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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우경화는 위험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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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경화는 위험수위"

[한일시민사회포럼] 강혜정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일본이 패전 후 이룩한 ‘전후 민주주의’는 전쟁과 파괴를 반성하면서 이룩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이 위험해 보인다.”

강혜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
강국진기자

강혜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

강혜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은 최근 일본 움직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한국 시민사회도 당사자같은 느낌으로 일본 움직임을 대하게 되기 때문”에 우려는 더 크게 다가온다.

강 위원은 “과거사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쟁점은 없다”며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교과서를 둘러싼 환경, 교육을 둘러싼 환경,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본 내 가치관 등에서 퇴보하는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전쟁 금지와 군대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를 예로 들며 “평화헌법 9조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는 내용이고 선언”이라며 “그것이 흔들린다는 것은 일본사회가 지나온 길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외적으로 표명하느냐와 깊게 관련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강 위원이 주목하는 또다른 문제는 교육기본법이다. 그는 “교육기본법은 과거 전쟁시기 공권력이 교육내용을 좌지우지했던 걸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평화헌법과 한 짝을 이룬다”며 “아베 신조 총리가 내세운 ‘교육재생’이란 공약에서 핵심이 바로 교육기본법 개정이라는 점에서 교과서와 교육을 둘러싼 개악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시민사회가 우경화 흐름을 막아내는데 힘이 부치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 시민사회가 위기감을 크게 느끼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동시에 좌절감도 크게 느낀다”며 “일본 시민운동가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전쟁기념관인 류슈칸 건물 앞에 있는 '특공용사상'. 2차대전 당시 가미가제를 기리는 조각상이다.
강국진기자

전쟁기념관인 류슈칸 건물 앞에 있는 '특공용사상'. 2차대전 당시 가미가제를 기리는 조각상이다.

부분적으로 이런 상황은 고질적인 분열상에서 기인한다. “단체간 분열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진보정당 약화, 노동운동 우경화 등으로 보호막은 갈가리 찢어졌는데 과거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같이 하지 못할 정도로 달라 보이지도 않는데 여전히 분열이 계속되지요. 그런 분열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지요. 통큰 단결이 안되니까 전국차원에서 효과적으로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강 위원은 “일본은 풀뿌리 차원에선 나름대로 효과적이고 영향력있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과 연계가 잘 안된다”며 “우리 단체에서 일본에 있는 여러 지역 단체를 초대하면 일본 국내에서 자기들끼리는 만날 일이 없는 시민운동가들이 우리 단체 주선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제가 느끼는 위기감은 변화방향의 화살표가 어디를 향하느냐에서 나오는 위기감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국정교과서 체계이지만 검정으로 바뀌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요. 지금은 불충분하지만 노력을 통해 변하는 것은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경우가 다르지요. 일본은 국정교과서가 없는 진일보한 체계이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강 위원은 “동북아평화라고 할 때 일본의 변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 변화가 일본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일본 우경화는 일본 시민사회만 관심가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 시민사회도 일본 시민사회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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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방문기, 성찰없는 평화는 공허하다

[한일시민사회포럼] 야스쿠니신사 인상기
야스쿠니에서 느낀 ‘역겨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입구에 육중하게 서 있는 ‘도리’에 들어서서 나올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돈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역겨움’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거부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야스쿠니에서 느끼는 역겨움은 ‘성찰 없는 평화’가 보여주는 섬뜩한 전쟁찬미와 ‘남성성만 내세우는 마초 성향’에서 오는 균형감각 상실 때문이었다.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강국진기자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어머니’ 조각상, 그러나 여성은 없다

류슈칸 앞에는 전쟁에 동원됐다 죽어간 군견과 군마, 심지어 비둘기까지 기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소년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동상도 서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더 사로잡은 것은 ‘어머니’이라 제목을 단 조각상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기모노를 입은 어머니가 서 있다. 오른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다. 어머니 양 옆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 옆에는 일본 군함 모형을 조각한 조형물이 있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파손되거나 침몰한 군함 현황을 표시한 지도가 그 아래 있다. 거기서 류슈칸 입구 쪽으로 가보면 소년 카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조각상이 있다.

