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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청소년 참정권 운동 쟁점들

 

텍스트: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요즘의 청소년 참정권 운동 쟁점들 # 쥬리 / 배경이미지: 창살 속에서 사람들이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어린 것은 죄가 아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있는 퍼포먼스 장면 사진.

 

(이 글은 2017년 이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활동을 중심으로 쓴 글이며, 다른 주체들이 하고 있는 ‘요즘 청소년 참정권 운동’ 관련 내용은 빈약하거나 없을 수 있다.)

 

쥬리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2018년 2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선거연령 하향에 따른 ‘학교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는 취학연령 하향으로 불식해 가도록 할 것입니다. 조기취학은(선거연령이 하향되어도) 만 18세 유권자가 교복 입고 투표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습니다.”

 

그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선거연령 하향을 반대하며 “학교가 정치화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공감대를 얻지 못하자, 선거연령 하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제개편을 하고 나서 하자는 것이라는 변명을 한 것이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해당 발언 이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선거연령 하향 반대하지 않는다”며 비판을 불식시키려 했다.


1년씩 일찍 입학·졸업하는 학제개편 이후 선거연령 하향을 하자는 건 안 하겠다는 소리다. 학제개편은 어마어마한 예산과 조정이 필요한 일인데 제대로 논의된 적도 없는 일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만 18세에 도달하게 된다면 투표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건 당장 7세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더라도 12년 후에야 해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대 안 한다면서 반대하는 것들 때문에 선거연령 하향 법안은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학교와 정치, 청소년 참정권

 

헌법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이 있다. 정권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교육, 특히 공교육을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는 도구로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현 사회에서는 “학교는 무無정치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것 같다. 


교사의 정치적 행위, 정당가입이나 학교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의 정치적 의견 피력조차 금지되는 현실이고, 이러한 금지는 ‘학생들을 선동할 수 있다’는 우려로 정당화된다. 학생들은 (많은 중고등학교에 존재하는)정치활동 금지 학칙에 의해 탄압받고, 선거권을 비롯해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 자유조차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박탈당하고 있다. 학교는 현실정치와 무관한 공간이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기만이 청소년의 정치적 주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근거가 되고 있다.


2013년 교학사에서 낸 역사교과서가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영한 내용으로 서술되어 이를 채택한 고등학교들의 학생들과 교사들, 역사학자 등이 채택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반공교육, 통일교육을 비롯해 사회교과에만 정치가 개입되는 것이 아니다. 국어·영어교과에 어떤 지문이 등장할지, 음악시간엔 어떤 노래가 불려 지며 과학시간에는 어떤 관점으로 과학을 사고하게 될지, 성교육 시간엔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등, 공교육의 내용으로 무엇을 누구의 관점으로 채택할 것인가는 이미 정치적 문제이자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장이다. 


교육 내용만 그러한가. 학생의 인권과 지위, 학비와 급식비, 학교시설과 교육환경 등 모든 것이 정치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광주, 경기, 서울, 전북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운동이 벌어졌지만 시·도의회에 의해 좌절되었다. 조례를 주민발의할 권한이 만 19세 이상에게만 주어지고, 조례 제정 권한이 있는 시·도의회의 의원들을 청소년들이 뽑을 수 없는 것도 정치적 결과다. 왜 청소년은 어른들끼리만의 정치에 의해 결정된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누구나 정치적 주체라는 합의에 기초하는데, 학생이라는 이유로 예외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청소년 참정권과 관련해 가장 부각되는 쟁점은 ‘학생이 정치를 해도 되는가’ 내지는 ‘학교에 정치가 들어와도 되는가’인 현실이다. 선거연령 하향 등 정치관계법을 소관하는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것도 ‘학교가 정치화된다’ ‘전교조가 선동한다’ 등이었으며, “교복 입고 투표하는 상황”을 초래해선 안 된다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이러한 인식이 드러난다.


