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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에서 ‘감금지리(carceral geographies)’로, 언어화되지 않은 착취와 소외, 감정과 트라우마, 살들(fleshes)의 논의를 위해

 

 

텍스트: [칼럼] ‘감금’에서 ‘감금지리(carceral geographies)’로, 언어화되지 않은 착취와 소외, 감정과 트라우마, 살들(fleshes)의 논의를 위해 # 김현철 / 배경이미지: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감금시설 외부 전경

 

 

 

김현철 / 지리학 연구자

 

‘감금’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나 장면을 떠올릴까? 누군가는 최근 종영된 ‘슬기로운 감금생활’을 떠올릴지도 모르고, 북미에서 시즌 6을 넘어가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 등, 감금되어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실제 감금사건에서 발생한 폭력과 살인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감금지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나 장면이 떠오를까? 아마 그전에 감금지리라는 게 도대체 뭔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리라니까 지도를 말하는 걸까? 감금공간을 지도에 표시하는 걸까? 그 역시 감금지리의 일부이겠으나 감금공간을 시각화하는 것이 곧 감금지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감금지리는 뭘까? 나 역시 계속 공부해가는 입장이라 조심스럽지만, 나는 감금지리는 감금을 시공간적 과정(temporal-spatial process)으로 다루는 분야라고 말하고 싶다. 달리 말하면 감금을 단순히 특정한 장소, 고정된 지점(fixed point)에서 발생한 일회적/일탈적 행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감금이 발생하기 전과 후, 그리고 감금되어있는 동안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관계와 감정, 경제/정치적 착취와 소외를 ‘과정’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더불어 감금된 주체를 단순히 ‘일상사회’와 유리된 ‘벌거벗은 생명’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감금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친밀감, 돌봄 사이에서 ‘되어가는(becoming)’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즉 감금지리는 감금을 ‘비밀스럽고 은밀한’, ‘사적인’, ‘현실과 떨어진’ 미지의 무언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감금의 과정들을 ‘사회적 공간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그리고 피와 땀을 담지한 ‘살(flesh)’의 현현으로 바라보는 영역이다.

 

 

감금지리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파편화된 조각들을 ‘이야기’로 엮어내고, 발화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크게 세 가지 부분 – (1) 감금공간을 둘러싼 권력과 통치의 역학, (2), 일상공간과 감금공간 간 경계의 모호함, (3) 감정과 육체, 트라우마의 정동-에 초점을 맞춰 간략히 설명해볼까 한다.

 

 

우선 첫째로 감금지리는 구금, 억류, 투옥 등 다양한 형태의 (준)감금공간에 갇히게 되는 사람들을 둘러싼 권력과 통치의 역학이 모든 ‘몸’들에게 균등하지 않게 발전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이 어떻게 유동되어왔는지에 대해 다룬다. 루스 길모어 (2007)의 경우 어떻게 사설감옥이 캘리포니아에서 1970년대 이후 급증해왔는지에 대해 논한다. 길모어는 이 논의를 통해 국회의원과 기업, 사립대학법인 등이 어떻게 감옥시설을 지지하고 이를 법제화함으로써 인종화된 ‘몸들’을 ‘침대수’로 자리매김해왔는지, 그리고 그 침대수로 채워진 ‘죄수’들이 어떻게 거의 공짜에 다름없는 값싼 노동력이 되어 ‘교정(correction)’이란 명목 하에 산업의 끝자락에서 착취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감금지리는 감옥을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체성과 몸을 담지한 존재들이 불균등한 권력의 역학 속에서 감금되고, 그 감금된 몸들이 어떻게 복지와 노동착취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사적 공간에서의 불법촬영과 디지털성범죄물의 생산 및 유통을 둘러싼 성산업의 카르텔을 규탄하는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18년 8월 4일이면 4차 시위를 맞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 핵심이 되는 주장은 법과 구금의 역학이 균등하지 않으며, 개인/집단의 정체성에 따라 그 역학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부당함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감금지리는 권력과 통치가 어떻게 특정한 집단과 몸들에게 더욱 견고한 힘을 휘두르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일상공간’이라는 환상을 견고하게 유지하는지 통찰할 수 있게 한다.