국가는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잘 키우라고 강조한다. 잘 키운 아들은 군인이 돼서 군함과 함께 죽거나 카미가제가 돼 죽으라고 한다. 딸은 커서 다시 전쟁에 죽을 아들을 낳아 잘 키우라고 한다. 오빠나 동생처럼 군인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각상에 있는 어머니 모습이 우수에 젖은 눈길로 보이는 것은 혼자 느낌일까.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류슈칸 어디에도 여성은 없었다. 야스쿠니가 강조하고 치켜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그것도 ‘남성 군인’이다. 여성은 오로지 군인들을 위해 후방지원에 동원됐던 군속과 간호사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

류슈칸에서 상영하는 ‘평화를 위한 서약’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어머니는 ‘조국을 위해 자폭하는 군인 아들’을 걱정하고 눈물흘리며 가슴에 묻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조국을 위해 싸워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항상 힘 없고 연약한 여성이다. 전쟁은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강조한다. 한국 군대에서 ‘여성성’은 언제나 ‘욕’이었다.

류슈칸에서 용산 전쟁기념관을 떠올리다

야스쿠니 신사 본전 건물 오른편에는 류슈칸(遊就館)이라는 큼지막한 건물이 있다. 이른바 전쟁기념관이다. 빡빡한 일정 와중에 시간을 내서 야스쿠니신사를 가려고 할 때 누군가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류슈칸만 가 봐도 왜 야스쿠니를 반대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던 그 곳에서 역겨움은 극에 달했다.

그곳에서 나는 용산 전쟁기념관이 머리에 멈돌았다. ‘평화 감수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용산 전쟁기념관과 한국 곳곳에 있는 안보기념관이 류슈칸과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입장료 800엔을 내고 류슈칸 전시실로 들어섰다. 첫 번째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일본인들이 사용했다는 칼과 활, 갑옷 같은 전쟁무기다. 제목부터 ‘일본 무(武)의 역사’다. 전시물은 곧바로 일본 근대로 넘어간다. 개항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쳐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더니 2차세계대전과 패전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것은 모조리 ‘전쟁’ 뿐이다. 마치 일본이란 나라는 개항부터 지금까지 전쟁만 벌인 나라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전시물에 붙어 있는 설명은 ‘성찰 없는 평화’가 왜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한일합방’을 설명하는 내용은 “조선 정부가 일본 통감부에 양국 합방을 요청했고 일본 정부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만주국 건국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오족(五族) 평화를 위해 만주국을 건립했다’고만 써놨다. 심지어 태평양전쟁조차 일본의 침략은 온데 간데 없고 국제정치적 갈등에서 나온 갈등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한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용사들의 사진들’을 지나 마무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전쟁 찬가다. 2차대전 말기 일본군 잠수함은 미군 함정을 향해 돌격하다 전사하고 미군 함대 지휘관은 이들의 애국심에 감동해 이들을 정중하게 장례지낸다는 내용이다. 제목은 더 황당하게도 ‘평화를 위한 서약’이다.  

전시실을 나서면 기념품 판매소가 있는데 그 곳에서 파는 물품조차 자위대가 쓰는 군사용품들이다. 자위대 군모와 무기 모형, 심지어 ‘자위대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항공자위대가 자랑하는 최신 전투기 사진으로 도배한 달력까지. 판매하는 책도 극우적 내용 일색이다.

야스쿠니표 교통안전 부적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시민들은 야스쿠니 본전 앞에 있는 참배장소에서 끊임없이 참배를 한다. 나무함에 돈을 던져넣고 박수를 두 번 친 뒤 고개를 숙인다. 건물 바깥에는 대나무로 울타리처럼 만들어놓은 게 눈에 띈다. 그 대나무 울타리에 하얀 쪽지를 빼곡히 묶어놨다. 심지어 야스쿠니 경내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에도 종이쪽지들이 있었다. 궁금증은 나중에야 풀렸다.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는 거라고 한다.

참배장소 앞 한켠에는 물품판매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신관 옷차림을 한 여성이 파는 물품은 ‘교통안전 부적’이었다. 눈여겨 보니 ‘靖國神社交通安全御守護’라고 써 있다. 큰 부적은 1000엔이나 한다. 야스쿠니신사가 왕실 직속이니 일본 왕실의 권위를 빌어 교통안전을 기원하는 셈이다. 일본인들에게 야스쿠니, 그리고 일본 왕실은 여전히 신통력 있는 존재인 모양이다.

