본어 공부라도 해놔야겠다. 근데 혼자 하려니 시작조차 못하겠다..ㅜㅜ 지긋지긋한 졸업문제도 끝내고 싶고 감옥도 후딱 갔다와서 다 훌훌 털어버리면 좋겠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조바심만 생기니..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재밋는 꺼리들을 좀 찾고 싶은데.

 

근데 후카이도 지도로 보니 한국에서 쫌 많이 멀어보인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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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 SWEET CHILD O' MINE &quot; SHERYL CROW

 

전주

/D - - -/ - - - -/C - - -/ - - - -/

/G - - -/ - - - -/D - - -/ - - - -/

X 3

 

 

1절

/D - - -/ - - - -/                                                                  /C - - -/ - - - -/

She's got a smile that it seems to me  Reminds me of child hood memories Where eve-

/G - - -/ - - - -/                                                                 /D - - -/ - - - -/

-rything Was as fresh as the bright blue sky

/D - - -/ - - - -/                                                 /C - - -/ - - - -/
Now and then when I see her face She takes me away to that special place And if I

/G - - -/ - - - -/                                                                 /D - - -/ - - - -/

stared too long I'd probably break down and cry
/A - - -/C - - -/                                 /D - - -/ - - - -/

oh oh oh Sweet child o' mine - - ooh

/A - - -/        /C - - -/                        /D - - -/ - - - -/

- oh oh oh Sweet love of mine

/D - - -/ - - - -/C - - -/ - - - -/

/G - - -/ - - - -/D - - -/ - - - -/

 

 

2절

/D - - -/ - - - -/                                             /C - - -/ - - - -/

She's got eyes of the bluest skies As if they thought of rain I

/G - - -/ - - - -/                                     /D - - -/ - - - -/

hate to look into those eyes And see an ounce of pain Her

/D - - -/ - - - -/                                                             /C - - -/ - - - -/
hair reminds me of a warm safe place Where as a child I'd hide And

/G - - -/ - - - -/                                              /D - - -/ - - - -/

pray for the thunder And the rain To quietly pass me by
/A - - -/C - - -/                                 /D - - -/ - - - -/

oh oh oh Sweet child o' mine - -  ooh ooh ooh

/A - - -/           /C - - -/                        /D - - -/ - - - -/

oh oh oh oh Sweet love of mine - -
 

 

 

 

/D - - -/ - - - -/C - - -/ - - - -/

/G - - -/ - - - -/D - - -/ - - - -/

(복잡한 반주는 생략한다.)

 

 

/Em - - -/               /G- - -/                             /A- - -/                   /C - D  G/
Where do we go Where do we go now Where do we go

/Em - - -/               /G- - -/                             /A- - -/                   /C - D  G/
Where do we go Where do we go now Where do we go

X3 (점차 고조되면서 쥐어 짜는듯이. -_-...)

 

/Em - - -/                   /G- - -/    /A- - -/ - - - -/ 

Where do we go - - - oh oh Where do we go now no no no no no no

/Em - - -/            /G- - -/                 /A- - -/C - - G/

no sweet child o'mine sweet child  - - -  o'-

/Em - - -/

-mine

 

 

 

Laron님과 쏭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음..

건즈앤로즈 버전보다 훨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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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r mind's made up

 

 

 

 

 

 술을 마시다 우연히 원스 얘기가 나왔고 불현듯 더블린의 거리들이 그리워지다.. 두 배우 모두 매력적인데 여자 배우는 라이브 버전 영상으로 보니 드문드문 비치는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저 남자 배우는 스탄스테드 공항 엑스레이 검사하는 곳에서 내 앞에 서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그 때 물어보고 사진이라도 같이 찍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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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stone for conscientious objectors on Tavistock Square in London



This Commemorative Stone is in Tavistock  Square, Bloomsbury, London, where every 15 May at 12 md - supporters of the right not to fight and kill gather to celebrate this right, and to recognise the courage of those who have maintained and still maintain this right, despite, in many cases, harsh imprisonment and sometimes even death by shooting or beheading.


*http://www.rrk.free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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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기금조성 트라이애슬론

Triathletes for Peace

The 2009 London Triathlon will have the presence of four committed triathletes for peace – Andy Neidhardt, Ed Neidhardt, Javier Gárate and Matt Neidhardt. They will be racing to support the work of War Resisters' International and have formed the War Resisters Triathlon Team, their target is to raise £ 2,000.


War Resisters' International


War Resisters' International was founded in 1921 under the name "Paco". It was and is based on the WRI declaration:


War is a crime against humanity. I am therefore determined not to support any kind of war, and to strive for the removal of all causes of war


War Resisters' International exists to promote nonviolent action against the causes of war, and to support and connect people around the world who refuse to take part in war or the preparation of war. On this basis, WRI works for a world without war.


