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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방문기, 성찰없는 평화는 공허하다

[한일시민사회포럼] 야스쿠니신사 인상기
야스쿠니에서 느낀 ‘역겨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6/10/18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입구에 육중하게 서 있는 ‘도리’에 들어서서 나올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돈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역겨움’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거부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야스쿠니에서 느끼는 역겨움은 ‘성찰 없는 평화’가 보여주는 섬뜩한 전쟁찬미와 ‘남성성만 내세우는 마초 성향’에서 오는 균형감각 상실 때문이었다.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강국진기자
해질녘 야스쿠니신사.

‘어머니’ 조각상, 그러나 여성은 없다

류슈칸 앞에는 전쟁에 동원됐다 죽어간 군견과 군마, 심지어 비둘기까지 기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소년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동상도 서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더 사로잡은 것은 ‘어머니’이라 제목을 단 조각상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기모노를 입은 어머니가 서 있다. 오른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다. 어머니 양 옆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는 류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이 류슈칸 앞에 있는 팔 판사 기념비 앞에서 설명을 읽고 있다. 인도 출신인 팔 판사는 동경전범재판의 대표판사였다. 그는 11개국의 판사 중 도조 히데끼 등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 옆에는 일본 군함 모형을 조각한 조형물이 있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파손되거나 침몰한 군함 현황을 표시한 지도가 그 아래 있다. 거기서 류슈칸 입구 쪽으로 가보면 소년 카미가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조각상이 있다.

국가는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잘 키우라고 강조한다. 잘 키운 아들은 군인이 돼서 군함과 함께 죽거나 카미가제가 돼 죽으라고 한다. 딸은 커서 다시 전쟁에 죽을 아들을 낳아 잘 키우라고 한다. 오빠나 동생처럼 군인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각상에 있는 어머니 모습이 우수에 젖은 눈길로 보이는 것은 혼자 느낌일까.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한 일본 여성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류슈칸 어디에도 여성은 없었다. 야스쿠니가 강조하고 치켜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그것도 ‘남성 군인’이다. 여성은 오로지 군인들을 위해 후방지원에 동원됐던 군속과 간호사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

류슈칸에서 상영하는 ‘평화를 위한 서약’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어머니는 ‘조국을 위해 자폭하는 군인 아들’을 걱정하고 눈물흘리며 가슴에 묻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조국을 위해 싸워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항상 힘 없고 연약한 여성이다. 전쟁은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강조한다. 한국 군대에서 ‘여성성’은 언제나 ‘욕’이었다.

류슈칸에서 용산 전쟁기념관을 떠올리다

야스쿠니 신사 본전 건물 오른편에는 류슈칸(遊就館)이라는 큼지막한 건물이 있다. 이른바 전쟁기념관이다. 빡빡한 일정 와중에 시간을 내서 야스쿠니신사를 가려고 할 때 누군가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류슈칸만 가 봐도 왜 야스쿠니를 반대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던 그 곳에서 역겨움은 극에 달했다.

그곳에서 나는 용산 전쟁기념관이 머리에 멈돌았다. ‘평화 감수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용산 전쟁기념관과 한국 곳곳에 있는 안보기념관이 류슈칸과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곳곳에 대나무로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참배객들은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 소원을 빌어 매달아놓는다.

입장료 800엔을 내고 류슈칸 전시실로 들어섰다. 첫 번째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일본인들이 사용했다는 칼과 활, 갑옷 같은 전쟁무기다. 제목부터 ‘일본 무(武)의 역사’다. 전시물은 곧바로 일본 근대로 넘어간다. 개항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쳐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더니 2차세계대전과 패전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것은 모조리 ‘전쟁’ 뿐이다. 마치 일본이란 나라는 개항부터 지금까지 전쟁만 벌인 나라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전시물에 붙어 있는 설명은 ‘성찰 없는 평화’가 왜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한일합방’을 설명하는 내용은 “조선 정부가 일본 통감부에 양국 합방을 요청했고 일본 정부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만주국 건국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오족(五族) 평화를 위해 만주국을 건립했다’고만 써놨다. 심지어 태평양전쟁조차 일본의 침략은 온데 간데 없고 국제정치적 갈등에서 나온 갈등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한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용사들의 사진들’을 지나 마무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전쟁 찬가다. 2차대전 말기 일본군 잠수함은 미군 함정을 향해 돌격하다 전사하고 미군 함대 지휘관은 이들의 애국심에 감동해 이들을 정중하게 장례지낸다는 내용이다. 제목은 더 황당하게도 ‘평화를 위한 서약’이다.  

전시실을 나서면 기념품 판매소가 있는데 그 곳에서 파는 물품조차 자위대가 쓰는 군사용품들이다. 자위대 군모와 무기 모형, 심지어 ‘자위대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항공자위대가 자랑하는 최신 전투기 사진으로 도배한 달력까지. 판매하는 책도 극우적 내용 일색이다.

야스쿠니표 교통안전 부적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에서 판매하는 교통안전부적.

시민들은 야스쿠니 본전 앞에 있는 참배장소에서 끊임없이 참배를 한다. 나무함에 돈을 던져넣고 박수를 두 번 친 뒤 고개를 숙인다. 건물 바깥에는 대나무로 울타리처럼 만들어놓은 게 눈에 띈다. 그 대나무 울타리에 하얀 쪽지를 빼곡히 묶어놨다. 심지어 야스쿠니 경내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에도 종이쪽지들이 있었다. 궁금증은 나중에야 풀렸다. 100엔을 내고 종이를 산 다음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는 거라고 한다.

참배장소 앞 한켠에는 물품판매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신관 옷차림을 한 여성이 파는 물품은 ‘교통안전 부적’이었다. 눈여겨 보니 ‘靖國神社交通安全御守護’라고 써 있다. 큰 부적은 1000엔이나 한다. 야스쿠니신사가 왕실 직속이니 일본 왕실의 권위를 빌어 교통안전을 기원하는 셈이다. 일본인들에게 야스쿠니, 그리고 일본 왕실은 여전히 신통력 있는 존재인 모양이다.

모르고 보면 공원 같은 야스쿠니

야스쿠니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다. 처음 야스쿠니에 들어설 때부터 가장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외국인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는 전쟁기념관보다는 공원에 가까워 보인다.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강국진기자

야스쿠니신사는 얼핏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야스쿠니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한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꼭 붙어앉은 이들은 계속 귓속말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분위기 좋고 조용한 데이트장소일 뿐이다. 도쿄 시내 지하철을 타다가 한 남성이 찬 허리띠가 머리를 스친다. 묵직한 총알이 주렁주렁 달린 딴띠 모양으로 된 허리띠였다.

상념은 새까만 색깔로 통일한 일본 고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이어진다. 곧이어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똑같은 옷차림은 마찬가지인 한국 학생들의 교복도 떠오른다. 대형 서점 역사코너를 가보면 극우성향 고대사 책이 넘쳐나는 한국이 자꾸만 겹치는 것은 왜일까.

2년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평화운동가 진 스톨츠푸스는 “평화는 정의와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일견 평화롭고 깔끔하게 관리한 공원같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나는 “평화는 성찰과 함께 할 때만 온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일본인에게도 절실한 얘기지만 한국인에게도 흘려 들을 수 없는 얘기가 아닐까.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0월 17일 오후 20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2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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