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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성살해를 한국사회 맥락에서 정치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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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의 수에 대한 통계, 페미사이드에 관한 통계는 부재하지만 한국사회는 ‘여성의 죽음에 대한 재현’에 대해서 꽤나 민감하게 반응해온 것처럼 보인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곧 촛불시위로 번지게 했던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의도적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군사협정에 의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의한 한국 여성의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어떠한 판결의 권한도 갖지 못한 채 미군법정에서 ‘과실치사’라는 면죄부에 가까운 판결을 내리는 상황에 대해서 국민적 분노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보다 10여년 전에 국민적인 여론을 들끓게 했던 사건 역시 미군에 의한 한국인 여성의 피살 사건이 있었다. 이는 명백한 페미사이드로 동두천의 기지촌 여성을 미군이 잔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피의자 미군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수사권과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바로 신병을 미군에 인도해야 했다. 이와 같이 전 국민이 공분할 만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여성살해는 미군에 의한 한국인 여성 살해,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군법정은 거의 면죄부에 가까운 판결을 내림으로써 한국 국민들에게 국가적인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인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여성의 살해는 거리에서 한국인 혹은 외국인 남성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국민적인 분노는 피의자 남성의 철저한 신상 노출, 얼굴 공개를 비롯하여 그의 비정상적인 잔인함과 악함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에 대한 최고수준의 강력한 형사처벌이 집행됨으로써  해소되고 있다. 


가부장적인 국가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죽음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되는 사회, 문화적 맥락은 무엇일까? 이러한 사건의 초점은 이견이 있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가해자 남성과 완벽한 피해자 여성의 재현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분이 발생하게 된다. 나중에 좀 더 살펴보겠지만 성매매 여성의 경우는 언제나 완벽한 피해자일 수만은 없지만 미군병사 혹은 유영철과 같은 완벽한 가해자 남성의 존재는 그녀들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게 만든다. 2012년 수원에서 발생한 조선족 남성의 여성 살해사건은 피해자 여성이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레코딩된 도움을 요청하는 다급하고 두려움에 가득한 목소리에 대한 기록과 그에 대한 경찰의 무능력한 대응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피해자 그녀’의 죽음에 대해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온갖 00녀들이 난무하는 여성혐오 분위기가 팽만한 한국사회에서 살인 사건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남성이 가해자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여성 살해’에 맞춰져 있다. 반면 (성인) 남성이 살해된 사건이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미수/기수사건을 모두 포함한 1204건의 살인 사건 중 성별피해현황은 남성이 721건, 여성이 477명으로 집계되었다. 살인사건은 인구 10만 명당 2.4건 정도 발생하는 수준으로 지난 5년간 큰 변동 없이 (2006년의 경우 2.3건) 유지되고 있는 수준이다. 즉 여성 살해 사건이 아동 성폭력 사건과 더불어 2008년 이후 급격한 사회적 관심과 공분을 일으키는 이슈가 된 것에 대해 단순한 통계적 수치가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통계적 수치로 짐작되는 것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폭력이나 무기사용을 동반한 강력범죄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며, 여성들이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살해에 맞춰진 전 국민적인 사회적 관심은 전혀 당연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성 살해로 재현되는 것,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키는 가시화된 여성 살해 사건 이면에는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국민 정서에 따라 여성이 ‘피해자’로서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비가시화된 ‘여성 살해’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길거리가 아닌 가장 안전하고 사적 공간이라고 여겨지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살해 사건을 덜 중요한 것으로 혹은 특수한 소수 가정의 문제로 국한 시키게 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뿐만 아니라 여성 살해 사건에 대한 선정적인 언론보도와 과도한 사회적 관심은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킴으로써 국가의 경찰권력과 형벌체계를 반인권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여성 살해 사건을 해결하고 이와 같은 사회적 공포를 경감시키고 안전과 예방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가부장 남성주체로서 국가와 경찰력이 되는 것이다. 악질적인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이라는 명백한 구도의 여성 살해 보도는 오히려 살해가 발생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을 모두 가리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 맥락에서 ‘여성살해’ 개념을 정치화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살해 개념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 젠더 이분법에 따라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는 맥락화를 요구한다. 이는 2001년 다이안 러셀(2008)이 규정한 여성살해 개념- “여성(female)이라는 이유로 남성(male)에 의한 여성(female)의 살해”에 비판적으로 거리두기 하는 입장이다. 황주영(2013)이 주장하듯 “성차별주의라는 말은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 성적 관계들을 조직화하는 다양한 장치들, 무의식적이거나 심리적인 차원들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여성 살해에 이르게 되는 젠더폭력이 발생하는 맥락은 단순히 남성의 폭력성향이나, 폭력의 행사를 통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욕구로 획일적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이는 단순히 사건 발생 당사자인 피해자/가해자와의 성별 권력관계를 넘어서 더 넓은 사회, 경제적 세력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져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Haaken 2002, Shalhoub-Kevorkian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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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에 기인한 여성살해의 사회적 맥락화

