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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제92조의6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동성간 성관계 처벌 조항이다. 동성간 성관계 만으로 형법상 구류 등의 실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군형법 제92조의6은 한국 사회 동성애 탄압의 하나의 상징이다. 실제로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동성애를 처벌하는 조항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동성애 처벌 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들도 존재하나, 군형법의 존재만 놓고 보면 동성애 처벌이 이루어지는 국가라 보아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일반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사회적으로 특히 동성애 등 성적 다양성이 더 금기시 되는 공간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군대이고 하나는 학교이다. 두 공간 모두 ‘근대 국가의 국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6세 이상이 되면, 혹은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군대나 학교는 한국 사회와 같은 물리적 동원에 기초한 근대국가에서 대표적이라고 할 만한 집단화된 공간이며, 이러한 집단화된 공간에서 동성애자를 ‘수용하지 않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몇 가지 방식을 통해 이들 공간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두 공간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태도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학교의 경우 최근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으로 성소수자 학생의 최소한의 인권을 미미하게나마 이야기하게 되었으나,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의 발언에서 보듯이 ‘교육’의 공간에서는 동성애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강한 편이다. 한편 군대의 경우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2006)’에 따르면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할 경우 (취할 수 있는)강제 전역조치가 제한되고 징병 신검시 동성애자(라고) 입영 제한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동성애자 역시 군대에 수용될 수밖에 없으나 ‘즉각적 보호 및 관심병사’로 ‘집중관리’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학교의 경우 동성애는 수용되나 ‘적극적으로 말해져서는 안 될 무언가’로 규정되는 한편 군대의 경우 동성애는 ‘적극적 보호의 대상으로 분리’되는 동시에 동성애자의 ‘성적’ 행동은 이중삼중으로 처벌되어야 할 것으로 규정된다. 동성애 처벌을 명문화한 군형법 제92조의 6이 위헌 소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폐기되고 있지 않는 것은 ‘성적’ 행동 만큼은 용인될 수 없다는 일종의 금기에 가깝다.
군대에서 동성애자 사병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군대가 동성애자 사병을 ‘적극적 보호의 대상으로 분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평화운동 및 군인 인권운동 등이 적극적으로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를 고발하고, 군대 내 인권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경주한 덕분에 군대 내 동성애자 사병의 존재를 그나마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 사병은 ‘성적으로 불온하나’ ‘성적이지 않아야 할 존재’로 규정되고 과잉처벌의 잠재적 대상이 된다. 이 중 동성애자 사병의 ‘성애화’을 막기 위한 상징적 규정으로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냉전 시기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의 도입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는 1962년 군형법 제정 당시 조항인 제92조 ‘추행’으로부터 시작된 항목이다. 1962년 1월 20일 공포되었을 당시 본 조항은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되고 있다.
한편 본 법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국방경비법(미군정 때 제정되었다고는 하나 법률 몇 호로 공포되었는지도 불분명할 정도로 공포 효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법률이며, 국가보안법의 효시로도 여겨진다.)에는 제50조(기타 각종의 범죄)에 “자해, 방화, 야도, 가택침입, 강도, 절도, 횡령, 위증, 분서위조, 계간, 중죄를 범할 목적으로 행한 폭행, 위험 흉기, 기구 기타 물건으로 신체 상해의 목적으로 행한 폭행 또는 사기 혹은 공갈을 범하는 자” 등 군대 내 규율 일반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계간이 존재한다. 본 조항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1920년 제정되고 최초로 소도미(sodomy)를 명문화한 미 전시법(Article of War)의 50조 조항을 거의 번역한 조항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청교도 윤리 하 정교화된 미국의 군국주의적 군대 규율 체제를 그대로 이식한 조항이다. 사실 본 법은 당시 형법이 없는 시기에 미 군정에서 사회 통치를 위한 지침 일반을 대체했다고 생각된다.
국방경비법 제50조의 다른 조항 일반은 1953년 제정된 형법 상의 내용으로 대치되었다. 이들 항목 중 상당수가 비군사범죄화 되었으나 일부 자해 같은 경우 군무 기피 목적 상해로 군사범죄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계간(鷄姦) 역시 추행 범주 속에 군사범죄로 존속되게 된다. 사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1872년 계간죄를 제정한 바 있으나, ‘성인 양자의 동의 하 성관계에 대한 법적 책임은 불가능하다’는 법률 고문의 의견을 받아들여 1881년 사라진다. 일본에서는 20세기 이전 삭제된 조항이 1960년대 한국의 군형법에서 부활한 것은 한국 사회와 군대의 맥락 속에서 추측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시법을 대체하여 통일되어 제정된 미국 통일군사법전(Uniformed Justice of Military Act)의 내용을 의식했을 가능성이다. 본 법은 소도미 규제는 물론이고, 정신감정 후 동성애 성향 병사는 전역조치하게끔 만드는 내용을 점차 포괄하는 추세였다. 미군이 정신감정 등을 통해 동성애자 병사를 군대에서 분리시키는 상황에서 미군과 군사 공조를 유지했던 한국 군대가 이를 무시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냉전시기 모병제였던 미군과 긴밀한 군사 공조를 유지했던 터키 역시 징병제 국가이나 동성애자는 입영 불가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군형법 내 계간죄 도입은 당시 냉전 체제 속의 군사 공조와 별도로 생각하기 어렵다.
