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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 / 병역거부자
2017년 11월, 저는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대를 거부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병역거부의 의지를 밝혔던 탓인지 병무청 담당자는 제게 앞으로의 법적 절차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오래 준비해왔던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 설렜던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에 조금 차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괜찮다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그림자와 같은 여운이 남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와 불확실한 상황을 마주하며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시간을 되짚어보며 병역거부의 여정을 잠시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흩어진, 연결된 삶의 조각
병역거부자로서 자주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왜 병역거부를 하게 되었냐’는 다정하면서도 분명한 물음이었습니다. 아쉽게도 병역거부를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인지 묻는 이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언뜻 병역거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제게 선명한 흔적을 남겼던 삶의 조각들이 저를 조금씩 병역거부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입시에만 몰두해야 했던 학교 경험, 남성 집단과 꾸준히 불화했던 관계 경험, 세계의 적법한 주체로서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과 부딪쳤던 경험처럼 병역거부의 필연적인 이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병역거부를 결심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일들이 제법 단단히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물론 제게 특별한 영향을 준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과 퀴어 페미니스트들은 소중한 길잡이였습니다.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소박하고 정직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나누는 이들, ‘여기서는 마음을 놓아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평화의 씨앗을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는 일’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성장한 경험은 적대와 폭력을 생산하는 현 체제에 저항하며 서로 다른 이들의 급진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일로, 규율과 복종으로 구축된 시공간을 강제하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저의 리듬과 선율에 집중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퀴어 페미니스트들 역시 병역거부를 탐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군사적 개입을 통해 지배를 관철시키고 착취로 인한 초과이익을 누리는 주류 집단의 통치 전략을 비판해왔습니다. 군사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비장애인중심주의, 이원 젠더 체계, 이성애 가족질서에 도전해온 페미니스트 계보는 병역거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데 좋은 참조가 되었습니다.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누빈 경험, 바람직한 인간이 누구인지 규정함으로써 인구를 등급화하는 국가와 자본의 기획에 맞선 경험, ‘인구 재생산의 책임을 지닌 여성 국민’도 ‘병역의 의무를 지닌 남성 국민’도 아닌, 이기적이고 불성실하며 퀴어한 몸들을 긍정한 경험은 병역거부와 점차 공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의 부재하는 현존
병역거부 선언 이후, 병무청은 저의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고발했고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온 시기였던 터라 경찰서 주변이 밝고 화려한 조명등으로 장식되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담당 경찰관은 친절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건조하고 사무적인 태도의 공무원이었습니다. 조사를 받으면서 그에게 ‘조사 일정이 생각보다 일찍 잡힌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재미있는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조서 다섯 장짜리밖에 안 되는 사건인데 미룰 이유가 없다’며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때 마음 한편이 무너지면서 아찔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조서 다섯 장짜리 사건. 저는 이따금 그의 말을 곱씹어보고는 합니다.
저는 경찰 조사를 통해 병역거부자가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지 조금 더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단 두 가지, 정해진 날짜에 입대하지 않은 것이 맞는지와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지 여부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작성해오던 조서의 내용에서 종교적 소속을 성공회로 바꾸는 정도의 수고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는 증거를 모아서 사실관계를 맞춰보아야 할 필요도, 피의자의 협조를 애써 구해야 할 필요도 없는 간단한 사건이었으니까요. 병무청의 고발에서부터 경찰 조사, 검찰 수사, 법원 재판, 유죄 선고, 감옥 수감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절차가 너무도 매끄럽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자 분노와 무력감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병역거부를 고민하던 시간만큼이나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후에 곧잘 길을 잃고는 했습니다.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였지만, ‘정찰제 판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1년 6개월 실형 선고가 표준화되어있는 상황에서 저의 신념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국가는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징병제의 정당성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지만, 피고인의 자리에 선 저는 병역거부가 정당함을 호소해야 하는 구도가 무척이나 답답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결과를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정리해야 할지, 아니면 결과와는 상관없이 저의 선택을 스스로 존중한다는 면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지혜와 용기를 나누어준 동료들, 특히 병역거부 과정에 함께해준 ‘레인메이커’ 친구들이 없었다면 조금 더 헤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 반 체념 반의 심정으로 기다리던 1심에서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다행히 법정 구속을 면해서 당분간 일상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100일 동안의 법적 절차, 30분 동안의 경찰 조사, 3분 동안의 공판과 1분 40초 동안의 선고로 징역 1년 6개월을 살아야 하는 몸으로 처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법적 다툼을 계속해야 할지, 더 이상의 시간 소모를 멈추고 수감생활을 해야 할지, 무엇을 지켜내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여러 생각이 정신없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퀴어한 몸들을 처벌하는 것을 통해서 통치의 완결성과 정상성을 드러내는 국가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변화하는 풍경, 그러나