모르고 보면 공원 같은 야스쿠니

야스쿠니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다. 처음 야스쿠니에 들어설 때부터 가장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외국인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는 전쟁기념관보다는 공원에 가까워 보인다.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야스쿠니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한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꼭 붙어앉은 이들은 계속 귓속말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분위기 좋고 조용한 데이트장소일 뿐이다. 도쿄 시내 지하철을 타다가 한 남성이 찬 허리띠가 머리를 스친다. 묵직한 총알이 주렁주렁 달린 딴띠 모양으로 된 허리띠였다.

상념은 새까만 색깔로 통일한 일본 고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이어진다. 곧이어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똑같은 옷차림은 마찬가지인 한국 학생들의 교복도 떠오른다. 대형 서점 역사코너를 가보면 극우성향 고대사 책이 넘쳐나는 한국이 자꾸만 겹치는 것은 왜일까.

2년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평화운동가 진 스톨츠푸스는 “평화는 정의와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일견 평화롭고 깔끔하게 관리한 공원같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나는 “평화는 성찰과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일본인에게도 절실한 얘기지만 한국인에게도 흘려 들을 수 없는 얘기가 아닐까.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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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 국제연대 발전 고무적"

“지난해 1월에 한국의 국제연대운동 수준을 걸음마 단계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점수를 다시 매긴다면 ‘진보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점수로 치면 당시는 2-30점이었고 지금은 4-50점으로 매기고 싶습니다. 아직 50점을 넘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데요. 사람이나 자원이 올라오고 있지만 수면 위로 나타나진 않았지요.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특히 아시아연대는 국제연대로 가는 관문이자 출발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강국진기자 

최근 아시아연대는 시민운동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활동은 나날이 활발해지는 실정이다. 나효우 한국시민사회아시아센터 공동운영위원장(왼쪽 사진)도 이런 발전을 높이 평가한다. 필리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아시아센터는 3년 전부터 한국 시민운동가들을 위한 아시아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아시아연대 흐름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근거는 세 가지다. 아시아연대 논의가 계속 확장된다는 것과 작고 구체적인 주제를 가진 소모임이 많이 생겼다는 점, 그리고 부문중심에서 통합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종교계와 영어를 잘하는 소수가 중심이었지요. 지금은 인권, 여성, 환경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안을 중심으로 여러 소모임과 네트워크가 생기고 있습니다. 나이도 10대 중후반부터 30대까지 다양하지요. 명망가 중심에서 활동가, 회원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이전에도 아시아연대활동은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여성끼리, 환경은 환경끼리, 노동은 노동끼리 각개전투하는 양상이 강했다. 나 위원장은 “동아시아 시민사회 네트워크 논의에서 보듯 부문중심의 아시아연대에서 통합적으로 가고 있다”며 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초록정치연대, 여성연합 등 10여개 단체가 모여 동아시아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나 위원장은 이와 함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아시아 국제NGO에 한국 활동가들이 자리를 잡는 단계”라며 “국제연대 기반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나 위원장은 최근 아시아연대가 활발해지면서 걱정도 늘어나고 있다. 그는 가장 우려스런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조급성”이라고 답한다. “성급하게 성과를 기대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않고 한국의 의제를 다른 국가에 강요하면 실수도 생기고 마찰도 있겠지요. 지금은 초창기라 별반 드러나지 않았지만 언제고 그런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조사하고 연구하고 알고 배우려는 자세가 지금 시기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나 위원장은 “아시아를 충분히 이해하지도 않고 마치 아시아를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일부 자칭 전문가”들을 경계한다. “대중을 제대로 만나지도 않으면서 말로, 머리로, 책으로 아시아를 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시아도 제대로 모르면서 아시아를 넘어서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저는 그런 점만 잘 극복하면 한국 시민사회가 아시아연대에 관한 한 7-80점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게 버릇처럼 익숙하게 되면 90점 이상으로 올라서겠지요.”