 

1975년 처음 여성 살해(femicide) 개념을 고안한 다이안 러셀(2008)은 길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낯선 남성에 의해 발생하는 ‘묻지마 폭력’만큼이나 위험하지만 사적 영역의 문제로 치부되어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죽음에 대해 초점을 두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여성살해의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상담소 한국 여성의 전화가 2012년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사흘에 한 명꼴 (120 여명)로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1 즉 남성이 살해되는 것에 비해 많은 여성들은 실제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파트너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우리는 이를 젠더폭력에 의한
‘여성살해’ 개념으로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새로운 정부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요 정책과제로 ‘4대악 척결’을 내세우며 4대악 중의 하나로서 가정폭력을 언급하고 있을 만큼 ‘가정폭력’ 문제는 ‘성폭력’ 문제와 더불어 사회적 문제로서 가시적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경제 민주화’보다도 ‘4대악 척결’이라는 치안국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이지만 경찰지서에서 실적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 외에 가정폭력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변화된 것이 없는 것 같다. 지난 5월 4일 경 이혼 소송 중이던 30대 여성을 61살 남편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2 이 사건이 문제화되는 이유는 지난 10여년 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가정폭력 피해자쉼터에서 자립을 준비함과 동시에 남편과 이혼소송을 하며 상습적인 폭력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다 했지만  의정부지법 고양법원은 그녀와 남편에게 부부상담 명령을 내리고 이혼을 지연시켰던 것이다. 그녀는 이혼을 위한 ‘부부상담’을 하는 기간 동안 남편과 이혼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고양법원은 여성이 상습적인 가정폭력 사실을 진술한 것에 대해서 목사인 남편이 우발적인 폭행이 한 번 있었을 뿐이라는 진술과 다투는 사안이었다고 주장했다. 가정폭력을 비롯한 4대악 척결을 부르짖던 정부의 사법기관이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범죄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판결을 내렸고 이는 남편에 의한 여성의 죽음을 방치 또는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가정폭력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실질적으로 법의 집행을 통해 가정폭력을 범죄화하고 형사처벌해야 할 국가와 사법부가 “사적영역을 공적 법률이 침범할 수 없는 무법지대”로 만들어버리는 데 있다. 즉 목사인 남편은 공적영역에서는 법을 무서워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아내를 존중하는 제스쳐를 취했을지 모르나 치외법권지역으로서 사적영역인 가정에서는 그러한 자기 통제를 더 이상 할 필요 없이 자신의 분노를 아내에게 마음껏 투사하고 표출해도 되는 가부장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샬홉-케보르키안(2002)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여성에게 발생하는 명예살인을 ‘여성살해’로 개념화하면서 여성의 죽음을 단순히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상태’라는 과학적인 판단으로 규정하지 말고 피해자 여성이 도저히 생존을 유지할 의지를 갖지 못할 만큼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상황을 만드는 과정자체로 개념을 확장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국의 사법기관도 샬홉-케보르키안의 여성 살해의 개념을 따를 때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결과에 이르도록 십수년 간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방치된 피해자 여성의 삶을 “잦은 부부싸움이 부른 우발적 살인”과 같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개인 여성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보호하고 ‘사적 가부장제’의 폭력을 방지하고 범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조치를 통해 강력하게 개입해야할 문제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복지국가로서 발전하지 못한 한국의 전후 자본주의 발전국가의 역사를 참조해보면 다른 서구 국가 혹은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저어하고 사적인 가부장제의 권력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가정폭력’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사소화 시켜온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전후 국가의 혼란한 상황과 극심한 저개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전 사회조직을 서구의 남성중심적 자본주의 모델에 맞춰 국민들을 가부장적이고 젠더화된 방식에 따라 통치하고자 했다. 