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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법 지금도 유효한가

‘국가 역할’ 관점 따라 미묘한 시각차이
2006/12/4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하는 상황에선 진흥정책이 유효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발전단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면 국가주도형 진흥이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아진다. 시대흐름과 기득권·관행이 충돌하는 지점에 ‘진흥’이 존재한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일률적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사안별로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일상적인 관리기능과 진흥·개발로 나눌 수 있다. 진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과거 방식 진흥인가 새로운 방식 진흥인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기초예술연대, 문화연대,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문예진흥기금 민간자금화 반대 및 예술재원 대책 촉구 범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양계탁기자

기초예술연대, 문화연대,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문예진흥기금 민간자금화 반대 및 예술재원 대책 촉구 범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식민지 시기 ‘조선농촌진흥운동’부터 정부가 내놓은 각종 진흥법은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각종 진흥법과 진흥정책이 ‘하향식 근대국가 만들기’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도 분명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진흥법이라는 정책방향을 재검토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진흥법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진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옥석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면서도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는 다분히 역사적인 경험을 반영한다. 행정부의 부처이기주의와 국회의 한건주의 입법관행, 진흥법에 기생하는 일부 이익단체들이 맞물리면서 많은 경우 진흥법은 취지를 스스로 훼손했다. 입법 동기 자체가 불순한 진흥법도 적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각종 진흥법이 말하는 진흥은 결국 미숙한 시민사회를 이끌고 가르치겠다는 엘리트주의 발상을 담고 있다”며 “이제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각종 진흥법 정비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진흥이란 결국 관변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진흥은 대중들한테서 올라오는 운동이 아니라 국가나 엘리트들이 특정한 사안을 강제하고 동원할 때 쓰는 용어다.

김성남 변호사(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진흥이란 말 속에는 ‘국민은 어리석고 방종하고 더럽고 속이기 좋아한다고 비하하는 사고’가 깔려있다”며 “그런 정신은 사실 한국 법제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흥이란 게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를 어리고 유치한 것으로 상정하고 지도하고 선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식민지 잔재”라고 비판했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학과 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도 “용어 자체가 국가가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며 국가주의와 엘리트주의 성격을 주목한다.

“어떤 진흥인가”가 기준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국가가 특정 목적을 위해 진흥책을 펴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진흥법 자체가 아니라 운영과정을 봐야 한다는 것. 최근 번역출간된 ‘국가의 역할’에서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강조하는 ‘선별적 산업정책’도 넓은 의미에서 산업진흥정책으로 볼 수 있다. 장 교수는 진보개혁진영이 일반적으로 ‘관치경제’를 비판하며 “국가 역할 최소화”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선별적 산업정책’이라는 주장을 통해 적극적인 국가역할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문제는 “어떤 진흥인가”이다.

한 교수는 “공공영역 육성하는 게 자칫 시민자치영역이 관료적 통제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권한을 정부에 주기가 눈치 보이니까 각종 위원회를 만들지만 위원회가 관료에 포섭되면 결국 다를 게 없다”며 “참여민주주의가 전문가위원회와 관료위원회로 변질되는 경우에서 보듯 각종 진흥법은 부처이기주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구분된다고 보면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에 맡길 영역은 맡기는 게 낫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만 시장에 맡기기만 해서는 안되는 공공성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 경우에도 신중한 토론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어설픈 진흥은 병폐만 키운다”며 “진흥이라는 접근법 자체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진흥이라는 공익적 수사로 포장하지 말고 정말로 국가적 차원에서 진흥할 것은 엄격하고 오랜 기간 토론과 합의를 통해 시행해야 한다”며 “국가주의적 공익론의 반민주성과 반시민성을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2월 1일 오후 16시 2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8호 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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