2018 지방선거에서 교복을 입고 투표하는 유권자행동을 벌인 이유는 ‘교복을 입은 자’ 곧 학생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이 쟁점을 돌파하기 위한 의도였다. 사전선거일에 맞춰 교복을 입고 투표하는 행위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투표소 교복 입장’개시를 선포했으며, 자유한국당이 우려하던 ‘교복 입고 투표하는 상황’이 이미 초래되었다고 소리쳤다. 본 선거일에도 개별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교복을 입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한 후 인증샷을 올리는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비롯해 최근의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까지 교복 입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는데 왜 교복을 입고 투표는 할 수 없는 하는지 따져 물었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기호 0번 교육감 후보 ‘청소년’ 출마와 유세 캠페인도 진행되었다. ‘청소년이야말로 교육감 후보로 자격이 있다’는 모토로 진행된 이 캠페인은 교육감 선거를 비롯한 공직선거 과정에 청소년이 배제되는 문제, 그리고 배제됨으로써 청소년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정책들은 잘 실시되지 않게 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지역 선관위 앞에서 출마를 선포하고, 다른 후보들처럼 유세 명함을 만들어 배포했다. ‘학생 두발·복장 규제 철폐’ ‘폭력교사 징계’ ‘9시 등교 3시 하교’ 등을 내용으로 공약을 발표하고 알리기도 했다. 기호 0번 ‘청소년’의 공약과 실제 교육감 후보 공약의 내용 차이는 청소년 참정권 박탈의 결과를 극명히 드러내주기도 했다.

 

보편적 권리보장인가 연령 기준의 조정인가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기 위한 국회 앞 농성이 시작되던 지난 3월, 청소년 세 명이 ‘선거권은 인권이다’라고 쓰인 천을 두르고 삭발을 했다. 이 문구는 선거와 정치에서 배제되는 것이 곧 갈급한 인권의 문제임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심 끝에 채택되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은 ‘선거연령 하향 조정(정치개혁) 운동’일 뿐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이기도 하다. 전자라면 무게가 덜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자로 여겨졌을 때 현장 없이 당위만 있는 문제로 간주되어온 경향이 있기 때문에 ‘참정권은 인권’임을 더 힘주어 이야기하게 될 뿐이다. ‘만 18세’라는 나이 기준을 요구할 것인지 아닌지, 얼마나 강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만 18세로의 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정의로운 선거연령 제한 기준이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어온 청소년이라는 집단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시작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며, 고등학생이 포함되는 만 18세 연령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면 청소년 참정권의 큰 장벽을 하나 넘어갈 수 있으리란 기대로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성 이전까지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 참정권은 ‘만 18세 선거권’으로 자동 번역되어 받아들여졌고 논의는 ‘만 18세면 판단력이 있는가’ ‘만 18세는 납세, 국방 등 의무를 지는데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은가’에 기울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이러한 장벽 때문에 ‘16세 선거권’ 법안을 국회에 청원하기도 했지만 논의의 지형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농성이 끝난 후 스스로 평가했을 때 우리의 농성이 이끌어낸 가장 큰 성과는 이와 관련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연령 하향 문제가 단순히 선거연령 제도를 약간 조정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삭발을 하고 길바닥에서 농성을 하며 연대하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정권은 인권’임을 이야기했던 수많은 구호들이 일조했겠지만 결국 논의의 지형을 조금이나마 바꾼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 참정권 문제는 ‘만 18세로의 선거연령 하향’으로만 논의되는 경향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대세이고 납세, 국방, 혼인, 운전면허 등 ‘성인의 의무와 권리’로 여겨지는 것들이 18세에 부여되는데 참정권은 누리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장 널리 쓰인다. 유효하지만 한계도 있는 논리다. 재산, 인종, 성별이라는 참정권의 장벽이 하나씩 무너져온 역사는 민주주의의 실현이자 확대의 과정이었으며, 동등한 인격체라는 인권의 선언이 진행되어온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 18세에게 인권이 있고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면, 만 18세 미만에게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선거연령 하향 운동은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어온 청소년이라는 집단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만 18세로의 한 살 하향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개인적으로 한국 최초로 선거연령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하고 싶은 욕심과 그 날이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다는 기대가 있다.

