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언론노조 그린비출판사 분회입니다. 지난 추석 때 짧은 안부를 전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포부를 다지는 12월이 왔네요. 마침 저희도 그동안 진행해 온 투쟁과 협상을 어느 정도 잠정 마무리한 터라 해를 넘기지 않고 다시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린비 분회는 올 봄 조합원에게 내린 부당징계 등 사측의 권한 남용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대외 활동 보고를 시작했고, 5월에서 7월까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진 부당징계 철회 릴레이 1인 시위를 잠정 마무리하면서 활동 보고도 종료했습니다.
사실 1인 시위의 잠정 종료와 함께 그간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신 분들에게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경위와 향후 계획에 대한 보고가 뒤따랐어야 했지만, 당시에 저희가 처해 있던 불확정적이고 급박한 상황 탓에 보고가 늦어졌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경위와 그간의 투쟁 과정 및 결과를 간략히 전해 드리려 합니다.
1. ‘부당징계 철회 및 노조 탄압 중단 요구’ 투쟁의 종료 경위
지난 4월 언론노조 그린비 분회는 노조 설립 시기부터 지속된 사측의 노조 탄압과 조합원을 표적으로 한 징계의 부당함을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링크)하면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성명서 발표 후 분회는 5월부터 7월까지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총 49일의 1인 시위 피케팅(합정역 앞)과 3차례의 단체 피케팅(서울북인스티튜트 앞), 2차례의 집회(서울북인스티튜트 앞)로 투쟁을 이어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노조 소속 출판분회들과 노조에 속해 있지 않은 여러 개별 출판노동자들이, 그뿐 아니라 출판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양한 단위들도 그린비 분회의 투쟁에 지지를 표하고 연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고민 끝에 분회는 7월 12일(49일차)의 피케팅을 끝으로 부당징계 철회 투쟁을 잠정적으로 종료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대외적으로 공론화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분회는 부당징계 철회 투쟁을 전후하여 시작된 경영진의 (사유를 밝히지 않은) 잦은 외근과 밀실경영이, 심각한 고용 불안을 초래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혹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느끼게 하는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면서, 분회는 이 의혹의 규명을 우선시할 필요를 느꼈습니다(이 의혹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밝히겠습니다). 이에 분회는 대내적으로 이러한 밀실경영 의혹에 대한 질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본조의 중재하에 분회의 요구사항을 전달했습니다. ① 분회 요구의 핵심은 의혹이 사실일 때 수반될 수 있을 고용 불안정 요인들을 억제하는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었고, ② 회사 요구의 핵심은 사내에 설치된 부당징계 철회 요구 선전물의 철거와 업무 정상화였습니다.
2) 한편 분회의 본조직인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는 노사 간 갈등이 장기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사측과의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이 중재에 앞서 본조는 사측을 감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피케팅과 대외활동 보고를 잠시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분회는 중재 국면을 위해 외부 피케팅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하고서 회사에 전달할 요구사항 정리에 집중했습니다.
3) 또한 고용 안정을 보장해 줄 단체협약을 조속히 마련하고 노동조건 정상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분회 역량의 분산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상이 부당징계 철회 투쟁을 정리한 정황을 간단히 정리한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위 정황들의 보다 자세한 전개 과정과 이후 도달한 노사 합의의 요지를 보고 드리려 합니다.
2. 밀실경영 의혹의 상세
앞서 말씀드린 밀실경영 의혹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노동조합 설립이 기정사실화된 직후, 친사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직원들이 단 몇 주의 기간 동안에 점차적, 집단적으로 퇴사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대표이사와 편집장을 비롯한 사측의 사유를 밝히지 않는 외근이 시작되었고(분회의 질의에 사측은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른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고 답할 뿐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업무 통제가 강화됨으로써 노동자들의 활동 범위에 구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분회가 그러한 제약 아래에서 노동조건 후퇴와 부당징계라는 당면 사안들에 대처해 나가는 동안에도 사측의 사유가 불분명한 외근 행태는 계속되었습니다. 이 동안에 저희가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이 있었는데, 그 사실들을 개략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퇴사자들이 그린비의 기존 주력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A사)과 노조가 생기며 개발 중단된 신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B사)을 퇴사 직후에 설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분회 내부적으로도 그린비 사측에 의해 기획된 기업 분리일 수 있다는 의심이 있었고, 또 저희 상황에 대해 아시는 외부의 분들 역시 (경우에 따라선 저희보다 더 강력히) 그러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 둘째,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부터 추진되어 오던 그린비의 신사업 콘텐츠를 사측이 분회 및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퇴사자들의 업체 B에 매각한 사실이 의혹을 추적하던 중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의혹이 한층 강해진 상황에서 분회는 해당 업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등기부를 열람했고, 그 과정에서 이 업체의 주소가 대표 이사 명의로 계약된 한 사무실 주소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이 사실에 대해 사측은, 이후 의혹 규명 과정에서 “사업상 용도로 임대했던 사무실의 용도가 폐기되어 업체 B에 계약 이전을 한 것이고, 등기부상 내용은 미처 수정하지 못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분회로서는 이를 단순한 우연이나 서류상의 오류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조 설립 후의 집단 퇴사와 퇴사자들의 새 기업 설립이 그린비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 사측의 기업 분리일 수도 있겠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 셋째, 그린비와 해당 업체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퇴사자들이 설립한 기업인 A와 B 간에도 모종의 긴밀한 사업적 연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분회는 일련의 사태가 사측의 의도적이고 은밀한 사업 매각 혹은 구조조정 시도의 일환은 아닐까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또한 분회는 이러한 밀실경영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고용 불안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다소 교착적 상황에 빠진 징계 사안에 계속 묶여 있기보다는 이 의혹의 규명에 분회의 역량을 집중시키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3. 의혹 규명과 첫 임단협 체결 과정 및 결과
