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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죽이지 말라. Don't Kill Anymore.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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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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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충북 충주 제조업체 S사에서 일하던 20대 네팔 이주노동자 께서브 쓰레스터(Keshav Shrestha·27)씨가 기숙사 옥상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가 남긴 유서는 고용허가제가 왜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안타까운 죽음은 SNS를 타고 전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해당 사업장을 방문하고 노동청 앞 1인 시위, 청와대 앞 기자회견 등 각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단체들이 항의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을수 없다라는 절박한 각오로 지난 8월 20일 일요일에 <모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쟁취! 전국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몇 년 만에 열리는 전국집중 이주집회인만큼 새벽부터 김해, 대구, 경주,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상경버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하늘에 마치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회 사전공연으로 준비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무언극조차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제대로 된 진행이 불가했다. 집회 시작시간인 오후 2시반 전후로 폭우가 쏟아지면서 우비를 입는 사람들, 우산을 드는 사람들 등 집회 대오가 우왕좌왕했다. 바로 이때 집회 사회를 맡은 우다야 이주노조 위원장이 마이크를 붙잡고 힘차게 외쳤다.

“STOP EPS! DON'T KILL ANYMORE"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더 이상 죽이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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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800여명의 이주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빗소리를 뚫고 우렁차게 구호를 제창했다. 잇달아 사업장변경을 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애도와 언젠가 우리도 고용허가제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분노 등등이 뒤섞여서 구호를 외칠수록 국적, 성별, 지역, 업종 등을 뛰어넘어 이주노동자들은 정말 하나가 되었다. 어느새 비도 잦아들고 각 지역에서 올라온 이주동지들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와 발언을 이어나갔다. 지난 5월 12일 경북 군위 돼지농장에서 정화조를 청소하다가 질식사한 네팔 이주노동자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의 유족인 친형 발 바하두르 구룽씨의 발언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장은 처음에 문제를 잘 풀겠다고 했지만, 보름 정도 지나고 나서 ‘자신은 잘못 없다, 내 동생이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 할 수 있는 거 해 봐라, 자신은 책임 안 진다’고 말했다. 우리 이주노동자는 권리가 없습니까?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어서 크메르노동권협회 스레이나 동지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아닌 제대로 된 기숙사를 제공하라는 요구와 농축산업 노동자들에게 휴일, 휴게시간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63조를 폐지를 촉구했다. 한 달에 300시간 넘게 일해도 월급을 30만원밖에 받지 못하는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 국민연금을 강제로 납부하고도 귀국할 때 돌려받지 못하는 E-7비자 중국 요리사들의 문제 등이 이주당사자들의 목소리로 퍼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이주노조 조합원인 오쟈동지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다 같이 투쟁하자는 절절한 호소를 이어나갔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가서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우리가 노예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꿈은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 고용허가제 때문입니다. 고용허가제가 폐지되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을 계속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STOP EPS" 고용허가제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이 된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3년 8월 16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공포된 지 1년 후인 2004년 8월 17일에 고용허가제가 본격실시 되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의 도입시점부터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법률 공포이후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선별적합법화와 강제추방이 곧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체류한지 4년 미만인 미등록체류자에게만 최장 2004년 8월 17일까지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4년 이상 체류자는 강제추방 대상이 되었다. 강제추방을 비관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랐고, 정부의 선별합법화 정책과 강제추방, 그리고 반쪽짜리 제도인 고용허가제의 도입을 반대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이 시작되었다. 2003년 11월~2004년 12월까지 1년이 넘는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거치면서 이주지부와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독자적 노동조합 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하였고 농성투쟁의 성과를 이어 이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Migrants Trade Union)’(이주노조)는 2005년 4월 24일에 창립총회를 열어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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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의 출범과 동시에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정부가 지속적으로 고용허가제를 개악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탄압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고용허가제 개악 과정만 보더라도 사업장 선택의 권리, 사업장 계약 연장, 퇴직금 수령, 숙식비 공제 등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지속적으로 탄압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고용허가제가 끊임없이 개악을 하는 동안 이른바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안고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주한네팔대사관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자살을 택한 네팔인 이주노동자는 2015년 9명, 2016년 7명, 2017년 5명 등 21명으로, '자살'이 사망원인 중 가장 많았다.

 

<최근 5년간 고용허가제 개악 과정>

2012. 7. 2 사업장변경자에 대한 알선제도 변경

사업장 변경시 브로커 개입 방지를 목적으로 사업장변경 중에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알선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고르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들을 알선 받아 채용하는 형태. 사업장 선택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제한됨.)

2012. 7. 2 성실근로자 재입국취업 특례제도 시행 (사업장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경우만 재입국이 가능케 하는 제도, 사실상 사업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음)

2013. 각 국가 이주노동자 도입규모 배정시 사업장변경자 수를 반영하여 결정.

2013. 베트남 정부 이탈보증금으로 1억동(한화로 560만원 가량)을 노동자로부터 징수하기로 함.

2014. 7. 29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개악

내용 : 미등록체류 방지를 목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출국만기보험(퇴직금 보험)을 귀국 후 14일 이내에 지급하는 것으로 법을 개정. 퇴직금조차 한국에서 받지 못하고 출국해야만 받을 수 있음.

2017. 2.7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시행

내용 :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 표준근로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기재한 뒤, 근로자에게 서면동의서를 받은 뒤 임금에서 해당항목을 사전 공제하는 것이다. 숙식을 모두 제공할 경우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공제가 가능할뿐더러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와 같은 임시 주거시설 역시 기숙사로 인정하고 있는 노동부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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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도중에 대한민국 월별 출생아가 올해 들어 매달 최저치를 갱신해서 이대로 가면 연간 출생아 수가 사상 처음 40만 명 아래로 내려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른바 “출산절벽”에 선 한국사회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순혈주의에서 이민 국가를 채택한 독일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저출산 고령화에 대하여 근본적인 사회구조 문제를 짚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위기와 불안으로 여성의 출산을 강요하는 문제에 대해서 굳이 이 글에서 다루지 않더라도 이대로 간다면 한국사회도 이민사회로 가야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미 2016년 기준으로 한국 내 체류하는 이주민은 200만 명을 넘어섰고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에는 인구의 10%에 가까운 500만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고 질병을 옮기며 불법체류하는 세금도둑이라 부르며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울 것인가? 모든 권리를 고용주에게만 허가하고 합법적인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도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악순환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반이민행정명령, 유럽 곳곳에서 일어나는 난민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뉴스기사들이 아니다. 앞으로 30년안에 한국사회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질문이다.

 

한국사회가 지금 유럽, 미국이 겪는 것처럼 차별과 혐오의 사회가 될 것인지,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통합과 공존의 사회로 나아갈지에 대한 기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단기순환식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중장기적으로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노동허가제도로의 근본적 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14년 전 명동성당 농성때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한국노동자들에게 했던 발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리핀 노동자 피도 빨갛습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피도 빨갛습니다.

네팔 노동자 피도 빨갛습니다.

한국 노동자 피도 빨갛습니다.

한국 나쁜 사장 피도 빨갛습니다.

우리를 내쫓으려 하는 대통령 피도 빨갛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에게 다르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 피는 그렇다면 파랗습니까!?

모든 노동자는 하나입니다. 끝까지 함께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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