나 위원장은 지난 9월 세계정주회의(HIC: Habitat International Coaliation) 총회에서 운영이사로 선출되었다. 1976년부터 활동해온 HIC는 전세계 400여개 NGO들의 연합단체로 주거환경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 위원장은 “환경운동이 자연환경을 말한다면 HIC는 주거환경을 말한다”며 환경운동과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HIC는 내년 6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세계도시포럼의 주요 파트너 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실 한국정부와 HIC는 악연이 있다. 1987년 당시 올림픽을 준비하던 한국정부가 벌인 강제철거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HIC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한국을 ‘전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철거를 하는 나라’로 선정했기 때문. 나 위원장은 “재작년에 HIC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도 1987년 당시의 오명을 씻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강제철거정책을 개혁할 것을 촉구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나 위원장은 “한국의 임대아파트정책, 주거정책 등에 대해 HIC 임원들과 의논할 것”이라며 “한국이 강제철거정책을 개혁하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10월 13일 오후 15시 4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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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개발, 주민에겐 재앙일 뿐

시골에 있는 조그만 공장에서 별다른 기술도 없이 우물에서 물을 긷듯이 원유를 채취하는 곳이 있다. 땅을 파다가 석유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하루에 2시간밖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도 전기공사가 민영화되는 바람에 전기 값이 다른 지역보다 10배는 비싸다. 새우가공공장은 얼음을 만들 전기가 없어서 부패를 막기 위해 새우 머리를 떼내 수출한다. 공장을 세울 수도 없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전기선 자체가 없는 마을도 부지기수다.

버마 아라칸 주 조욱 퓨 섬의 선착장에 세워져 있는 어선들. 가스개발이 시작된 이후로 어선의 어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사진제공= 한수진 
버마 아라칸 주 조욱 퓨 섬의 선착장에 세워져 있는 어선들. 가스개발이 시작된 이후로 어선의 어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한 대기업이 이 지역 앞바다에서 엄청난 천연가스층을 발견했다. 주민들은 기뻐했다. 이제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 공장도 들어서고 일자리도 늘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천연가스는 인도와 한국으로 가고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있다. 천연가스 개발 예정지구에 인접해 있는 곳에서는 어업이 금지됐다. 군부대가 늘어났고 도로공사에 동원되는 일이 잦아졌다. 주민들은 벌써부터 가스파이프라인 건설공사가 시작되면 자기 땅에서 강제추방당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한수진씨(왼쪽 사진)가 전하는 버마 아라칸 지역의 민심이다. 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인 한수진씨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태국 치앙마이 등지에서 ERI(Earth Rights International)와 아라칸민족협의회(ANC; Arakan National Council) 인턴활동을 했다. ANC 주선으로 지난 7월에 보름정도 아라칸 지역을 둘러본 한씨는 “대우 인터내셔널이 추진하는 버마 슈에 가스전사업은 버마 군사독재정권만 살찌게 할 뿐 주민들에겐 피해만 입히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나본 사람들은 군부가 절대 자기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안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군사정부가 없어지고 자기들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개발을 멈춰 달라는 겁니다.”

대우 인터내셔널은 2000년 8월 ‘미얀마 석유·가스 기업’(MOGE)과 계약을 맺었다. 현재 버마 A-1 광구 슈에 컨소시엄 지분은 대우 인터내셔널 60%, 한국가스공사 10%, 인도 국영 석유&천연가스회사 30%로 돼 있다. 가스전 가치는 최소 1조3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우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월 15일 버마 해상 A-1광구에서 한국이 6년간 쓸 수 있는 양에 해당하는 가채매장량 4~6조 입방피트의 가스층을 발견했다. 이어 지난 3월 4일에는 두 번째 평가정 시추에 성공했는데 일일 가스 생산량이 9천6백만 입방피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씨에 따르면 “슈에 가스전 개발예정지구 주변은 어업이 금지돼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국제민주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ERI 활동가 니니르윈은 “배를 타고 그 구역에 들어갔던 어민들이 군인들에게 잡혀 폭행당했다는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가스개발예정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욱 퓨(Kyauk Pyu) 섬은 최근 어업활동이 금지됐다”며 “어업이 발달해서 생활수준이 아라칸 여느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곳인데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증언했다. 그 밖에도 한씨는 아라칸 주 수도인 시트웨(Sittwe) 사람한테서 시트웨에선 어업을 금한다는 포스터가 도시에 나붙었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고 한다. 랭군에서는 한 주민이 “땅을 파다가 석유가 나온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주민들은 모조리 강제 추방당했다”는 얘길 한씨에게 귀띔해주기도 했다.  

가스개발예정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욱 퓨(Kyauk Pyu) 섬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한씨는 “어업이 발달해서 생활수준이 아라칸 여느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곳인데 최근 어업이 금지되는 바람에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증언했다.