 

참정권 투쟁, 어떻게 싸울 것인가

 

삭발과 농성이라는 투쟁 방식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만류와 우려를 여럿 접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국회도 꿈쩍하지 않을 상황에 겪게 될 절망에 대한 우려,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또는 ‘청소년들’1이 삭발과 농성이라는 과격한 방식을 택할 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었다. 삭발과 농성을 진행했을 때 실제로 ‘청소년들이 어른 따라한다’거나 ‘청소년들이 저러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식의 반응도 많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삭발과 농성이라는 투쟁 방식은 참정권이 인권 문제라는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선거연령 하향을 문제는 정치인들의 이해타산 문제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며, 참정권을 박탈당해 고통 받는 당사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농성 개시를 선포하며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삭발식이 진행되었던 그 기자회견은 나의 사회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하러 왔던 기자회견이었다. 우리의 운동이 지상파 뉴스에 일제히 보도되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권리를 요구하며 삭발하는 청소년들의 모습 자체가 우리 사회에 그만큼 충격적이고 생소했던 것이다. 청소년 인권을 요구하는 공개 삭발식은 기록된 한국 역사상 최초이기도 했다.


참정권을 요구하며 삭발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 사실 자체가 청소년 참정권의 요구에 의의가 있다. 청소년이 권리를 요구하며 삭발하는 것은 괴기스럽고 이상한데, 그것은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한 몸 바쳐 요구하는 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의견 개진은 어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연습’ 또는 ‘교육’의 과정으로 수행될 때만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나 청소년이 비청소년과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 그것을 삭발이라는 방식으로 피력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삭발은 금기를 어기는 행위였고 삭발식과 그것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은 청소년 참정권 요구의 본질을 드러냈다. 삭발을 한 청소년 중 한 명은 “나의 몸을 이용해 내 권리를 요구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삭발과 농성까지 하며 선거연령 하향 법안의 4월 국회 통과, 그리고 6월 지방선거에서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결국 우리의 희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6월 지방선거일에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들만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모의선거’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 모의선거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주최하지는 않았고, 한국YMCA를 비롯하여 지역 곳곳에서 시행되었다. 이 모의선거 또한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선거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청소년도 충분히 숙고하여 투표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임을 보여주고, 투표율을 통해 선거에 참여하고 싶은 청소년 대중의 욕구를 드러냈다. 선거 후에는 결과를 공개하여 청소년 민심의 동향을 알리기도 했다. 비록 청소년 대다수가 참여하는 선거는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YMCA 등은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의선거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모의선거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청소년의 행위가 늘 연습이거나 모의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는, 그런 틀 안에서만 허용되는데 참정권이라는 현실의 권리를 요구하는 방식마저 모의선거여야 하는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어른들마저 ‘투표 연습’하는 의미로 찬성해줄 것 같은 온건한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하는 시각도 있다. 모의선거가 치러지고 나면 어른들의 ‘진짜 선거’ 결과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지를 위주로 청소년들의 판단력을 평가하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게 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기도 한다. 청소년을 배제한 경선을 통해 출마한 후보들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는 조건에서 공약을 만들고 선거운동을 해온 마당에 기존의 후보들 중에 선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삭발과 농성, 그리고 모의선거 모두 청소년 참정권 요구를 알리는 데 일조한 운동이다. 선거연령 하향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한, 그리고 통과되더라도 더 낮추기 위하여,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은 계속될 것이고 그 과정에 또다시 삭발이나 농성이 진행될 수도 있다. 아마 다음 선거에서도 청소년 모의선거는 치러질 것이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더욱 깊어지길 바라며,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빠른 시일 내에 실질적 성과 또한 함께 거두길 기원한다.

 

헤더 배경이미지: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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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부로 보인 중심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들이었으나, 실제로는 비청소년인 청소년인권활동가들과 연대하는 타 운동의 활동가들 또한 중심적으로 결합했던 농성이었기에 따옴표를 표시했다.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