이런 판단을 갖고서 중재 국면을 거치며 분회는 부당징계 사안에서 한발 물러날 것을 결정했고, 이후 단체협약, 임금협약의 조속한 타결과 의혹 규명에 진력했습니다. 그 이후의 과정과 결과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분회는 그간 파악한 근거들이 밀실경영 및 향후 구조조정의 의혹을 충분히 뒷받침한다고 판단해, 회사에 공문을 통해 분회가 도달한 의혹에 대한 이해를 상세히 밝히며 답변과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사측은 처음에는 분회가 빈약한 근거로 회사를 비방한다며 의혹 제기를 일축했지만, 분회가 추가적으로 발견된 근거들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이어나가자, 점차 더 적극적으로 의혹을 해명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분회는 사측에 공문서를 통한 투명한 ‘증빙’으로 (노사 간 신뢰회복과 직결된) 이 사안에 대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측은 이에 응해 증빙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그간 분회가 가졌던 의혹의 모든 부분을 해소시키기엔 여전히 부족한 것이었습니다(특히 퇴사자들의 업체와 대표이사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와 같은 중요한 쟁점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분회는 의혹 사안을 두고 벌이는 공방을 통해 더 이상의 사실관계를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분회는 사측에 경영해태를 중단하고 고용 안정을 보장할 공식적인 합의를 요구했고(합의 내용에는 분회와의 합의 내지 협의 없이 회사 자산을 매각하거나 브랜드를 분리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게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 요구를 사측이 수용했기에 의혹과 관련한 문제제기를 잠정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2)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러한 경영해태의 의혹과 그 문제제기 속에서 4월부터 개시된 2013년 임금 및 단체협약도 타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체결된 단체협약에서는 몇 가지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첫째, 회사의 징계권 남용 가능성을 제한할 징계 절차를 확립했고, 구조조정상의 고용 문제에 있어서 노조와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조항을 만들어 향후 고용불안을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둘째, 출판노동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시간외노동을 (수당이 아닌) 대체휴가제로 보상하도록 하여 보다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끝으로 무급휴가로 처리되었던 생리휴가를 유급휴가로 돌리고, 문서상으로만 존재했던 성폭력예방교육 및 성폭력에 대처할 담당 기구를 신설함으로써 사내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한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임금협약에서, 분회는 지난 수년간 전 대표이사의 개인적 판단하에 비공개적/개별적으로 지급되었던 연봉제식 임금체계를 개선하고, 조합원 상호 간 적정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분회 내 호봉제 모델을 만들어 임금인상분을 분회 내에서 재분배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보다 자주적인 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보다 평등한 임금체계를 확립하는 과제를 긴 호흡으로 수행해 나가려 합니다.
3) 그사이 그린비의 대표이사가 노조의 경영해태 의혹을 부인하며 건강상의 이유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공석이 된 대표이사직에는 관리부장과 편집부장이 각자 대표(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되었습니다. 전 대표이사는 설립자로서 ㈜그린비출판사의 보유 지분을 유지합니다.
4) 새로운 그린비 경영진은 이제 그린비분회와의 합의하에 그린비의 인문출판을 위한 중장기적 전망을 세우고(공식적인 전 직원 회의 테이블 개최), 그간의 밀실경영 의혹을 불식시킬 충실한 대화와 논의의 장에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이상이 지난 7월 부당징계 투쟁을 정리한 후 이루어진 일들을 개괄한 것입니다. 분회는 징계 문제뿐 아니라 밀실경영 문제가 노동조합의 존재조건 자체를 위협하는 사안이라고 간주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임단협의 체결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의혹 제기’ 국면에서 사측이 때로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또 때로는 유화적 제스처를 보여도 흔들림 없는 자세를 견지하려 했고, 그런 결과로서 분회를 회사와 대등한 위상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게 하고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의는 또한 언제라도 사문화될 수 있음을 모르지 않기에, 사측의 ‘합의’가 구체적인 실천으로 외화될 때까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가 많은 분들의 연대에 힘입은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후퇴 없이, 좋은 책을 만들어 내는 행복한 노동을 추구하겠습니다. 또 저희만이 아니라 출판노동자 모두에게, 또 주변의 사회적 투쟁과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폭넓게 연대하겠습니다.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투쟁!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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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구 2013/12/10 10: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앞으로도 분회의 단결 유지하며 잘 싸워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린비 분회 2013/12/13 13:27 고유주소 고치기
응원 감사합니다.^^ 내년 한 해도 잘 싸워(?)서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무한한 뎡야 2013/12/13 14: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뒷북이지만 축하드립니당~~ 요즘은 걍 페북으로 공유하게 돼서 댓글 남기는 걸 깜빡했네요 아뿔싸...; 글을 읽으며 영화 [장고]에서 흑인 노예를 때리는 백인들보다 그 백인 섬기는 더 지독한 흑인 관리자를 떠올렸습니다. 암튼 진짜 멋있어요~~!
그린비 분회 2013/12/13 14:41 고유주소 고치기
응원 감사합니다. 그간 '무한한 뎡야'님이 꾸준히 지지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셔서 요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글 어느 부분에서 [장고] 같은 살벌한 영화를 떠올리셨는지 모르겠지만 ㅎ 어쨌든 [장고]는 해피엔딩이니 저희도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NeoPool 2013/12/13 15: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안그래도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꼭 해피엔딩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 화이팅!
그린비 분회 2013/12/13 15:41 고유주소 고치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저희 문제에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NeoPool님도 하고 계신 일 모두 잘 되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