일제 식민통치와 전쟁을 거친 한국사회의 식민적 상황에서 서구 자본주의 모델을 모방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수용하는 것 이상의 거시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도의 탈식민학자 아쉬스 난디(1983)가 규정했던 초남성성은 식민지 통치의 젠더화된 통치에 대한 반동적인 심리적 반응으로서 나타나는데 이는 그 동안 서구 열강에 비해 무력하고 수동적이며 열등한 속성을 가진 피식민 민족을 ‘여성성’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항하여 지역의 전통적 가부장 권력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재강화함으로써 서구 열강의 근대화 모델을 실질적으로 모방하게 되는 민족주의를 의미한다. 박정희 정부는 ‘내훈’과 ‘삼강행실도’에 비견될만한 전통적인 유교적 가부장의 모습으로 국가를 초남성화하는 반면 사회를 초여성화함으로써 국가의 경제발전과 근대화 프로젝트에 어떠한 이견을 제기함 없이 복종하고 희생할 것을 도덕적으로 강요했다(Han and Ling 1998). 국가와 대비하여 사회의 영역에 들어가는 존재들은 노동자 계층과 여성들이었지만, 이와 같은 자본주의 발전국가 모델은 단순히 국가와 사회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통치에서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차원에서도 민주적이고 평등한 개인들이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적인 가부장의 명령에 복종하고 부계혈통의 전통적 가부장적 관습과 제도를 존속시키고 재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적 통치가 작동하는 데 기여했다. 이와 같이 전 사회적으로 파급된 가부장적 가족적 가치의 강화는 다른 공적인 시민사회적 연대보다 사적인 가부장적 이성애 핵가족을 우선시함으로써 국가와 개인이 직접적으로 관계하기보다는 가족의 모든 구성원은 사적 가부장을 중심 매개로 국가와 관계하게 되고 복지국가로서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가족의 구성원들의 사적 가부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는데 기여했다. 즉 가정폭력에 국가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데 있어서는 가정폭력의 엄격한 형사처벌로 인해 사적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를 깨뜨리지 않아야 할 거시적인 사회적 경제적 맥락이 숨어 있는 것이다. 국가는 한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보다 ‘건강한 가정’을 보호해야 할 구체적인 명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1998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처음 제정되었을 당시 제1조에서 입법목적을 “피해자보호를 통한 건강한 가정의 육성”으로 규정하고 지금은 삭제되었지만 제3조에서 “건전한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선언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여성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06년 이후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호·지원함을 목적”하는 것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짐으로써 가정폭력 범죄 처벌에 있어서도 법적으로는 다른 형사/민사법과는 달리 특례법으로서 적극적인 피해자보호 우선주의의 원칙이 법적으로 명시되기에 이르렀다. 즉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의 보호는 실질적으로 가해자 남성과 격리시키고 접근을 금지하는 명령이 우선될 때 가능해진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각적으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9조의 임시조치를 통해 가해자의 주거접근제한을 명령하고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인도함으로써 폭력의 재발을 적극적으로 방지해야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경찰권의 행사는 대부분 피해자 여성의 진술보다는 남성의 자기 방어적 진술에 초점을 두고 ‘부부싸움’이나 ‘집안일’로서 치부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돌아감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10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유로 경찰이 신고 후 행위자에 대해서 아무런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는 비율이 59.3%에 이르고 신고 후 폭력이 이전보다 늘었다는 응답도 14.8%에 이른다.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에 못 견디다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게 되어 수감된 여성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질적연구(김지영, 강우예, 김성규 2010)에 따르면 피해자 여성이 가정폭력의 발생으로 인해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동하기 앞서 남편의 전화로 신고여부를 재차 확인하는 전화를 함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출동을 해도 경찰들은 여성의 피해상황을 적극적으로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남편의 변명에 보다 귀 기울이고 문제를 사소화시키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남성 경찰은 가해자 남성과 동일한 사적 