유죄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하고 2심을 기다리던 중, 병역거부와 관련된 중대한 변화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6월에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가 헌법적 권리에 속한다’는 의미의 결정을 내렸고, 이어서 11월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병역거부자에게 유죄를 선고해온 그동안의 판례를 바꾸었습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할 의무가 국회에 있다고 밝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기까지,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오랜 기간 싸워온 병역거부 활동가들, 양심과 신념에 따라 평화의 길을 선택한 이들의 투쟁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물론 2만 명의 달하는 병역거부자가 36,700년 동안 수감되는 동안 적극적 부작위로 일관해왔던 국가에 대한 깊은 절망감과 서늘한 분노는 사법적 변화만으로 쉬이 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저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 덕분에 2심 재판에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검찰의 수사 과정은 아예 생략되고, 재판의 심리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던 때와는 달리 병역거부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다는 변화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넘어야 하는 벽은 아직도 높기만 합니다. 검찰에서는 1인칭 슈팅게임 접속 기록을 ‘진정한’ 양심을 가리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집시법이나 도로교통법 위반과 같은 전과기록을 이유로 병역거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병역거부자가 고민해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병역거부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경찰과 군대에 대한 입장이나 북한 체제에 대한 관점일 때도 있습니다.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경우에는 개인의 양심 형성과정보다 소속된 종교의 공식적인 교리에 중점을 두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병역거부 의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 역시 문제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국제적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한숨이 나올 만큼 징벌적인 정부의 대체복무법안을 보면서, 정부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헌법적 가치로서 재확인된 양심과 신념인지 아니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소모적 논란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종교적 신앙 등에 병역거부자’로 부르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국방부 담당자와 청와대 관계자가 헌법재판소 결정문과 대법원 판결문을 제대로 읽어보았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데만 급급해온 정부는 병역거부자 처벌이 헌법에 부합하지도, 올바른 법률 해석에 근거하지도 않다는 사법적 판단에도 반성은커녕 병역거부자에 대한 보수적인 집단의 공격과 적대를 정당한 반응으로 승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끔씩은 ‘내가 이러려고 병역거부를 했나’ 하는 허탈감에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요?
끝나지 않은 질문들
2018년에 있었던 여러 사건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알려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병역거부를 둘러싼 문제는 대체복무의 법제화로 매듭지어진 것이 아니라 보다 치열하고 까다로운 질문으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는 양심과 신념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몸을 어떻게 식별하고 해석할 것인지, 인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안전과 질서, 자율성과 결정권과 같은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가 던지는 평화, 정의, 국가, 법, 몸, 인간성, 정상성에 대한 질문은 어떤 이야기를 가능하게 할까요? 이른바 ‘진정한’ 병역거부자를 가려내려는 시도 속에서 지워지는 존재들은 누구일까요? 거부와 저항이라는 삶의 양식은 어떻게 번역되고 변주되며 인식될 수 있을까요?
병역거부를 불평등한 세계의 규칙을 다르게 반복하려는 실천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배제된 이들, 추방된 이들, 사라진 이들, 퀴어한 이들의 자리를 기억하는 평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병역거부를 경유해서 만나게 되는 평화가 주어진 영토 안에서 ‘우리’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받는 기획을 넘어서, 지속 불가능한 사회의 현실을 ‘그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덮으려는 권력에 맞서, 감히 지금 당장 모두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무례한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의 구획을 초과해버리는 평화, 시끄럽고 노골적이며 불쾌한 평화, 그리고 어느 책의 제목처럼 저항하는 평화는 아마도 국제질서의 재배치가 만들어낸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평화가 경제’임을 선언하는 곳이 아니라 ‘정당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는 죽어도 아무런 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투쟁하는 곳에서, 한국을 찾은 뜻밖의 여행자들을 환대하며 경계를 가로지르는 곳에서,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고 외치는 곳에서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질문은 계속되고 고민은 이어집니다.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사회적 합의 부족과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국가, 퀴어한 몸들에 낙인을 찍는 국가와 동일시하며 ‘나중에’를 외치는 사람들, 특히 폭력적인 군대 경험을 소수자들을 지배하고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인용해온 ‘남성’ 집단의 정치학에 어떻게 도전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저는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담백하고 진솔하게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저항하는 평화의 이야기를 힘 있는 질문으로 만드는 방법을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평화의 시대, 저항의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께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헤더 배경이미지: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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