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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GP]멕시코 '원주민성'의 구성과 원주민운동의 정치성

민선 (NGA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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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1월 1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EZLN)이 치아파스 주의 주요 시가지 네 개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사파티스타 운동은 90년대에 접어든 후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던 여러 원주민 운동의 위에서 전개된 운동이었다사파티스타 운동이 치아파스 주에서 시작되었을 때 그 주의 마야 원주민들 간에는 각 공동체마다 특수하게 형성된 구시대의 정체성과는 달리 -원주민적이고-마야적이며백인들에게 공손함을 표하기보다는 원주민성을 적극적으로 긍정1하고 있었고이를 바탕으로 원주민 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서 사파티스타 운동은 지지와 협력을 요청하고 또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원주민적-마야적원주민성의 적극적인 긍정은 어떻게 사파티스타 운동의 성격을 설명하는 언어가 될 수 있었을까. “-”을 접두어로 붙여 메소아메리카의 원주민과 마야의 여러 공동체를 정치적 주체들의 연합과 집합으로 포괄할 수도 있으나, 1997년의 악테알 대학살2이나 차물라 공동체의 사파티스타 의제 참여 거부 등의 사례에서 사파티스타가 제시하는 원주민’, ‘마야’ 범주의 한계를 실감한다이는 이들을 원주민으로 범주화하는 원주민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원주민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사파티스타가 표명한 새로운 종족적 의식이라면 이는 기존에 원주민성과 그에 대한 부정이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원주민성을 원주민과 연결되는 여러 표상으로 놓고, 19세기 이후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원주민성이 근대화에 대치되어 개조·통합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부정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다이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과 대형 자본들의 난개발 속에서 생존권 투쟁을 위해 맞서는 원주민들을 여전히 부정한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이다이 지점에서여러 가지 접촉과 변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본질적 성격이 원주민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그러나 원주민이라는 개념이 역사성을 가지는 것과 그들 존재에게 변치 않는 본질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다르다오히려 역사성을 갖는다는 것은그 안의 다양한 특징과 여러 영향에 의해 변주하는 것들을 포괄하는 것이므로 고정된 본질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원주민의 본질적 허구성만을 지적한다면 현실에 기반한 논의에 큰 공백이 발생한다여전히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이 있으며 원주민성을 내세운 EZLN 비롯 많은 원주민 운동 세력들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원주민의 본질이 없다는 논의에서 그칠 수 없다.

아래에서는 구성된 개념으로서 원주민을 이야기하며 변치 않는 요소를 가정하는 본질주의적 사고가 성립할 수 없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원주민이라고 명명된/하는 존재들과 그것이 아닌 존재들 간에 구분선이 발생하고 모호해지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주변 세력에 대한 저항 혹은 수용 등 관계 속에서 대응하면서 만들어진 원주민의 본질을 짚어내고자 시도할 것이다여기서 그치지 않고, ‘원주민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국가 및 자본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원주민으로 정체화하고 정치적 주체로서 그 의미를 전복해가는 현재의 운동까지도 살필 것이다이를 통해, ‘원주민이라는 용어가 구성되고 이 용어가 현재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사용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논의의 용이함을 위해 멕시코 지역과 지역 내 원주민들에 한정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1: ‘원주민의 본질

1) 멕시코 원주민의 탄생

원주민은 사전상으로 단순히 이주민이 아닌 토착민을 의미하는 것이나 원주민 집단이 정치적으로 통합되고 다시 구별되는 과정에서 생각했을 때사전상의 의미보다 더 넓고 복잡한 사회적정치적법적 정의를 갖는 하나의 담론이 된다.3