가부장의 입장에서 가정폭력 문제를 대하고 있으며 이는 피해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특례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지영 외(2010)의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여성 살해가 아닌 남편을 살해한 여성 살인 범죄자이지만 이는 과학적인 결과로서 살인의 피해를 누가 입었느냐보다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서 가해자 남성을 죽이게 된 ‘여성 생존자’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샬홉-케보르키안의 여성 살해 개념을 빌려오자면 이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경찰이 가정폭력에 대해서 방관하고 결과적으로 사적 가부장이 자유롭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는 극단적인 폭력-피학대의 상황을 조장한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성 살해에 이르게 되는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맥락의 지점은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다. 앞서 얘기한 사적 가부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심화시키는 사회시스템에서 가정폭력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에 있어서 가해자는 대개 하층계급 남성인 경우가 많다. 김지영 외(2010)의 연구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의 인터뷰에서도 경제적 학대의 문제를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꼽고 있는데, 이들 피학대 여성의 남편들은 생계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아내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아내가 벌어온 돈을 유흥에다가 모두 써버리는 등의 ‘빈곤의 문화’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학대와 폭력 발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러한 사적 가부장이 야기한 ‘빈곤의 문화’로부터 여성 개인이 적극적으로 벗어날 수 없게끔, 국가와 여성 개인이 직접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과 시스템이 거의 부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1366 여성긴급전화 서비스가 존재하고 각종 가정폭력상담소 쉼터보호시설들이 국가적인 지원 아래에서 존재하지만 가정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이전 단계에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여성은 충분한 피해사실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제니스 하켄(2002)이 지적하듯 여성의 빈곤을 ‘가난한 남성’의 탓으로 돌리게 되면 복지 시스템의 수혜자로서 자격이 있는 여성-부러진 뼈와 멍 자국을 내보일 수 있는 여성-과 자격이 없는 평범한 여성을 가르는 경계를 강화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개인 여성이 낭만적 사랑에 근거한 친밀성의 욕망 때문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불안정성의 문제로 결혼을 하고 사적 가부장제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국가와 사회가 마련함으로써 가정폭력과 여성살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에 있어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체류권과 더불어 경제적 문제가 여성이 쉽게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나올 수 없는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현미(2012)에 의하면 결혼이주여성의 ‘국제결혼’은 경제적으로 저개발국가의 여성들이 자국 내에서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차원의 이주를 감행하는 것이고 따라서 결혼이주 역시 결혼의 형식을 띠지만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며 돌봄/가사노동을 비롯한 사적영역의 재생산 노동을 수행하는 생존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제결혼을 한 한국남성들이 자신의 배우자인 외국인여성의 집에 지속적으로 송금을 함으로써 부부간의 결속과 친밀성을 강화시킨다는 맥락은 이러한 친밀성이 경제적 거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결혼이주는 결혼할 남편의 신원보증에 의해서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조건과 제한된 체류기간을 정하게 되는 고용허가제에 의한 독립적인 이주에 비해 보다 쉽고 안정적으로 이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에게 체류권은 일정기간 동안의 한국 체류기간 이후의 남편의 신원보증에 의해서만 영주권이나 국적취득과 같은 형식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그만큼 남편과의 관계가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경제적 문제나 체류권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있어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결혼이주여성은 가정폭력의 발생에 있어서 다른 한국인 여성에 비해 자기 권리를 주장하거나 결혼을 파기하고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3 


