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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들이 더 자꾸 올라온다. 원서 마감 3일 전, 업무량에 비례하여 스트레스와 분노 게이지 역시 급상승중. 여행 중에 스트레스가 쌓여 민감해지면 옆에 있는 사람이 조금만 건드려도 팍 터지는 상태가 되는 것처럼 요 며칠도 내 밑바닥을 보기위해 달려가는 듯 하다. 상대방의 말, 행동을 받아들여서 판단하고 반응하기까지의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급 줄어들면서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가시가 되고 있다.

비폭력 대화를 떠올리며 비극적으로 표현된 상대의 느낌과 욕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내 안의 감정과 욕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보려 하지만 종내에는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는건가 싶은 생각이 찾아든다. 교사 간의 위계, 교사-학생 간의 권력관계, 상명하달이라는 이미 폭력적인 세팅 안에서 내 마음의 평화를 고민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철저히 자신의 욕구에만 우선적으로 충실한 학생들을 보면서 정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왜 그런 싸가지 없는 애들 좋으라고 이런 일을 하고 앉아 있는거지? 이 학생이 이러이러 해서 그런 말을 내뱉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 학생을 공감을 해주고 싶은 의지가 별로 아니 전혀 들지 않아서 나중엔 이런 내 모습이 불쌍해졌다.

(아 짜증나..능력도 별로 없으면서 지 잘난 맛으로 사는 인간들이 왜 자꾸 나를 건드리는거야..)

몹시도 약해진 자아..1분에도 수십번씩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한다...맘 편히 venting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지, 수용, 이해, 신뢰에 대한 욕구들..

"오늘 밤까지 완성하라면서 왜 또 쫓아내. 학교가 완전 쓰레기야" 라는 말을 학생에게 들었을 때, 나는 황당했고 짜증이 났고 화가 났다. 왜냐하면..정해진 시간이 되면 강의실을 옮기기로 한 약속을 수행하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고, 내가 학생들에게 얘기를 했을 땐 그네들의 협조도 필요했는데.. 초등학생이 아닌 고3 학생들인데도 이미 얘기했던 내용에 대해 자기들은 처음 듣는 말이라는 반응을 보일 때 정말 좌절스럽다. 애들이 자기들은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해버리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상호 간의 '약속'은 없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 완벽한 소통에 대한 기대, 이런 건 애초에 믿지도 않지만. 대신 서로 간에 얘기되는 것들이 한 번에 공유가 안 되었다면 상대방에게 다시 물어서 확인을 한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못 들었나하고 자문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학교 쓰레기야"라는 말을 뱉은 학생에게 불같이 버럭 화를 낸 선생님을 보면서 난 그냥 정신줄을 놔버렸다. 그냥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인간 사이의 최소한의 존중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선생님에 대한 나의 신뢰도 사라질 것 같아서 많이 불편했다. 그 교사의 얼굴 앞에서 남들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혼이 나던 그 학생도 싸가지가 없긴 했지만, 그 순간에 난 그 학생이 뱉은 말 이면의 욕구가 보여버려서 이 학생과 선생 양 쪽의 입장 모두를 생각해보다가 어느 순간 머리에 쥐가 나버렸다. 교무실 전체를 싸하게 만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도 숨 좀 가라앉히고 나서야 비로소 나라면 그 학생이 "쓰레기"라고 내뱉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 학생을 공감해보는 상상을 했고, 한편 학생에게 대뜸 폭발하여 비극적으로 표현된 그 선생님의 욕구는 뭐였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도, 교사로서의 전형적인 '권위'와 '꼬장'을 표출해버린 그 교사에 대해서는 경멸의 감정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욕구, 존재감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존중'이냐 하는 수단/방법의 차원에서는 개인마다 편차가 크다. 그렇기에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어떤 개인은 그냥 넘어가는가 하면 어떤 개인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벌컥 흥분을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그나마 낮에만 보고 밤에는 각자 헤어지기라도 하지만 하루 종일 타인과 같이 생활해야 하는 감옥에서는 어떻게 이런 힘든 상황들을 대면할 것인지 정말 생각만으로도 암울하다. 본인이 낼 수 있는 최대 데시벨의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방식으로밖에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줄 몰랐던 그 교사도 저녁 내내 기분이 우울했을텐데 안타까운 생각도 마음 한켠에 남는다. 그래도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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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8회였나 무사에 동점의 발판이 된 3루타를 치고 회심의 어퍼컷을 날렸던, 경기 후 인터뷰에서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자기 딸의 이름을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았다던 최경환 선수가 오늘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대타 홈런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재주 선수도 방출. 이럴 땐 기업으로서의 기아가 확연히 또 인식된다. 아무리 그래도.. 팀이 힘들때 4번을 쳐주던 선수를 다른 때도 아닌 우승 확정된 지 며칠만에 쫓아내다니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그야말로 토.사.구.팽.  (오늘 급식실 걸어가는 길에 나의 계약기간을 들은 중국어 선생님도 내 처지가 열심히 부림당하고 버림받는 처지라는 말씀을 하셨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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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이제 겨우 화요일이라니...너무 지겹고 힘들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보스가 아직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면 아무리 눈치를 안 보려 해도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딱 10분 더 지나서 나오지만 내 얼굴 쳐다도 안 보고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버스 타러 가는 길 내내 신경이 쓰인다. 이런 식의 스트레스들..좀 더 편하고 재밌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싶다. 6개월 계약 중 3개월째를 향해 가는 시점..고비인 듯 하다.. 확 관둘까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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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지금까진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나도 맘놓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단이었는데 최근 들어선 부쩍 더 먹을게 없어지고 있다. 김과 김치로만 먹는 것도 이젠 질린다. 기분 좋을 일도 없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없는 공간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스트레스들이 오늘 점심 급식 메뉴를 보고 나선 와락 터져버렸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푸짐했던 오늘 식단은 나의 선택권을 확 줄여놓았다. 그동안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고기집이나 횟집을 가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오늘은 확 짜증이 나고 종내에는 서러운 감정들이 올라왔다.ㅠ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식탐이 없어지기도 했고...미식에 대한 취향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은데...요즘 부쩍 '맛있는 것'에 대한 욕구가 치민다..

