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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4.18 공동행동의 날 : 한국 GP의 활동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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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은 전 지구적 가부장체제에 맞서 지구지역적 실천을 하기 위해 한국,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네 글로컬 포인트(GP)가 모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설립을 선언한 날입니다. 지난 2013년 1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네 곳의 GP활동가들이 함께한 설립위원회 회의에서는, 지구지역적 공동행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해 나가기로 하고 올해부터 매년 4월 18일에 공동의 의제를 정해 각국에서의 공동행동을 벌이기로 하였습니다. ‘공동행동의 날’은 매년 중요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전 지구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역적인 의제들을 함께 선정하여 진행됩니다.

 


올해 초에 열렸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설립위원회 회의 이후, 한국 GP에서도 올해 공동행동을 위한 준비로 바빴습니다. 2013년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한국,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네 곳에서 함께 진행하기로 한 공동행동의 의제는 바로 ‘Femicide’ 여성살해였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전 세계적으로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또 여성인데다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거나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죽어갑니다. 남녀평등사회라고 섣불리 불리는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어져있는 여성혐오의 맥락과 또 한국이라는 사회 내의 특수한 지역적 특징들이 있어서, 해외에서 써왔던 ‘Femicide’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내용을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Femicide’에 관한 연구가 몇 없을 정도로 아직 살해에서의 성별불평등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되지 않아왔습니다. 얼마 전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뉴스에 오른 살인사건만 조사해도 3일에 한 명 꼴로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한다며, 살해에 대한 성별분리 공식 국가통계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지역적 맥락에서 한국의 ‘Femicide’를 무엇으로 지칭할 것인지, 한국사회에서 어떤 유형의 여성살해가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여성살해를 반대하는 운동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별로 없었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 GP에서는 국외와 국내 자료를 참고하며 세 달간의 내부 논의를 통해 이번 4. 18 공동행동의 날에 사용할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 여성살해의 상당수는 남편, 애인, 아버지에 의해 일어난다.
- 여성살해는/ 가정폭력에 의한 살해는/ 성노동자 살해는/강간살해는/ 이주여성 살해는 사회적 죽음이다.
- 성희롱과 가정폭력을 용납하는 사회가 여성살해를 묵인한다.
-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처벌이 성노동자 살해로 이어진다. 성노동자 처벌 중단하라.
-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낙태 처벌 반대한다.
- 레즈비언과 트렌스젠더에 대한 폭력과 살해를 중단하라.
- 여성혐오가 여성살해를 부른다.

 

이 슬로건들은 여성살해가 우연한 사건이 아니며 단순히 사이코패스에 의해 운 나쁜 여자가 죽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살해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사회적 죽음으로써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주 여성, 성노동자, 성소수자 등 소수자 여성들의 죽음이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낙인과 차별 때문에 이 문제가 공론화되거나 추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여겨지는 남편과 아버지, 애인 등의 가부장에 의한 살해 또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여성살해라고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성살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이는 것’이자, 어떤 개인이 흉기로 여성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까지 포함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해외에서는 빈곤과 일부다처제로 인해 여성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것, 성별감별낙태와 여아유기, 낙태 처벌이 야기한 음성적인 수술로 인한 사망 등이 여성살해의 맥락에서 함께 고려되고 있습니다. 더 넓게 본다면 자본주의적 가부장체제에서의 빈곤으로 인한 여성사망, 부당한 노동조건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산재 등이 여성살해의 유형으로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GP에서는 한국의 상황에 맞게 여성살해의 특성과 내용을 검토하는 것 뿐 아니라, 여성이 (가부장의 대리자로써)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트렌스젠더 살해를 여성살해의 맥락 속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 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또 여성살해가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어떤 구호를 쓰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주체로써 여성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운동의 내용 뿐 아니라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습니다. 다음 GP설립위 회의에서 내년의 4.18 지구지역 공동행동 주제가 여성살해가 아닌 다른 주제로 선정될 수 있는데, 올해의 공동행동이 끝난 후에 어떻게 이 의제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자체적으로 하는 것과 한국의 다른 운동단체들과 함께 하는 것 중 무엇이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위와 같은 논의 끝에 ‘여성살해’라는 개념이 현재의 여성에 대한 성(적)폭력과 살해를 둘러싼 가부장적 담론에 시사점을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왜 하필 그/녀들은 모두 ‘여성이어야 했는가’ ‘왜 하필 여성이 그렇게 죽어나가는가’를 질문하는 운동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살해를 주제로 여성단체와 소수자인권단체 등 한국의 관련 단체들과 함께 힘을 모아 여성살해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기로 하였고, 이후에 지속할 운동도 외부 단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여성살해와 여성혐오의 문제는 단지 남녀불평등의 문제 뿐 아니라 이성애중심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순결이데올로기, 경제불평등의 문제가 함께 얽혀 나타난다는 것에 공감하신 여성단체와 사회주의운동단체, 성소수자단체, 이주민단체, 성노동자단체들이 여성살해 중단 촉구 촛불문화제의 공동주관을 맡아주셨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 GP에서는 4월 18일이 있는 주간을 ‘여성살해에 반대하는 NGA 공동행동 주간‘으로 설정하고, 그 주의 월요일인 15일에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18일 당일에는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언니네트워크,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함께 ’여성살해 중단을 촉구하는 4.18 지구지역 공동행동 “사라지는 여성들, 침묵하는 사회_ 여성 살해를 중단하라!” 촛불문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촛불문화제의 메인 슬로건은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 여성살해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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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촛불문화제는 종로에 있는 보신각 앞에서 열렸습니다. 저녁 촛불문화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성살해의 현황을 드러내기 위한 사전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여성들의 영정사진 밑에는 죽음의 이유가 ‘?’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있는데, 그 종이를 들어내면 이 여성들이 죽임을 당한 진짜 이유가 나오는 전시물을 거리에서 전시했습니다. 이 여성들이 죽임을 당한 진짜 맥락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 바로 다음날 전 애인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사망’
‘반복되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설거지를 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이 내리친 망치에 의해 사망’
‘레즈비언인 A씨 이성애자로 바꾸어 주겠다는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함’
‘파키스탄인 여성 D씨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친오빠에 의한 명예살인으로 사망’
‘안마방에서 일하던 중 콘돔을 안 하겠다는 구매자의 요구를 거부해 구매자에 의해 사망’

 

지나가던 행인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전시물을 감상하면서, 여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이유가 그저 운이 나빠서가 아닌, 이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의한 것임을 한 번씩은 생각하고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구지역적인 여성살해 실태를 운동에서 중요하게 다룰 필요성과, 한국에서의 가정폭력 및 강간살해, 이주여성과 성노동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해 한국사회가 무감각한 지점들을 조목조목 짚어주셨습니다. 또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와 참세상에 ‘여성살해를 중단하라!’라는 꼭지로 기사를 연재하였습니다.  


여성살해 중단을 촉구하는 올해의 4.18 지구지역 공동행동의 일정들을 마치고, 함께 한 단체들과의 평가회의에서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혐오와 폭력의 결과로 죽고 있는데 이 현실을 ‘Femicide’라는 성인지적인 언어로 지칭하여 운동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큰 성과이며, 독자적인 여성의제로 규모는 작지만 촛불문화제를 진행한 것이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여성살해 반대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의 필요성을 공감했으며, 관련된 다른 단위에도 제안하여 지속적으로 만나 운동을 만들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 GP에서도 여성살해 중단을 촉구하고 한국 사회의 폭력에 대한 성인지적 감수성을 고취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여성살해를 의미화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작업을 함께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웹진을 읽고 계실 분들과도 앞으로 함께 운동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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