이처럼 가정폭력을 문제화하고 여성 살해를 정치화하기 위해 가부장제와 남성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만큼이나 경제적인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최근의 신자유주의 국가는 형벌우선주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복지국가의 축소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범죄 발생의 문제를 감옥시설에 더 많은 수감자를 집어넣음으로써 모든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책임으로 돌리려는 통치방식을 노골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Wacquant 1999). 최근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시기에 발생한 아동 성폭력과 관련된 선정적 보도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강력한 여론에 힘입어 각종 반인권적인 형벌 우선주의 원칙이 빠른 속도로 통과되고 있는 지점은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통치방식으로의 이행과정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는 담론에 대해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어떠한 이견 없이 일치된 입장을 가지고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은 실질적으로 여성살해와 같은 범죄 발생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계급계층인구에 대한 혐오와 근거 없는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살해의 사회적 맥락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문화적으로 새롭게 강조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가치’ 부여이다. 이는 두말 할 것 없이 복지국가의 쇠퇴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사적 가부장제’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가족 바깥에 있으면서 오히려 가족의 위협이 되는 성매매의 경우 성매매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이나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은 언제나 피해자로 규정되지 않는다. 


2002년 1월 군산 집창촌에서 발생한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은 성매매의 성격을 인신매매로서 규정함으로써 성매매를 근절하고 반대해야 하는 여론을 분명하게 하는 ‘여성살해’ 사건이었다.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등 방지법>은 성매매여성을 ‘윤락녀’로 규정함으로써 ‘타락한 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그대로 담지 했다면 2004년 제정된 <성매매방지특별법>에서 성매매를 인신매매로 규정한 것은 성매매를 불법화하고 성매매여성이 성산업의 ‘피해자’로서 여겨질 수 있는 유력한 근거를 최초로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매매방지특별법은 인신매매로서 성매매를 불법화하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성산업에 진입했다고 판단되는 성매매여성은 피해자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대상이며 오히려 성구매자와 동일하게 성산업을 조장하고 불법화된 방식으로 이득을 취한 범법자로 몰릴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즉 “매춘의 피해자”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고 자발/비자발 여부에 따라 인권의 보호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윤락녀라는 용어만 없앴을 뿐 실질적으로 법에서 성매매행위와 성매매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지속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과 같다.       


불법화된 성산업에서 성매매 피해의 대상이 누구이며, 국가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여성,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과정에서는 매춘을 둘러싼 민족국가적 상상이 동원된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기에 ‘처음 형성된 집창촌’과 전후 미군정기에 만들어진 ‘기지촌’은 매춘을 외세의 침입과 동일시하고 매춘여성은 민족국가의 역사에서 여성 억압의 상징이 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위안부 여성들의 운동은 강제된 매춘이라는 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의 사과를 받는 것에 국가주의적 노력이 기울여지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과 달리 강제된 시스템이 없었던 “자발적 창녀”들은 그렇지 못하다(Moon 1999,319, Cheng 2011,419에서 재인용). 그러나 민족국가적 상상에 의해서 승인된 합법적인 여성 피해자는 여성의 무력함과 성 노동에 대해서 어떠한 능동적 대응도 할 수 없었던 “비체화된 피해자”로 남게된다(Cheng 2011,491). 이러한 민족국가의 매춘에 대한 이해와 인신매매로서 성매매를 규정짓는 국제인권규준이 만났을 때 성매매는 근절되어져야만 하고, 가부장적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여성 인권에 대한 보호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성매매의 상황에 놓여지게 된, 탈성매매의 의지가 강한 “좋은 여성”을 선별해내는 작업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Cheng 2011.493). 


그렇다면 우리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가정폭력방지법과는 달리 성매매 당사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다. 쳉(2011)은 2000년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에 대한 방지, 억제, 처벌에 관한 유엔 협약”에 근거한 국제인권규범이 당시 여성부와 인권위원회를 창설하면서 여성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던 김대중 정부에 지역화된 방식으로 번역되면서 ‘인신매매로서의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군산의 집창촌 화재사건 이전에 2001년 미국 정부에서 발행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이 버마와 수단과 같은 저개발국가 나라들과 같이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국제기준을 충족시키는 수준이 최하등급(3등급)인 것으로 평가된 것은 발전된 국가 중 하나로서 한국정부의 국가적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인신매매가 없는 인권국가로서 국격을 높이고자 하는 김대중 정부의 의지와 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성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한 ‘반성매매 운동’을 하고 있던 여성단체들의 로비와 정책입안의 노력은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실질적인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은 실질적으로 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하고 실제로 업주와 경찰간의 공모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채무관계와 변화무쌍한 착취적 노동조건을 여성 인권의 보호의 범주로 넣지 못하게 한다. 2010년과 11년 사이 8명의 포항지역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모두 성매매를 강요당하며 일을 해도 끊임없이 불어나는 사채로 인해 성매매 업소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성매매방지법에 따르면 업주와 성 구매자로부터 갈취와 폭력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더라도 ‘성매매된 자’로서 자신의 피해자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곧바로 성매매 범죄자가 되는 위험에 처해져 있다. 따라서 성매매 방지법이 성매매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채를 모두 무효화시킴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성매매 여성들은 법의 보호의 테두리 밖에 있게 되고 업주의 횡포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게 된다. 가족이나 다른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예외적 공간에 놓이게 된 성매매 여성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사채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에 절망하며 죽어가게 된다. 


