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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만 범죄가 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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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을 (완전변태)

 

 

대선 TV토론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했다. 그리고 사과 명목으로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다시금 말했다. 그것은 군형법상 추행죄 존속에 한 표를 행사한 것이고, 동성애 범죄화에 ‘찬성’한 것이다. 홍준표는 의기양양하게 ‘동성애자 엄벌’을 말했고, 곧 수년 간의 군형법상 추행죄 적용사례를 웃도는, 대대적인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이 불거졌다. ‘야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인권침해 사건이.

 

동성애라는 성범죄

 

군형법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는 군형법상 추행죄(군형법 92조의6)를 제외하면 모두 성폭력범죄다(92조 강간, 92조의2 유사강간, 92조의3 강제추행‧준강제추행 등). 군형법상 추행죄는 강간도, 유사강간도, 강제추행‧준강제추행도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2013년에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 한 군형법 일부법률개정안은 당시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현행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앞에 ‘의사에 반하여’를 삽입하는 것이었는데, 기존의 군형법상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변별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았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동성애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라고 보고,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보호법익으로 한다(대법원 2008도2222). 따라서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여 그의 인격권을 짓밟는 모욕적 언행을 일삼고도 개의치 않는다. 사회가 주장하는 가치를 수호하는 것(성적 순결, 가족 이데올로기, 군 기강, 사회질서, 국가이익, 경제 활성화……)이 인권침해를 정당화 하고, 이성 간 상당수의 성폭력은 ‘나쁘지만’ 용납되는 동시에(낮은 기소율과 처벌률), 동성애는 성범죄가 된다.

 

이제 겨우, 강간이 ‘가정파괴범죄’ ‘정조를 빼앗는 일’이던 시절을 건너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라고 말은 할 수 있는 시대에 당도했다. 그것은 여성이 여성답지 않게 밤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을 강제입원 시키지 않아서 강간이 ‘일어날 만했다’고 말해지는 것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성폭력 공포 조장이 소수자 통제‧처벌의 수단으로 쓰이지 못하게 막는 것은 반성폭력운동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처벌하지 않아서(처벌법이 미비해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성폭력이다. 반성폭력운동의 급선무는 법제도 보완 이전에, 법 집행자들의 호모포비아 극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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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 피해가 ‘아닌 것’

 

성폭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만큼이나 성폭력과 생식이 전부인 ‘성의 이해’는 문제적이다. 2015년 시행되기 시작한 교육부 학교성교육표준안은 성적 행동이 원치 않은 임신, 낙태, 학업중단, 평생의 죄책감, 성병, 성폭력과 이어진다고 위협한다. 이 논리로는 ‘성욕이 현저히 낮은’ 여성은 성적으로는 ‘피해자’로만 존재하고(성 행동의 결과는 ‘성폭력’으로 직결), 남성 동성애는 ‘가해자(미디어 속 괴물)’로 연결된다(충동적이며, ‘가르쳐서는 안 되는’ 성).

 

‘성폭력은 나쁘’지만, 결혼상대를 제외한 모두와의 성적 행동(자위조차)도 나쁘고, 그것은 (자신의 의사를 반하는 행동이어서가 아니라) 성적 순결, 가족 이데올로기, 조직의 유지 등을 해칠 때 문제적이다. 성폭력이 나쁘다고는 하지만 왜 나쁜지 토론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라고 배우더라도, 그 권리가 처음부터 다 똑같은 조건으로 주어지는지는 알지 못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이 ‘공익’의 윽박지름 앞에서 정당한지 불리한지도 공백으로 남아있다. 동성애는 공교육에서 삭제되었고, 강제성과 공연성이 없는 동성 간 합의의 성관계는 이 사회에서 성폭력보다 더 ‘확실히’ 처벌된다.

 

만 사람에게 묻더라도 성폭력은 ‘나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충돌할 정도로 많은 성폭력 처벌조항과 잊을 만하면 남발되는 성폭력 엄벌 선언은 성폭력 피해자 앞에서 때때로 빈 깡통이 되고 만다. 성폭력처벌의 무게 문제가 아니라 협소한 법 해석 문제다. 성과 관련해 우리가 탐색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 겪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가로막고서 성폭력에 대한 어떤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판단은 납작하고 경직될 수밖에 없으며, 성폭력 사건은 다른 성폭력과, 성폭력과, 성폭력 사이에 견줘지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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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하라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을 생각해본다. 성소수자들에게 이 사건은 충격적이고 참담한 것이지만, 군형법상 추행죄는 실상 군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 유무형의 성소수자차별과 한 줄기다. 사회 도처에서 숨죽이는 순간들,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관계들과, 그 속에서 스스로 ‘자수’하고 싶게 하는 압박이 있다. 편견과 낙인으로 처벌될 위험이 두렵고, 강제된 자책을 내려놓도록 도울, 신뢰할 만한 주변인은 적다. 그렇게 성소수자는 마땅히 처벌하고 가둬야 할 위험한 가해자(‘괴물’)거나, 지워도 되는 피해자(‘약자’)로 간주되어 왔다.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 이후 ‘나도 잡아가라’는 대자보가 연이어 대학가에 붙었다. 시민들은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라고 외쳤다. A대위 유죄 선고 후에는 ‘나는 오늘 범죄자가 되었다’고 쓴 피켓을 스스로 들었다. 그 말들 사이에 우리가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범죄가 ‘아니’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범죄자가 ‘되고’ 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을 잡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잡아가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숨죽이거나 자수해야 한다는 협박에 지지 않고 싸우는 것밖에는 도저히 물러설 자리가 없다. 이제 자백해야 하는 것은 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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