 

-관리자의 감독을 받아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공간에 적응하면서 터득한 요령은 절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서 일을 뚝딱뚝딱 끝내면 관리자들은 일 잘 한다고 하면서 더 많은 일을 또 시키기 때문이다. 그럼 난 일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 잘 하면 나만 억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군대도 안 갔다 왔는데 튀지 말고 평균만 하면 된다는 한국 (공무원) 사회의 진리를 어느 새 체득해버렸다. 참 씁쓸하지..

나에게 주어진 딱 그 시간만큼만 일 해야하고 만약 시간을 넘겨 10분이라도 더 일하면 내가 뭔가 정말 손해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드는 곳. 그 때 그 때의 리듬에 맞추어 일을 진행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일 해야 하는 시간이 지났는지 아닌지를 먼저 보게 되는 곳. 학교는 그나마 관리자들도 칼퇴근을 하는 편이고 초과근무수당도 공개적으로 철썩같이 챙기는 곳이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회사들에서는 주 40시간 노동이 어떻게 종이짝 문구로 전락할지 안 봐도 비디오처럼 그려진다. 한국 자본가들이 그렇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쳐대도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 창의성 따위는 발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업무 효율성보다는 결재라인과 책임소재를 따지고 자기 자리 보전(보존?)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우선이 되는 곳에서 일을 몇 년 아니 몇 개월만 하고 나면 영혼이 너무나 피폐해질 것 같다.

이 참에 아예 경영서나 한 권 써볼까..ㅡㅡ; 진정한 업무효율과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제목은 '글로벌 시대 새로운 이윤창출전략' 뭐 이런 삘로다가..제목이 너무 식상한가..

 

- 노트북에 ms office를 다시 깔다가 뭔가 문제가 생겨서 냅두고 있다가 어제 Openoffice 프로그램을 깔아보았다. wri 사무실에 있을 때 처음 접해본 프로그램인데 이 참에 아예 오픈오피스와 친숙해지는 계기를 만들볼까 싶다. 별 기대 안하고 다운 받았는데 바탕화면 아이콘의 색감이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언젠가는 윈도우가 아닌 리눅스나 맥에 꼭 한번 도전해봐야지...