또한 성매매방지특별법에 의해서 불법화 되면서 집창촌의 형태로 노출되어 있던 성매매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많은 성매매가 오피스텔이나 여관, 원룸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음성화된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성구매자 남성의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여성 살해도 주목해야할 문제이다. 2004년 유영철이 성매매여성들을 살해한 방식도 자신의 사적인 공간으로 이들을 불러들임으로써 가능했던 것이었고 지난 10년간 언론에 보도된 16건의 여성살해 사례들 중에서 2/3 이상이 이와 같은 여관, 오피스텔, 원룸 등의 장소에서 발생한 것들 이었다.4  


성매매방지특별법을 둘러싼 계급적인 이해의 충돌은 이미 몇 차례의 성매매여성들의 대규모 집회시위에서의 생계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통해서 발생한 바 있다. 법의 제정 즉시 2004년 10월 즈음 여의도에서 3000여명의 성매매여성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 있고 2011년 5월에는 영등포의 백화점 앞에서 400여명이 경찰의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현재 성매매방지특별법은 2012년 12월 서울 북부지원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성매매처벌법에 관한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상태이다. 이에 대해 한 국회 보고서는 “성매매를 성적자기결정권으로 접근하기보다 사회 경제적 약자의 마지막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것”을 지적하며 모든 성판매 여성의 비범죄화를 지지하였다.5 


엘리자베스 번스타인(2012)은 미국사회에서 성매매를 여성억압으로서 주장하며 성매매를 불법화하고 경찰의 단속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백인 중산층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성구매자 남성을 가정에 헌신하도록 길들임과 동시에 경찰에게 더 많은 단속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공적 공간에서 계급적 타자를 제거하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비롯되는 도시 재구조화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와 공명한다고 비판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성매매방지특별법은 많은 성구매자 남성들을 처벌하고 일정 부분 성매매 여성의 탈성매매를 지원함으로써 더 이상 성매매를 지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판매 여성들의 삶이 폭력이나 죽음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것은 성매매를 불법화한 성매매방지특별법이 결코 이들 여성을 위한 법으로서 제정된 법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위주체’로서 성판매 여성들의 피해자성은 그들 스스로의 권리주장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중산층 가정을 이루면서 자신의 남성 파트너를 길들여야 할 다른 계급적 이해를 가진 여성운동집단에 의해 혹은 온정적인 가부장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이해와 맞닿아져서 덧씌워진 것이다. 이와 같이 성매매여성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성살해의 정치적 의미는 단순히 성을 구매하는 남성에 의한 행위와 이들의 폭력을 문제시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여러 가지 경제 사회적 문제와 쟁점들을 제기하게 한다.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로서 여성살해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여성 살해가 다이안 러셀이 주장했듯이 젠더 이분법에 따른 성차별주의와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만이 아닌 문제와 정치적 함의를 가질 수 있음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멕시코의 후아레스 공장 지역에서는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 여성들이 출퇴근 길에 갱단의 폭력에 의해서 십수년 동안 잔인하게 살해되고 있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부권적 신자유주의 국가가 하층계급여성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 있어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죽은 피해자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반복되어오고 있다. 후아레스 지역에서 발생한 여성들의 죽음을 ‘여성살해’라고 규정하고 정치화한 페미니스트 학자 멜리사 라이트는 이와 같은 ‘여성살해’가 피해자 여성이 죽음과 동시에 하나의 사건 종결로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죽이며 누가 죽음이 표적이 되느냐를 둘러싼 죽음의 젠더화된 의미를 다양한 정치경제적 권력과 교차하면서 해석하고 체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타자의 죽음을 정당화하며 어떤 누군가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주체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했다(Wright 2011). 제니스 하켄은 젠더화된 폭력은 단순히 사적영역에서의 “남자의 주먹 혹은 무기의 사용, 혹은 잔인한 살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경제적 경쟁이라는 다소 문명화된 형태를 띠고서 공적생활의 구조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Haaken 2002(2012), 210). ‘여성살해’의 정치화는 이와 같이 단순히 문화적인 차원에서 남성의 폭력과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젠더화된 방식으로 구조화된 다양한 사회적 현실의 물적 토대를 드러냄으로써 누구의 희생으로 누가 진정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주석

 