 

 

칼리 니콜 그로스(Gross, 2015)는 아프리칸 어메리칸 여성들(이하 흑인여성)이 어떻게 법의 보호에서 끊임없이 밀려나는지, 그리고 그 밀려나는 기제에 어떻게 백인남성중심의 위계와 흑인여성들을 향한 이중잣대(한없이 유혹적이거나 힘이 남자처럼 세거나)가 드리워져 왔는지에 대해 논한다. 이는 비단 흑인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사향은 아니다. 한국의 맥락에서 ‘가장’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은 ‘사적 공간’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훈방조치로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되어온 여성이 파트너를 폭행하거나 죽였을 경우, 여성이 그 동안 오롯이 홀로 감당해와야했던 폭력은 고려되지 않고 징역이 부과되는 경우는 흔하다. ‘가정폭력’과 ‘남편 살해’와 같은 키워드를 넣고 단순 검색만 해봐도 그 사례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여성신문, 2014.10.30, 중앙일보, 2018.07.02 등). 성폭력의 경우, 여성이 자신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 정당한 고소를 하더라도 ‘무고죄’항목으로 쉽게 맞대응할 수 있는 현재의 법구조는 ‘여성= 피해자거나 꽃뱀’이라는 이중도식이 견고히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성폭력, 성추행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보호받지 못할뿐 아니라 많은 경우 침묵을 암묵적으로 강요당하고, 더 나아가 오히려 가해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피해여성은 ‘집’과 ‘감옥’ 사이 흐릿해진 경계 사이에 놓인다. 그 불안과 때론 오갈 데 없는 감정 역시 감금지리에서 주의깊게 보고자 하는 지점 중 하나이다.

 

 

이와 연결하여 감금지리가 지닌 두 번째 가능성의 영역으로 넘어가보고자 한다. 감금지리는 감금공간을 단순히 갇힌 공간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공간과 감금공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며, 그 경계는 자주 겹쳐진다는 시사점을 준다. 제니퍼 터너 (Jennifer Tuner, 2016)는 일상공간과 감금공간 사이 지속적으로 미끄러지는 지점들에 대해 논의한다. 그녀의 논의에서 감금공간의 경계는 ‘패치’되는 것, 즉 여러 조각들로 기워지고 덧대지는 것이다. 즉 각 조각들의 경계가 지닌 물질성을 담지하면서도 그 경계를 둘러싼 개인/집단 간 관계망에 의해 기워지는 경계들이 때로는 우연에 의해 강화되기도 하며, 때로는 흐려지기도 한다. 터너의 감금공간을 바탕으로 한 경계 논의는 경계의 유동성(fluidity)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그 경계의 물질성과 육체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해체주의적 경계 논의와 구별된다.

 

 