멕시코의 경우 원주민(Indio)’이라는 개념은 스페인 접촉 세력이 자신들 외 나머지 사람들을 명명해 구분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카리브해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식민 사업을 벌인 후 대륙에 접촉한 스페인인들은, ‘자원 개발이 가능한 지역/가능하지 않은 지역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재구성했기 때문에 기존 공동체들간의 차이는 그들에게 유의미하지 않았다그럼에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아스테카의 중심부인 테노치티틀란으로 향하는 길에 나우아어를 사용하는 말린체의 도움을 받았던 것토토나카인 등 아스테카와 경쟁 상대였던 종족집단과 동맹을 맺어 아스테카를 공격했던 것 등은 해당 지역의 개별 종족집단 간의 차이가 스페인 세력의 도래와 원주민이라는 단일화된 명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스페인의 식민 사업에 동원된 원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스페인 왕실의 행정 체계 아래 속민이 되었고 종족집단별로 모여 살고 있던 공동체에는 무니시피오(Municipio)’라는 스페인식 행정단위가 덧씌워졌다이는 종족집단들의 거주 형태를 완전히 해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방식을 고수하도록 하여 반발을 어느 정도 잠재우면서도 동시에 반도 출신 스페인인 및 그 후손의 거주지와는 명확히 구분하고자 한 것이었다명확한 거주지의 분리와 동시에 나머지 종족집단의 거주 구역을 모두 원주민 공동체(República de Indio)’로 통칭하면서 스페인인들과의 대비 속에서 원주민을 만드는 작업의 일종이었다.

스페인인 공동체(República de Español)는 원주민의 노동력과 산물공납을 일방적으로 공급받아 식민지에서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므로 원주민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교류가 불가피했고점차 이들 간의 혼합으로 인해 스페인인/-스페인인 원주민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성립할 수 없었다이는 광범위한 배경을 가진 출신자들을 포괄하려는 복잡한 법적 분류와 차별적 지위의 고정으로 이어졌다하지만 이 분류의 근거는 오직 피부색과 생활양식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경계의 흐트러짐은 시간이 갈수록 필연적이었다얼마만큼의 혼혈이어야 법적 분류 체계 속에 편입될 수 있는지 계량적으로 말할 수 없으므로법적으로 혼혈 인종에 따른 권리 제한을 각자 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엄격히 수행되기는 어려웠다.

 

2) 근대 국민국가와 원주민성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위와 같은 제도적 계층 구분이 사라졌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정치 체제를 놓고 갈등하던 끝에 결국 자유주의를 주장하던 크리오요 지도자들이 승리하고본격적으로 국가의 주요 사업은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에 근거해 진행되었다외국 자본과의 협력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발전 지향적 가치의 적극적인 수용을 꾀한 것이었다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와 대량 생산 및 유통자본 획득을 위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골자로 하였고 이에 대비되는 것으로 보이는 원주민은 걸림돌이자 부정과 제거의 대상이었다이 때 원주민은 순수한’ 백인 혈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혼혈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다만 백인을 제외한 그 원주민’ 범주 내에서는 백인과 더 가까운 피부색외양적 특징을 지닐수록 메스티소와 원주민으로 구분을 뚜렷이 하려고 했다근대 국민국가는 이들을 단일한 국민으로 통합시켜야 했다단일한 국민성으로 메스티소 정체성이 대두되었는데이는 사실상 백인의 우등성과 원주민의 열등성을 규정짓고, ‘원주민의 낡고 부정적인 특성은 버리고 백인의 우월함을 적극 긍정해 지향하고 발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이었다이에 따라정치 엘리트들은 원주민이 국가 형성을 위한 담론장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였으며 원주민이 갖고 있던 공동체 토지에 대한 권한을 박탈하였고 식민시대 이전부터 이어진 개별 종족집단의 문화적 상징의 유지를 단절하는 조치들이 나타났다.

20세기 초반 멕시코 혁명 이후에는 원주민을 새로이 보려는 시각이 등장했다원주민들의 문화적 특성의 존속 여부와 재현의 정도원주민 정체화의 적극성과 같이 관념적이고 문화적인 속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대표적인 예는 1940년 카르데나스 대통령(Lázaro Cárdenas del Río)이 제1차 인터-아메리칸 인디헤니스트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한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 사업이다이 사업을 주도하는 인디헤니스따들은 이전과 달리 원주민들을 긍정하면서 원주민의 문화를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나누고 전자는 인간의 삶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열등한 것후자는 국민국가에서 계승해야 할 신기하고 유익한 것으로 규정했다.4 원주민의 정신문화적인 요소이를테면 고대의 원주민 예술이나 자연관종교관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것의 재현 방식은 서구의 근대적 방식을 통과하여 메스티소화” 되어야 했다.