OpenOffice Writer에서 표 다루는 법에 관한 설명이 나온 포스팅

 

- 한국시리즈 7차전 영상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경기 끝나고 선수들이 한 명씩 댄스타임을 갖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냥 므흣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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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5

조나단 생일에 맞춰 이번 달 초에 엽서를 보냈었는데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보낼 때는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10일정도면 도착하는 것 같았는데. 암튼 엽서 잘 받았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들으면서 덤으로 아기들 사진도 전해받았다. 눈들이 다 큰게 얘네는 쌍커풀 앞트임 이런 수술도 필요없겠다.ㅎㅎ

 

9회말 끝내기 역전 홈런으로 기아가 우승을 해서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는데 그 때 충족된 욕구가 뭔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뭐였을까.. 거꾸로 기아가 우승 못했으면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었을까?-_-;;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촉발되는 감정들은 최대한 이기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예컨대 기아가 질 것 같다 싶으면 애초에 기대를 접고 내 감정의 편향성을 초기값으로 세팅을 하는 것이다. 그럼 지더라도 별로 마음 아프지도 않고 그로 인해 동요받지도 않는다. 반대로 이기면 마치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거고. 몇 번 이기면서 설레발을 치게 만들 때가 사실 가장 괴로운 때이다. 관심을 갖고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할 찰나에 다시 또 지기 시작하면 실망감이 더 커지므로. 올해 엘지팬들이 이런 경우를 자주 겪었을 것 같다.ㅎㅎ 기아도 최근 몇 년 잘 한다 싶으면 쳐지고 그래서 팬으로서 학습된 포기심리가 컸는데 올해는 너무 잘 해버렸기에 만약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했다면 그 박탈감과 후유증이 꽤나 오래 남았을 거다.

이번 7차전 하이라이트는 앞으로도 우울할 때마다 보고 또 보고 할 것 같다. 이젠 야구도 끝났고 빨리 또 일상의 다른 낙을 찾아야지..

 

 

 

 

 

 

 

Nathan & Chloe. 에고 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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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우익청년 윤성호 Seongho,the right wing boy

 

재밌는 영상이다. 그러고 보니 '윤성호'가 <은하해방전선> 감독이었던 그 분과 동일인인지도 모르겠다. 영상의 센스를 보건대 동일감독인 것 같기도 하고.. 이 영상은 "병역거부자 곰곰 모임"에서 발견했다.

 

이번 달 빡세게 일하면 다음 달엔 좀 널럴하게 일할 수 있으려나. 일어나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잠드는 기계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당장 내게 필요한 돈 이상을 번다는 건 역시나 고된 일인가보다. 근데 그럼 '내게 필요한 돈'의 기준은 뭘까...

 

기아가 이종범과 로페즈의 활약 덕에 1차전을 이긴 날. 대야로 쏟아붓듯 소나기처럼 내리던 가을밤의 비가 어느새 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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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잃은 세데뇨?

경기 전 정근우(27) 는 상대 선발 세데뇨에 대한 질문에 "번트 수비 등 세밀한 기술 면에서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여느 도미니카 선수들처럼 자신의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은 약한 것 같았다. 많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귀찮게 하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는 짧은 순간 동안 사실이 되었다.


물론 그 많은 실점을 세데뇨 혼자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기전서 선취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여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세데뇨는 첫 타자 박재홍을 상대하며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회심의 1구가 볼 판정을 받은 뒤 흔들리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제구력을 잃은 높은 실투로 인해 선제 결승포를 허용했다.

 

늘 보는 야구기사이지만 이런 기사를 보고 나면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만든다. 도미니카 출신이라 자기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뭔가 냄새가 나는 문장이다. 예컨대 흑인들은 몸이 유연하다거나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이런 식의 언설들이 사실은 대부분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막혀있기에 체육이나 음악쪽으로밖에 진출을 못하는 유색인종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남성들이 성폭력의 상황에서는 넘치는 충동을 순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면죄부를 받는다. 술이 취해서 '비정상'인 상태에서 저지른 성폭력 역시 '정상 참작'을 받는다. 무엇이 감정적이고 이성적인 것인가에 대한 잣대는 늘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렇기에 '보는' 남성들은 다른 집단에 타자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필요할 땐  자기집단 내부에 타자집단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아무런 논리적 하자 없이 수행한다.

 

화이트 칼라들에겐 블루 칼라들이 덜 지적이고 좀 더 감정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야구선수를 비롯한 운동선수 집단 역시 뭔가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 운동선수 집단 안에서 다시 타자가 되어 '괴력'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외국인 선수(보통은 '용병'이라고 불리는)들. 이 집단 안에서도 다시 비백인들은 또 다른 딱지들 예컨대 감정변화가 심하다는 식의 이미지가 투영된다.