1     오마이뉴스. 2013 “가정폭력·데이트폭력에 죽는 여성들, 왜 늘어날까” 3월 11일 
2    한겨례신문. 2013. ““죽인다”는 남편과 ‘협의’하라니…아내는 이혼소송중 살해됐다“ 5월 23일 
3    “여성가족부 산하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연도별 상담실적을 살펴보면 2007년 1674건이었던 가정폭력 피해 상담은 2008년 2351건, 2009년 4205건, 2010년 4672건, 2011년 5744건으로 최근 몇 년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오마이뉴스, 2012. “‘코리안드림’ 꿈꿨지만...차가운 땅속으로”, 7월 16일)  
4     오마이뉴스, 2013. “성노동자의 살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문제다.” 5월 3일.
5     경향신문, 2013. “국회 입법조사처 “성판매 여성도 성매매 피해   
      자”“ 5월 29일. 

 


참고문헌

 

김지영, 강우예, 김성규. 2010. 「남편살해 피학대여성의 사회심리적 특성에 따른 형법적 대응방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현미. 2012. “사랑과 송금: 글로벌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와 친밀성의 물질화”.2012년 한국문화인류학회 가을학술대회: 위기의 문화 (미간행)
여성가족부, 2010.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황주영, 2013, “여성살해: 여성의 죽음을 맥락화 ․ 정치화 하기”(미간행)
Bernstein, Elizabeth, 2012. Carceral politics as gender justice? The “traffic in women” and neoliberal circuits of crime, sex, and rights, Theory and Society  Volume 41(3), pp 233-259
Cheng, Sealing. 2011. The Paradox of Vernacularization: Women’s Human Rights and the Gendering of Nationhood. Anthropological Quarterly. Volume 84(2). pp. 475-505 
Diana E. H. Russell, 2008. Femicide: Politicizing the Killing of females. Meeting on Strengthening Understanding of Femicide. Washington D.C. http://www.igwg.org/igwg_media/femicide/russell.doc
Haaken, J. 2002. Stories of survival: Class, race, and domestic violence. In Nancy Holmstrom (ed.) The Socialist Feminist Project: A Contemporary Reader in Theory and Politic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02-120. 유강은 옮김, 2012,“생존의 이야기: 계급, 민족, 가정폭력”,「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메이데이, pp.181-210,
Han, Jongwoo and Ling, L.H.M. 1998, “Authoritarianism in the Hypermasculinized State: Hybiridity, Patriarchy, and Capitalism in Korea”,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42, pp. 53-78
Moon, Katharine H. S. 1999. South Korean Movements against Militarized Sexual Labor. Asian Survey. Vol. 39(2). p. 319. Quoted in Cheng, Sealing. 2011. The Paradox of Vernacularization: Women’s Human Rights and the Gendering of Nationhood. Anthropological Quarterly. Volume 84(2). p.419.
Nandy, Ashis. 1983. The Intimate Enemy: Loss and Recovery of Self Under Colonialism. Delhi: Oxford UP. 이옥순 옮김. 1993.「친밀한 적 : 식민주의 시대의 자아의 상실과 재발견」.신구문화사
Shalhoub‐Kevorkian, Nadera. 2003. Reexamining Femicide: Breaking the Silence and Crossing “Scientific” Borders. Signs. Vol. 28(2). pp. 581-608
Wacquant, Loïc. 1999. Les Prisons de la misere. Paris: Editions Raisons d’agir. 류재화 옮김, 「가난을 엄벌하다」,시사IN북, 2010
Wright, Melissa W. 2011. Necropolitics, Narcopolitics and Femicide: Gendered Violence on the Mexico-U.S. Border, Signs. Vol.36, No.3 pp.707-731

 

 

보도자료

 

경향신문, 2013. “국회 입법조사처 “성판매 여성도 성매매 피해자”“ 5월 29일.
오마이뉴스, 2012. “‘코리안드림’ 꿈꿨지만...차가운 땅속으로”, 7월 16일
__________. 2013 “가정폭력·데이트폭력에 죽는 여성들, 왜 늘어날까” 3월 11일
__________, 2013. “성노동자의 살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문제다.” 5월 3일. 
한겨례신문. 2013. ““죽인다”는 남편과 ‘협의’하라니…아내는 이혼소송중 살해됐다“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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