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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릴타 혹은 쿠릴타이의 기원

흔히 쿠릴타이로 알려져 있는 몽골제국의 코릴타는 흉노이래 북방민족의 역사에서 계속해서 보인다. 그 최초의 예는 오환(烏桓)과 선비(鮮卑)이다. 오환은 "마땅히 용감하고 건장하며, 판결을 다투거나 서로 침범하는 문제를 이치에 맞게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추대하여 대인(yeke hun)으로 세우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선비제국을 건설했던 단석괴도 "온 부락이 두려워 복종"하고 "법을 엄하게 시행하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바로 했는데, 감히 어기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위치를 가진 후에 "대인으로 추대"되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오환과 선비에서 칸을 선출하는 회의를 했다는 것과 부족간의 분쟁을 공평하게 해결하고 전쟁을 잘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을 칸으로 선출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유라시아 동반부에서 최초로 건설된 유목제국인 흉노의 경우 코릴타를 통해 선우를 선출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간접적이나마 '농성의 대제(大祭)'가 선우를 선출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허려권거선우((B.C.E.68∼B.C.E.60) 때 우현왕이 농성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우현왕과 간통한 사이였던 카톤(Khatun, 황후) 전거알씨가 선우의 병이 심하다며 멀리 가지 말라고 말렸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농성의 대제' 혹은 '용성의 대제(龍城大祭)'가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도 "흉노의 풍속은 해마다 세 군데 용사(龍祠)가 있다. 항상 정월, 오월, 구월의 5일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남[흉노의] 선우가 귀순한 다음부터는 한나라 황제도 같이 제사지낸다. 모든 부족이 모이기 때문에 나랏일을 의논하고 말달리기와 낙타[싸움]을 즐긴다."라든가 "안국(安國) 선우(C.E.93-C.E.94)가 용성에서 대회를 열어 나랏일을 의논할 때마다 안국선우의 정적이었던 좌현왕 '사자(師子)'는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흉노의 속국인 오손(烏孫)의 왕이 농성의 대제에 참석하지 않자 흉노에서 군대를 보내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5월에 열리는 집회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를 보여준다. 히라토리(白鳥庫吉)나 內田吟風은 5월에 열리는 농성의 회의가 이성제후(異姓諸侯)와 속부(屬部)의 부족장이 모두 참가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닌다고 단정한다. 그 이유는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최고 지배자인 선우에게 충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는 몽골제국의 코릴타와 관련하여 매우 주목되는 점이다.

위의 기록을 통해 흉노에서 매년 봄에 있었던 '농성의 대제'가 어떤 구실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선우를 선출하거나 계승을 공식적으로 인준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하였다. 국가의 최고 재판정이기도 했다. 몽골제국의 경우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농성의 대제'를 일종의 코릴타로 간주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는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코릴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학자인 箭內亘은 더 나아가 "두만 선우" 이전의 흉노와 동호(東胡)의 경우에도 코릴타와 같은 전통이 있었다고 보고 있는데 글쓴이도 이에 동감한다.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문제는 그 부족이나 국가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코릴타에서 후보자의 능력을 검증하고 모두가 그 후보자를 승인하는 절차는 흉노 이래의 '제한된 공채'를 통한 '적임자 계승제도'를 체계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대카한은 제실들의 호선방식으로 선발되었다. 몽골이라는 공동체와 국가의 행복을 가장 잘 지도할 것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게 택해진 대카한은 그의 직분을 수행하는 한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었다. 결코 태어나면서 절대전제군주였던 것이 아니다. 실제로 몽골대카한 개인이 개인적으로 발휘하는 권한은 극히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 어디까지나 성원의 여망과 당사자의 능력 본위로 선출되고, 선출된 한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통솔한다. 그러나 그 권력은 카한 일대에 제한된다. 다른 카한이 즉위하면 중앙정부를 비롯하여, 모든 기구의 면모는 변화한다. 이전 카한의 특허장은 무효가 되고, 새롭게 주어지지 않으면 종래와 같은 권익을 가지기 어렵다. 대카한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와 비슷하다" (스기야마 마사아키,『몽골세계제국』에서)

우리는 흉노 이래로 북방민족에게서 발견되는 제천행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흉노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각 집단의 우두머리가 모두 모여 서로의 분쟁을 해결하여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내와 국외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며 후계자를 검증하는 자리가 바로 제천행사였다. 새 풀이 돋는 4월이나 마유주가 산출되는 5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제천행사를 살펴 볼 때, 코릴타는 이 제천행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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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길,『북방민족의 샤마니즘과 제사습속』, (국립민속박물관, 1998).
스기야마 마사아키, 임대희 옮김, 『몽골세계제국』, (신서원, 1999).
김호동,<고대유목국가의 구조>,『강좌중국사』2, (지식산업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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