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란'에 대한 징계가 아닌 평등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그린비 출판 노동자의 손을 잡으며-
책은 사람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책은 사람이 만듭니다. 책은 세상의 물건 중에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인격과 사상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이런 책의 인간성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맺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가능한 것이지, 질서나 분위기, 위계와 같은 애초에 인격이 없는 것에 대한 복종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현재 ‘질서의 문란'이라는 이유로 출판 노동자에 대해 징계를 내린 그린비 출판사 사측에 맞선 출판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힙니다.
‘징계와 억지의 불쾌한 시공간'
그린비 출판사의 사측은 출판 노동자의 실수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예의 없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미 노동조합에서는 담당자의 직무 과실을 인정하고 해당 부분에 대한 징계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측이 강요한 ‘편집 프로세스'가 있었습니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일을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그 편집 프로세스는 사측의 주장대로 ‘세 번의 편집 교정의 기회'를 제대로 살릴 수 없도록 만든 원인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데 다른 사람은 안 다치고 너는 왜 다치나? 그러니 너의 과실이다’라는 주장과 ‘불량품이 하나 나올 때마다 임금을 깎겠다'는 주장은, 이 땅의 수많은 사측이 노동자에게 해왔던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위계 관계에서 ‘너 말에 일리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태도가 잘못이야.’와 같은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말의 속 뜻은 ‘너의 말 따윈 들을 생각이 없거든'이라는 것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지금 그린비 출판사 사측이 보이는 태도는 바로 이와 같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판단합니다. 노동자는 태도로서 평가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사회적 권력 관계가 만들어진 구조에서 ‘점잖음'의 요구는 다른 방식의 노동 관리에 불과합니다.
‘철학 VS 철학'
그린비 출판사 사측이 보이는 태도는, 그동안 그린비출판사의 이름으로 나왔던 책들에 비추어 매우 이질적입니다. 사측의 해명서에는 출판사를 ‘공동체'로 이해해왔고 그간 도제식으로 일을 익혀가는 과정을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린비 출판사에서 내놓은 어떤 책에도 ‘공동체 혹은 꼬뮌’이 가부장적 질서를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린비 출판사 사측이 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예의 없음으로 징계를 받게 되는 곳은 평등한 ‘공동체’가 아니라 군대나 학교와 같은 훈육 기관입니다.
진보신당서울시당은 그린비출판사의 사측이 자신들이 내놓은 책들의 철학을 구현하지도 못하는 현실에 개탄합니다. 그런데도 출판 노동자들의 교양을 위해서 억지로 교양 강좌를 듣도록 강요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노동자들을 위해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식의 강요된 공동체와 폭력이 된 교양은 그야말로 사측의 고약한 취향에 불과합니다.
그린비 사측, ‘호모 불통스'가 되려나
지금이라도 불손함을 이유로 하는 징계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불손함은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적 모멸감이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항의의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전하는 그린비 출판사 사측의 일상적인 태도는―알아 들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보고하란달지 하는―불손함 자체가 일반화된 사측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치켜세우는 손가락은 지시의 손가락이라 우기면서, 노동자가 내세우는 손가락에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것은 미성숙의 방증에 불과합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그린비 출판사 사측이 자신들이 그동안 내놓은 책들이 담고 있는 정신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적어도 그린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수많은 독자들을 실망 시키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책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 세상에 내놓았던 필자들을 고민에 빠뜨리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그런 희망의 책들을 함께 만들어왔던 출판 노동자들이 불행해지도록 만들지 말길 바랍니다.
사람을 만드는 책이기에, 책을 만드는 노동이 어떤 노동보다 아름답길 바랍니다. 그만큼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도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린비출판사 사측이 호모 불통스에서 호모 소통스가 되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진보신당서울시당은 그때까지 그린비출판사 노동자들과 잡은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2013년 6월 12일
진보신당 서울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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