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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아닌 개발독재가 인권 좀먹는다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는 <시민의신문>과 함께 9월부터 다섯번에 걸쳐 ‘포스트 9·11 시대 아시아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말레이시아·홍콩·중국·일본·한국을 주제로 각 지역 전문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이번 행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새로운 인권지형을 모색하는 학문적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 주최 :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 NGO대학원, 시민의신문
○ 후원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 장소 : 새천년관 7305호
①9/12(월) 오후 4시 -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인권”
②9/26(월) 오후 4시 - “인권 : 홍콩과 중국의 함수”
③10/10(월) 오후 6시 30분 - “일본의 헌법개정논의와 평화적 생존권”
④10/24(월) 오후 4시 - “한국의 이주 노동자 정책과 과제”
⑤11/7(월) 오후 4시 - “라운드테이블 토론”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슬람부흥운동의 결과 현재까지 지난 30여년간 이슬람의 교리와 원칙에 바탕을 둔 정치적 종교적 이론과 실천의 발전은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적 색채를 강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슬람 원칙에 기초한 은행제도와 보험, 국제이슬람대학 등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런 경향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이슬람화가 아니라 개발 또 개발”이다. 홍석준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문화인류학 전공)는 “개발독재와 그에 따른 인권쟁점이 말레이시아의 주요모순”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개발독재를 추구하는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말레이시아 인권구도를 설명한 뒤 대항세력을 속칭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시민사회운동으로 나눴다. 특히 이슬람의 견지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야당 세력 빠스(PAS)나 이슬람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은 이슬람의 규범과 원칙에 부합하는 인권개념을 강조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서구의 인권개념과 원리는 기본적으로 개인에 기초한 인간 개념에서 출발한다. 세계인권선언 등에 담긴 인간은 권리의 유일한 담지자로서 개인이다. 하지만 빠스 등은 이슬람이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통해 평화를 얻는다는 원칙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동등하게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인권에 관한 기본강령으로 내세운다. 여기서 인간은 집단적, 사회적 존재이다. 인권 개념은 집단적 가치 혹은 무슬림 공동체적 규범과 가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마하티르는 개발지상주의자”

홍 교수는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에 대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통념과 상반되는 주장을 폈다. 무엇보다도 “마하티르가 이슬람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슬람을 이용해먹었다”는게 홍 교수 생각이다. 그는 “마하티르는 경제발전을 가장 중시하며 그걸 위해서라면 서구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IMF와 미국·영국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왜 미국이 마하티르를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처럼 대하지 않았겠느냐”며 “교묘한 외교술”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강국진기자 

그는 특히 “마하티르가 박정희를 본받자는 얘길 해서 한국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마하티르의 본심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본받자는 것인데 말레이시아 다수종족인 말레이인들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화인(華人)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것을 고려해서 박정희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독재는 사회통제를 수반한다. 말레이시아 연방헌법은 일련의 인권제한에 관한 법률과 조례들은 국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정부 당국이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다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내치안법이다. 이것은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는 법률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경찰법, 공무원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공무원비밀법, 인쇄출판의 자유를 구속하는 인쇄출판법, 대학 구성원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대학법, 각종 비정구기구의 활동을 제한하는 사회법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법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고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시민단체들은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담론을 활용하거나 잠재적인 테러 위협에 직면한 상태에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경제개발을 시민의 정치적, 시민적 권리보다 상위에 두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아시아적 가치’는 유신정권이 강조했던 ‘한국적 민주주의’처럼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을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참신한 시도, 아쉬운 뒷심

여성할례, 명예살인, 일부다처제, 가부장제, 차도르, 빈곤, 테러리즘… 한국인들이 이슬람 사회의 인권을 바라보는 눈은 썩 곱지 않은게 사실이다. ‘낯설다’는 느낌은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로 다가오고 텔레비전과 신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 기사’로 이슬람을 색칠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의 눈이 아니라 ‘서구’의 눈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눈이 지극히 편향돼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이슬람의 눈으로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민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하기만 하다. 더구나 그런 노력조차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같은 ‘중동’ 즉 ‘아랍세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 12일 세미나 첫시간을 홍 교수가 “이슬람의 관점에서 말레이시아의 인권을 다루겠다”고 ‘선언’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인권문제를 접근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슬람보다도 더 낯선 동남아시아를 다룬다는 것도 쉽게 접하기 힘든 기회였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온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서구인권개념이 자유권에 치우쳐 있다고 얘길 시작했는데 본론에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유권을 탄압하는 내용을 집중 거론”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서구인권기준으로 말레이시아 인권현황을 고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홍 교수에겐 더 뼈아픈 비평이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9월 15일 오후 17시 4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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