 

구체적인 인용을 하려니 그 선수에겐 참 미안하지만, 배영수 투수는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표정에서 감정이 쉽게 읽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얼중얼 욕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적도 많다. 그런데 배영수 선수에 대해서는 "여느 한국인 선수들처럼 자기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이 약하다"라고 회자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에 인터뷰에 화자로 인용된 정근우나 그런 기사를 쓴 기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안 그래도 경기가 안 풀려서 속상했을 세데뇨가 근거없는 인종적 편견이 더해진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에 안타깝고 씁쓸하고 화도 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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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rpness Action - July 1979.

http://rahu.dk/martynlowe/?p=190

 

마틴 아저씨의 경험이 절절히 묻어나는,, 소싯적 데모를 나갔다가 비폭력트레이닝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경험을 올려주었다.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음 좋겠지만, 번역....은 차마 엄두를 못 내겠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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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미군이 '용산 주둔지'(Yongsan Garrison)라 부르는 용산 미군기지는 1980년대까지는 그 총 면적이 105만 평에 이르렀으며, 지금은 대략 80만평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부시장이었던 강홍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대공원의 3배, 어린이대공원의 6배,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도 넓고,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고, 런던의 하이드파크보다는 두 배나 넓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홍성태,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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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새삼 서울에 녹지가 얼마나 부족하며 도심개발이 얼마나 '개념'없이 이루어졌는지 예컨대 무수한 전봇대와 이리저리 널린 전깃줄, 보행로를 떡하니 가로막는 지하철 출입구, 환기구, 보행자를 배제하는 육교와 지하도들 등등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거리가 좀 더 '이쁘고'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기에 좋게 조성이 되면 좋을텐데. 필자는 일제 이후 그 유산을 물려받은 박정희식 근대화가 서울을 역사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문제를 삼고 있다.

 

낙산에서 종묘를 거쳐 남산으로 이어지던 녹지길이 세운상가에 의해 잘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종묘 안으론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책에 쓰인 글이 발표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이라는데 2009년인 지금 어느 새 또 책의 내용과는 다르게 변화가 이루어진 곳도 많은 걸 보면 이놈의 건설자본들은 언제쯤 지금과 같은 개발을 멈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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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그런 말은 없지만 저 같은 경우는 '양심적인 원호 거부자'라고 합니다. 가능한 한 원호를 안 쓰고 서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학교나 관청에 가서 공식 서류를 만들 때는 원호를 쓰게 돼 있어요. 제가 서기로 쓰면 컴퓨터 입력을 못 합니다. 학교 같은 경우 사무 직원들이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합니다. "서 선생 때문에 우리가 쓸데없는 것도 다 고치고 입력해야 하나?" 이런 얘기를 합니다. 누군가가 폭력적으로 곤봉 가지고 원호를 쓰라고 위협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원호를 쓰게 됩니다. 불과 몇 년 동안 그렇게 자연스럽게 됐어요. (중략)

여기서는 주민등록 번호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컴퓨터 같은 아주 현대적인 기술과, 천황제라는 전근대적인 군주제 지배가 결부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주제적인 사고방식으로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 아주 효율적으로 인민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략) 이렇게 컴퓨터로 해 버리고 나면 아무도 저항할 수 없게 됩니다. 주민등록 번호가 비합리적이라고 해서 저항하면, 이 번호 없이는 휴대전화도 못 사고, 티켓 예매도 못 하니까 너무 불편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거고요. 오히려 주민 번호를 갖고 있는 것을 정당한 시민 취급을 받는 자격처럼 착각합니다.

(중략)

김상봉 교수와 만나 대담을 다 끝낸 뒤에도 김상봉 교수가 그러더군요. "이제 서로 속을 많이 알게 됐고 서 교수님이 저보다 연배가 위이니 '형님'이라 부르고 싶다."고요. 그 제안에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냉정하다, 또는 서운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회는 타자와 타자가 만나는 것이죠. 부모나 부부도 타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저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쌍하다고 말합디다. 너무나 디아스포라적으로 어렵게 섭섭하게 외로운 세상을 살아온 신세였기 때문에 가족의 따뜻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대합니다.

(중략)

아이들도 태어난 순간 타자이긴 하지만 적어도 사춘기가 지나면서 그야말로 타자가 되어 가는, 존중해야 하는 타자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때까지 있어 온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너무 서양적인 개인주의나, 포스트모던적인 보편주의를 주장한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데 그건 아닙니다. 이 사회가 가족주의적인 사고방식, 문화 때문에 지금 있는 억압 상황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259-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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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일본에서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얘기를 하다가도 재일조선인 이슈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 너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듣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 처지가 그 정도가 되겠냐마는 사람들로 듣는 반응의 양상들이 왠지 낯설지만은 않다.

 

국민, 국가, 예술에 대한 디아스포라의 시각들이 한번 읽으면서는 아 그렇구나 지나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와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나 루쉰을 인용하며 '희망'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대목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希望. 稀望. little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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