가스전 부근에선 어업도 못한다

사실 버마에서 현지조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ANC가 소개해 준 사람을 통해 아라칸을 둘러볼 수 있었지만 현지 길라잡이와 한씨 모두 는 커다란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해준 버마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진을 찍지 말고 이름과 만난 장소,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어느 선까지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됩니다. 아라칸을 여행하면서 영어로 메모했던 내용이나 받은 명함은 랭군(버마의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한글로 옮겨 적은 다음 모조리 변기에 버리거나 태워서 없애 버렸어요.

최근 조욱 퓨 섬으로 해군 사령부가 옮겨왔다. 개발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지역의 군인 수가 늘어난다.
사진제공=한수진
최근 조욱 퓨 섬으로 해군 사령부가 옮겨왔다. 개발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지역의 군인 수가 늘어난다.

한수진씨가 랭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장면이 소총을 맨 군인(혹은 경찰)들이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서 2~3백미터마다 두세명씩 소총을 매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사진제공=한수진
한수진씨가 랭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장면이 소총을 맨 군인(혹은 경찰)들이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서 2~3백미터마다 두세명씩 소총을 매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버마와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인 태국 메솟에는 버마 난민캠프가 있다. 한씨는 이곳에서 야다나 가스전사업과 관련한 충격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계 다국적기업인 유노칼이 버머정부와 계약을 맺고 추진하다가 강제노동과 강제동원 때문에 재판 끝에 거액의 배상금을 내게 된 사업이 바로 야다나 가스전사업이다. 한씨는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고 나서도 야다나 가스전 주변 주민들은 파이프라인 관리를 위해 또다른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며 “파이프라인에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지역 주민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버마 민주화, 종족간 평화도 중요한 과제

수많은 버마인들을 만나면서 한씨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는 “버마 사람이라고 다같은 버마 사람이 아니다”는 점이다. “단순히 ‘나는 버마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버마족 뿐입니다. 다들 ‘나는 카렌족 아무개’ ‘나는 카친족 아무개’라고 소개하죠. 제3자 얘길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정체성이 일상생활 작은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민족간 문제를 풀지 못하면 버마 민주주의도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민족들도 아웅산 수지는 지지한다. 아웅산 수지가 연방제를 거론하면서 소수민족을 많이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방제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독립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씨는 말한다. 심지어는 “종족간 갈등의 골이 대단히 깊어 잘못하면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고. “아직은 버마 민주화라는 쟁점조차 낯선게 사실이죠. 한국 시민사회가 버마 민주화를 도와야 한다는 건 백번 옳은 말이지만 민족갈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만 접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중하게 다양한 측면을 깊이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게 인턴생활에서 배운 교훈입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9월 28일 오후 16시 5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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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중국의 벽에 갇힌 '인권'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는 <시민의신문>과 함께 9월부터 다섯번에 걸쳐 ‘포스트 9·11 시대 아시아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말레이시아·홍콩·중국·일본·한국을 주제로 각 지역 전문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이번 행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새로운 인권지형을 모색하는 학문적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 주최 :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 NGO대학원, 시민의신문
○ 후원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 장소 : 새천년관 7305호
①9/12(월) 오후 4시 -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인권”
②9/26(월) 오후 4시 - “인권 : 홍콩과 중국의 함수”
③10/10(월) 오후 6시 30분 - “일본의 헌법개정논의와 평화적 생존권”
④10/24(월) 오후 4시 - “한국의 이주 노동자 정책과 과제”
⑤11/7(월) 오후 4시 - “라운드테이블 토론”
“잔인하게 말해서 홍콩은 1999년 이미 마지막 기회를 놓쳐 버렸다. 중국 본토에 사는 홍콩인 자녀들이 홍콩 거주권을 달라고 할 때 홍콩 사람들은 중국인은 누구이고 홍콩인은 누구인지, 혈통이란 무엇이고 민족이란 무엇인지, 식민성이란 무엇인지,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만 했다. 그러나 홍콩은 그들을 그냥 추방하는 것으로 끝내 버렸다. 홍콩의 정체성을 고민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지난 2003년 7월 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홍콩 도심에서는 시민 50여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당국이 국가안전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한 게 발단이었다. 이달 말 개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홍콩 기본법 23조(국가안전법)는 국가전복이나 반란선동 금지, 국가안전위험조직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었다. 법을 확대 적용할 경우 인권 침해와 종교 탄압의 빌미로 악용될 수 있다는 반발을 사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홍콩 당국은 결국 23조 개정작업을 취소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홍콩의 시위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민주화된 홍콩’의 저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지난 9월 26일 ‘인권: 홍콩과 중국의 함수’를 주제로 강연한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조심스레 고개를 가로 젖는다. 그가 보기에 홍콩에서 인권·민주·법치·자유는 추상적으로는 중요시되지만 현실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왜곡되는 측면이 강하다. “많은 경우 중국반대가 곧 인권이요 민주요 법치로 통용되고 식민성을 근본에서 성찰하거나 ‘홍콩식’ 인권담론을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 교수가 내리는 결론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은 150년 넘는 역사의 한 장을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홍콩은 식민지였고 ‘중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홍콩인들은 중국본토에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건너온 난민들에서 기원한다는 독특한 역사도 중요한 변수다. “홍콩의 인권문제는 결국 중국의 위협 앞에서 어떻게 인권을 지킬 것인지가 문제가 됐으며 인권 문제는 민주·자유·법치와 혼용되면서 홍콩이 중국의 위협 앞에서 지켜야 할 ‘홍콩적’ 가치로 강조됐다.”