터너의 감금공간 경계논의는 ‘주민등록법’이나 ‘이주노동자등록법’과 같은 법 사이에서 ‘일상공간’과 ‘감금공간’의 경계 사이에 놓이는 존재들을 탐구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주민’이나 ‘합법적 이주자’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몸들은 종종 ‘정신병자’나 ‘염전노예’와 같은 이름으로 감금공간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박찬욱, 2003>는 ‘제대로 된 한국어’나 이주노동자 신분을 보여주는 문서가 없을 경우 그/그녀가 경찰서의 임시구금공간에서 폐쇄 정신병원으로 이동되는 등 6년이 넘는 시간동안 강제구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민등록의 누락과 장애, ‘보호자’의 부재 속에서 종종 ‘염전노예’와 같은 이들이 오랫동안의 감금과 노동 착취 중 ‘떠오른다’. 이들에게 있어 일상공간과 감금공간의 경계는 뚜렷한 ‘범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과 ‘주민’을 호명하는 법과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무지나 무관심, 혹은 적극적인 착취 속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 사이에서 강화되기도 하고 덧대워지며, 때로는 흐려지는 감금공간과 일상공간의 경계지대를 이야기해나갈 때, 우리는 단순한 교정과 처벌, 애착과 탈착, 사회 안/팎, 민간인/수감자로 이분화할 수 없는 부분들을 대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감금지리는 이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트라우마, 되어가는(becoming) 살들(fleshes), 그리고 이들간의 정동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터너 (Turner, 2016)는 ‘디스포라 (Dyspora, dystopia와 diaspora의 합성어)’라는 개념을 통해 전과자들이 감금공간에 대해 가지게 되는 모순적인 감정과 정동에 대해 논의한다. 그녀는 전과자들이 ‘거리 위(on street)’ 삶의 척박함과 공식적 경계에 포함될 수 없는 낙인 사이에서 어떻게 감옥이라는 공간에 대해 디스토피아적 애착을 느끼게 되는지에 대해 논한다. 더불어 앞서 이야기했던 그로스 (Gross, 2015) 역시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아프리칸 어메리칸 여성들이 어떻게 감금공간을 친밀감의 공간으로 느끼게 되었는지에 대해 논한다. 감금공간 내에서의 친밀감이나 동질성에 기반한 관계형성과 돌봄의 관계를 보는 것은 ‘감금공간 = 폭력’이라는 납짝한 상상이 어떤 관계와 돌봄을 누락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를 통해 감금공간 내 저항과 공간전복에 대한 가능성을 저평가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오미 백(Paik, 2016)은 관타나모 베이(Guantanamo bay)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단식투쟁과 이 투쟁으로 말미암은 강제음식급여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감금공간 내에서 존재하는 폭력의 정동과 그 트라우마가 단지 트라우마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들의 공통경험과 감각을 기반으로 한 저항의 정동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서 살펴본 세 지점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있으며, 감금지리는 자주 이들간의 연결지점을 포착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권력과 통치의 불균등한 역학을 보여주는 지점이자 일상공간과 자주 경계가 중첩되는 공간, 떄로는 모순적인 감정과 정동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감금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사회 = 발전주의 국가’라는 강력한 논의틀과 상상을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사회를 다루는 연구에서 권력과 자본은 끊임없이 ‘추동’하는 힘으로, 능동적 힘으로 재현되어온 반면, 감금공간은 이러한 ‘발전주의적 추동’의 일탈적 사건들, 혹은 단순히 군사정권의 폐해나 복지제도 실패의 결과로 취급되었다. 예컨대 정수남(2015)의 경우, 1960년대 부랑인 통치방식을 군사세력을 기반으로 한 박정희 정권의 국가근대성의 ‘허약함’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였다. 강력한 발전추동을 지녔던 군사정권의 허약함이 부랑인 통치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서사나 ‘염전노예’나 ‘강제입원’과 같은 ‘사건’들을 아직도 ‘후진적’인 한국의 복지체계를 한탄하는 서사로 이야기하는 것은 감금공간을 발전적 추동의 부산물이나 잔여물로 여기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동적인 서사와 달리 필자는 감금공간의 건설과 관리 그 자체가 바로 발전적 추동을 가능, 역동하게 해온 능동적 힘이라는 가능성을 감금지리의 논의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그동안 한국사회의 정치경제구조를 발전주의적 모델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논의되지 못했던, 혹은 논의하지 않았던 정치적 지형과 경계구조, 감정과 존재의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해본다.



 

참고문헌

박찬욱, 2003,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여성신문, 2014.10.30, 목에 칼을 들이대도 죽일 마음은 없었다?, https://bit.ly/2OFsnSA

정수남, 2015, 「1960년대 ‘부랑인’ 통치방식과 ‘사회적 신체’ 만들기」, 민주주의와 인권 15(3): 140-185.

중앙일보, 2018.07.02, ‘37년 가정폭력’ 남편 살해, 法 “정당방위 아니다”, https://bit.ly/2LS652g

 

Gilmore, R. W. (2007). Golden Gulag: Prisons, Surplus, Crisis, and Opposition in Globalizing California.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Gross, K. N. (2015). African American Women, mass incarceration, and the politics of protection. The Journal of American History 102(1), 25–33.

Paik, N. (2016). Rightlessness: testimony and redress in U.S. prison camps since World War II.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Turner, J. (2013). Re-‘homing’ the ex-offender: constructing a ‘prisoner dyspora’. Area 45(4), 485-492.

_________. (2016). The Prison Boundary: Between Society and Carceral space. London: Palgrave Macmi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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