WRI has a long history of supporting conscientious objectors to military service. Currently WRI works closely with groups in Colombia, Israel, South Korea, Turkey and many others that strive for nonviolent ways of dealing with conflict and refuse to be part of the war machinery.


WRI also works promoting nonviolent actions to bring social change. Being trying to stop the development of the arms industry and infrastructure, refusing to pay the percentage of taxes that goes for military purposes, creating nonviolent communities that refuse to take part of any arm group, building nonviolent alternative for sustainable communities, and so much more...


WRI as an international network works with a very tight budget, and due to the radical nature of its work it is not easy to access major external funding. That it's why WRI strongly depends on the support of individuals that believe in a world without any kind of war. By running the 2009 London Triathlon for the War Resisters Team and asking you to sponsor them - Andy, Ed, Matt and Javier are contributing to the efforts of a world with war, please support them!


Donations


There are different ways to donate to WRI, in the following page you will find all the bank and payment details. You can also arrange directly with each of the triathletes how to sponsor them. You can also check WRI's donate page (http://wri-irg.org/node/1630 ) or if you are member of facebook you can donate via WRI Cause (http://apps.facebook.com/causes/cause_goals/17573?m=13af2b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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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많이 하는 주점 말고도 이런 방식으로도 기금이 모이는구나 그것도 2000파운드! 한국돈으로 치면 한 4000만원쯤? 전쟁없는세상도 이런거 한번 해볼수 있을까? 그 돈으로 비폭력트레이너 교육과정을 한번 준비해보면 어떨까? 암튼..


하비엘 화이팅!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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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4

보통 남들 블로그 눈팅을 할 때는 내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블로그가 대상이 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정말 생판 모름에도 불구하고 생각날 때마다 방문을 해온 블로그가 있었다. (아마도) 작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구글에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걸린 블로그였는데 블로그가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그렇고 이런 저런 그림과 짤막한 듯한 나름 힘있어 보이는 글들에 사로잡혀서 여행 이후에도 '즐겨찾기' 목록에 남아있던 그런 블로그였다.

오늘 아침, 비폭력 대화 워크숍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일찍 일어나는 그 아침에 인터넷을 잠시 하다가 위의 그 블로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글루스 블로그의 설명을 읽었다. 지난 4월 초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어서 종종 방문할 때마다 왜 새로운 포스팅이 없을까 해왔었는데 블로그 자체가 폐쇄되어 버렸다니, 잠 덜 깬 아침에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 블로그 주인은 나처럼 누군가 끊임없이 '스토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을까?-_- ㅋㅋ 어떻게 보면 실연보다도 덜 한 사소한 일로 받아들여졌을텐데 '고작 블로그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의외로 크게 다가와서 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가끔 공감가는 포스팅이 있으면 덧글을 달까말까 고민하게 만들던 블로그였는데. 거 참. 이를 아쉬워 하는 내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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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함께 하는 비폭력대화 워크숍에 왠지 모르게 자꾸 나의 에너지가 쏠리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밑져야 본전으로 시작한 거였는데..(미안해 아침ㅎㅎ)

오랜만의 긴 외출의 끝자락, 집에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오늘 하루를 곱씹어보다가 캐서린 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사를 물어봤을 때 잠깐 고민하다가 대뜸 '병역거부잔데요,,' 라는 말을 했다가 어김없이(?) 병역거부의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어떻게 답을 해야할지 참 난감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기자들이나 좋아할 만한 딱히 특별한 계기가 스스로에게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캐서린 선생님이 그런 의도로 물어본 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럼 얘기를 하나둘 꺼내자니 길어질 것만 같아서 불안해지고 해서 결국은 아무런 말도 못해버린 거다. '병역거부자'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상대화하고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아직도 자의식이 너무나 센 것 같다. 좀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는데. 이럴 땐 나동이나 용석이의 유머감각이 참 부럽기만 하다.

'일본으로 떠야지' 하는 생각으로 도피처를 찾고 있기에 일본어 공부도 얼른 시작해야지 생각이 드는데 515 이후로는 아무 것에도 집중을 하기가 힘들다. 요즘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야구 팀을 응원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예전 같았으면 자괴감도 들었겠지만 지금은 자기합리화의 기술만 늘어난 기분이다. 8월에 있을 비폭력대화센터 일정에 통역을 도와주기로 선뜻 나섰는데 영어실력도 그렇고 적절하게 의미 전달을 할 수 있는 깜냥이 생길지와 같은 고만고만한 고민들이 슬금슬금 생겨나고 있다.





아..이 노래를 유클레리로 한번 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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