홍콩에서 ‘인권’이라는 주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홍콩 내부의 식민성을 극복하는 과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게다가 주권, 생존권, 발전권이 식민지 시기 오히려 보장되었고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즉 조국으로 돌아가면서 오히려 인권이 나빠졌다는 것도 인권담론을 왜곡시킨다. 중국에서는 “타국이 인권을 위협한다”고 강변하지만 홍콩에서는 ‘조국’이 인권을 옥죄는 게 핵심 문제다. 즉 홍콩이 중국 위협 앞에서 지켜야 하는 홍콩적 가치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홍콩 시민단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현안도 중국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 영국 식민지 시기에는 민주화가 잘 이뤄졌나 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그는 “집회시위나 민주선거 같은 기본적 자유권조차 90년대 이전까지는 전혀 없었고 중국반환을 앞두고 10년도 안되는 시기에 잠깐 나타난 현상”이라며 “그런 자유조차 중국반환 이후 위협받으니까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식 가치?

이와 관련해 밥 베이티(Bob Beatty)라는 학자가 2003년 쓴 책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홍콩정치인 89명 가운데 대다수는 싱가포르에서 강조하는 ‘아시아적 가치’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홍콩식 가치’ 혹은 ‘홍콩 나름의 특색’이 있다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홍콩의 독특한 가치란 다름 아닌 “정부의 최소한의 간섭과 이로 인한 경제적 자유, 법치 존중, 서구와 중국문화 그리고 홍콩식의 효율성이 혼합돼 있다는 점, 점진적인 민주화, 언론과 발언의 자유” 등이다.  