군대에 들어올 수는 있으나 ‘성적’이어서는 안 될 존재
군형법 추행 조항은 동성애자 군인을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적고 있지는 않다. 현재 국방부나 군 당국은 한국 군대에 ‘동성애’적 주체가 존재함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2009년 첫 명문화된 부대 관리 훈령은 제6장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2006)’을 일부 훈령으로 제정한 것으로 ‘동성애자 병사의 병영내에서의 모든 성적행위는 금지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징병제의 현실에서 동성애자 군인이 입영할 수는 있으나 철저히 (아마도 불가능할) 탈성적인 존재로 존재해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성애자 군인들은 소위 ‘모든 성적 행위’를 할 수 없는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국방부나 군 당국의 태도는 같은 징병제 국가라도 2002년 이전까지는 게이의 군대 입영을 금지했다가 조치를 철회한 대만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그 미묘성이 더 잘 드러난다. 애초에 동성애자를 금지할 수는 없으나 동성애는 처벌을 통해 발흥을 막거나 관리할 수는 있다. 한국에서 군대는 (입영을 막을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동성애자의 존재로 인해 잠재적 ‘동성애 행위’가 발휘될 가능성은 상존하나 동성애 행위 자체를 처벌하거나 동성애자에게 무성적 존재가 되라고 강요함으로써 그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도리어 군형법의 추행 조항은 ‘군대 내 동성애란 없다’는 것을 선언, 유지하기 위한 지침대로 더욱 더 엄밀히 적용되고 있다. 그간 위헌 소송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동성애자 존재와 동성애 행위를 분리하여 ‘동성애 행위’에만 주력하여 더욱 규율하게 되었다. 표면상으로는 ‘비정상적인 동성 간의 성적 교섭행위’를 막아 ‘군대의 전투력 보존’을 유지하는 것이 군형법 추행 조항의 입법 취지라고 내세우고 있으나(헌법재판소 2011년 군형법제92조 합헌 요지) 흥미로운 것은 본 조항을 통해 도리어 ‘동성애 행위’로 표현되는 ‘비정상적 성적 교섭 행위’와 군대의 일상적 성적 규율을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군대의 성적 규율이 ‘성적’이지 않다고 정당화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된다.
2000년 대법원은 군형법 추행 조항 관련 판결에서 중대장이 형제들(병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양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등의 행위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지 않아, 군형법 추행 조항을 위반하지 않았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 사건이 군형법 추행 조항을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생활을 영위하고, 이른바 군대가정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라는 본 조항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에 따르면 추행 조항이 금지하고 있는 행동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비정상적인 성적 만족 행위’이며 군 내부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성적) 체벌과 폭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된다. 즉 군대 규율을 유지하기 위한 (성적) 체벌과 폭력들은 소위 ‘성적’인 동성애 행위를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73년 대법원 판결에서 군형법 추행 조항 도입 취지로 명시한 ‘군대가정의 성적 건강’은 이렇듯 (성적) 체벌과 폭력들을 ‘성적’인 동성애 행위와 분리됨으로써 유지된다.
‘성적’이지 않은 전우애
군대 경험은 ‘남성다움’의 훈육과정이라고들 말해진다. 군대 생활 내내 ‘대한민국 남자’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이것이 힘든 훈련, 사역 등을 이길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군대 훈련 과정에서도 ‘남성’의 호명이 주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군대의 남성성 규율의 이상적 형상은 소위 ‘전우애’이며 한국 군대의 규율 문화에서 이는 주로 보스와 심복 간의 전우애로 지칭된다.(고야마 이쿠미, 군 복무 경험이 한국 남성의 의식에 미친 영향―대졸 이상 육군 전역자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5) 그러나 앞에서도 보듯이 이러한 ‘전우애’는 (비록 이 단어에 이미 애愛가 들어가 있지만) 성적인 요소는 동성애자 군인 ‘개인’만의 것으로 국한시키면서 정당화된다. 그리고 군대 내 만연한 성적 체벌과 폭력은 동성애 행위와는 상관 없는 ‘공적’인 것으로 간주되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2011년 군형법 추행조항 위헌판결 의견서를 통해 군대 내 동성애자 사병의 존재와 상관 없이 ‘동성애’는 군대 내에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적 주체와 동성애 행위를 분리할 수 있다는 국방부의 신념은 정체화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동성간 성애적 교류에는 미치지 않는다. 사실상 군대라는 공간 자체가 동성간의 연대 혹은 ‘전우애’를 기초로 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성애’적 요소가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 분명하게는 ‘군대 내 동성애가 만연하지 않아야’ 한국 사회에서 군집 회피 등의 일이 벌어진다고 믿는다. 뒤집어 말하면 군대 자체가 동성간의 공간이라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부인함으로써 군대의 사회적 기반이 성립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성적’이지 않은 전우애, 군대 공간의 강조 자체가 군대 유지의 이데올로기가 됨을 함축하는 셈이다.
군형법 추행죄 유지의 이데올로기를 직시하기
한국 사회에서 각종 공간을 통한 성별 분리(여고, 남고,..) 이데올로기는 군대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필요에 의해 여성만, 혹은 남성만으로 구성된 공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나 동성애는 허용될 수 없다고 믿는 신념 역시 군대를 통해 극대화되며, 군형법 추행죄는 핵심적 장치이다. 성별 분리 공간에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훈육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군대를 통한 사회 적응’ 이라는 군대 이데올로기로 환원된다. 군형법 추행죄의 존속은 한국 사회에서 ‘규율을 통해 국가에 봉사하는’ 군대라는 남성들만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장치이다. 군형법 추행죄 존속의 이데올로기를 직시함으로써 한국 사회 군대 유지의 허상을 제대로 짚어낼 필요가 있다.
참고 : 추지현. 「군형법」 추행죄 위헌소송(2008-2011년)에 나타난 동성애 담론 분석 : 한국 사회 동성애 담론에 대한 군대의 영향.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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