장 교수는 “그게 무슨 ‘홍콩식’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렇듯 추상적인 개념들을 강박관념처럼 강변한다는 사실”이라며 “결국 ‘홍콩식’이라는 것은 중국을 염두에 둔 인권담론”이라고 꼬집었다. ‘홍콩식’이란 다름아닌 “중국보다 경제자유가 많고 중국보다 법치를 존중하며 중국보다 민주화됐고…”라는 것이다.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도 홍콩에서 나타나는 인권논의를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홍콩에서 강조되는 인권, 법치, 자유 등의 가치가 갖는 가장 중요한 한계는 이들이 홍콩인에게 내재화된 가치라기 보다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목적이란 특히 경제적 번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권, 자유, 법치란 독자적인 가치로 인정되기 보다는 홍콩의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식으로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홍콩만 가진 특수한 한계로 볼 것이 아니라 그 한계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금융과 무역 허브로 번성했던 홍콩은 점차 경제적으로는 상하이에 밀리고 정치적으로는 베이징에 종속된다. 표준중국어인 북경어를 쓰는 홍콩사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애초 뿌리가 얕았던 ‘홍콩’이라는 정체성은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조짐을 보인다. 방청객이었던 조효제 교수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고 질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9월 29일 오후 16시 5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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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아닌 개발독재가 인권 좀먹는다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는 <시민의신문>과 함께 9월부터 다섯번에 걸쳐 ‘포스트 9·11 시대 아시아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말레이시아·홍콩·중국·일본·한국을 주제로 각 지역 전문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이번 행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새로운 인권지형을 모색하는 학문적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 주최 :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 NGO대학원, 시민의신문
○ 후원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 장소 : 새천년관 7305호
①9/12(월) 오후 4시 -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인권”
②9/26(월) 오후 4시 - “인권 : 홍콩과 중국의 함수”
③10/10(월) 오후 6시 30분 - “일본의 헌법개정논의와 평화적 생존권”
④10/24(월) 오후 4시 - “한국의 이주 노동자 정책과 과제”
⑤11/7(월) 오후 4시 - “라운드테이블 토론”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슬람부흥운동의 결과 현재까지 지난 30여년간 이슬람의 교리와 원칙에 바탕을 둔 정치적 종교적 이론과 실천의 발전은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적 색채를 강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슬람 원칙에 기초한 은행제도와 보험, 국제이슬람대학 등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런 경향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이슬람화가 아니라 개발 또 개발”이다. 홍석준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문화인류학 전공)는 “개발독재와 그에 따른 인권쟁점이 말레이시아의 주요모순”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개발독재를 추구하는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말레이시아 인권구도를 설명한 뒤 대항세력을 속칭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시민사회운동으로 나눴다. 특히 이슬람의 견지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야당 세력 빠스(PAS)나 이슬람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은 이슬람의 규범과 원칙에 부합하는 인권개념을 강조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서구의 인권개념과 원리는 기본적으로 개인에 기초한 인간 개념에서 출발한다. 세계인권선언 등에 담긴 인간은 권리의 유일한 담지자로서 개인이다. 하지만 빠스 등은 이슬람이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통해 평화를 얻는다는 원칙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동등하게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인권에 관한 기본강령으로 내세운다. 여기서 인간은 집단적, 사회적 존재이다. 인권 개념은 집단적 가치 혹은 무슬림 공동체적 규범과 가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마하티르는 개발지상주의자”

홍 교수는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에 대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통념과 상반되는 주장을 폈다. 무엇보다도 “마하티르가 이슬람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슬람을 이용해먹었다”는게 홍 교수 생각이다. 그는 “마하티르는 경제발전을 가장 중시하며 그걸 위해서라면 서구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IMF와 미국·영국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왜 미국이 마하티르를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처럼 대하지 않았겠느냐”며 “교묘한 외교술”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강국진기자 

그는 특히 “마하티르가 박정희를 본받자는 얘길 해서 한국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마하티르의 본심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본받자는 것인데 말레이시아 다수종족인 말레이인들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화인(華人)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것을 고려해서 박정희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독재는 사회통제를 수반한다. 말레이시아 연방헌법은 일련의 인권제한에 관한 법률과 조례들은 국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정부 당국이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다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내치안법이다. 이것은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는 법률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경찰법, 공무원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공무원비밀법, 인쇄출판의 자유를 구속하는 인쇄출판법, 대학 구성원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대학법, 각종 비정구기구의 활동을 제한하는 사회법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법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고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시민단체들은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담론을 활용하거나 잠재적인 테러 위협에 직면한 상태에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경제개발을 시민의 정치적, 시민적 권리보다 상위에 두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아시아적 가치’는 유신정권이 강조했던 ‘한국적 민주주의’처럼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을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참신한 시도, 아쉬운 뒷심

여성할례, 명예살인, 일부다처제, 가부장제, 차도르, 빈곤, 테러리즘… 한국인들이 이슬람 사회의 인권을 바라보는 눈은 썩 곱지 않은게 사실이다. ‘낯설다’는 느낌은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로 다가오고 텔레비전과 신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 기사’로 이슬람을 색칠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의 눈이 아니라 ‘서구’의 눈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눈이 지극히 편향돼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이슬람의 눈으로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민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하기만 하다. 더구나 그런 노력조차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같은 ‘중동’ 즉 ‘아랍세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 12일 세미나 첫시간을 홍 교수가 “이슬람의 관점에서 말레이시아의 인권을 다루겠다”고 ‘선언’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인권문제를 접근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슬람보다도 더 낯선 동남아시아를 다룬다는 것도 쉽게 접하기 힘든 기회였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온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서구인권개념이 자유권에 치우쳐 있다고 얘길 시작했는데 본론에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유권을 탄압하는 내용을 집중 거론”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서구인권기준으로 말레이시아 인권현황을 고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홍 교수에겐 더 뼈아픈 비평이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9월 15일 오후 17시 4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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