인디헤니스따들이 혁명 이후 형성된 새로운 국민국가가 메스티소를 국민상을 내세울 때 진정한 멕시코인으로서 메스티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뿌리로서의 원주민이 필요했다그래서 이들을 완전 부정하기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강조해 국민성으로 통합하려 했다일련의 과정은 원주민 공동체가 겪는 빈곤 문제와 토지 약탈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적 해결 없이문화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그마저도 입맛에 맞게 비틀어 국가 통합에 필요한 요소만을 선별적으로 사용한 것이었다이를 두고 멕시코 국가 내의 다양한 원주민 집단의 존재를 부각해 다원주의적 국가 구성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하나결국 국가와 지배집단에 의해 정의된 원주민성’ 중에 지배 이데올로기에 필요한 부분만 차용된 것이며 원주민을 위한 사업은 분명 아니었다또한 원주민의 물질문화를 부정한 것은 원주민 공동체가 모인 곳을 망명지로 보고 근대화하기 위한 폭력적 개조를 수반했다.

혼합과 동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종족집단 내부에서 문화 전수 등을 통해 유지하던 외형적인 모습들이나 사고방식들은 유지되었다하지만 문화 전수나 유지를 넘어 국가로부터의 무력을 동반한 일방적인 원주민 공동체의 해체개조와 변형 시도에 맞서 더욱 엄격하게 원주민으로서 살아남기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멕시코 내 초칠-마야어를 사용하는 차물라 공동체의 경우 스스로 원주민이 되기로 선택하여 문화적 전통에서 일탈한다고 여겨지는 공동체 구성원을 제명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원주민스러움을 지켜나갔다이러한 방식은 공동체 외부의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반대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수할 정당성을 획득하는 근거가 되었다.5 이미 차물라 공동체는 초칠-마야적 특성만을 고집하기에 역사적 맥락 위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발생한 후였지만 문화적 복합성을 극단적으로 부인하고 결국 복음주의 개신교도를 살해하거나 추방하는 방식으로 초칠-마야인 원주민 공동체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이런 식으로 공동체 내에서 종교적 불관용 등 전통주의자를 자처한 구성원에 의해 공동체에서 제명되고 쫓겨나는 일이 발생한 것은 차물라 공동체 뿐만이 아니었다이렇게 쫓겨나 도망친 다양한 종족집단 출신의 사람들이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 모여 살게 되고 이들의 다채로운 문화적언어적 배경을 근거로 하여여러 종족집단을 관통하는 고질적인 원주민의 계급적 문제들을 타파하고 정치 주체로서 멕시코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의 사파티스타 운동이었다.

 

3) 필요한 경우, ‘원주민

국가로의 일방적 통합 시도에 저항해온 원주민들은현재 메스티소가 국민의 대다수인 멕시코에서 대체로 두 가지의 동시적인 시선 안에 갇혔다하나는 민족주의적 통합 시도를 완강히 거부하고 국가에 반항적인 이들은 국민 통합을 방해하는 저열하고 편협한 이들로 쉽게 인식되는 것이다특히 스페인어가 아닌 마야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부정적 가치평가의 근거가 되고 단편적인 사실들이 마야 원주민들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고정되었다.6 한편으로는 국가의 문화 산업과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는 종족집단으로서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의 이미지를 관광 안내 책자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긍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마야 무속 신앙의 의식을 거행하며 사용되는 마야인의 언어는생활 속 메스티소와의 접촉 과정에서 사용되는 마야어에 대한 평가와 달리 숭고하고 신성한 취급을 받는다결국 마야 원주민의 문화가 상품가치로서 도움이 되는 안전한 맥락에 한해 이들의 문화적 특징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이는 마야 원주민들이 처한 실존적인 차별이나 빈곤의 문제를 덮어놓고 이들을 문화적 요소들에만 가두어 놓는 화석화의 작업으로원주민이 현재에 함께하는 시민은 아닌 것이다.7

결국 원주민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지칭하는 범위가 달라지며 식민지 후기부터 현재까지도 메스티소와 계속해서 흐릿한 경계선 위를 넘나든다특히 농촌 지역을 근대화하고자 했던 국가 차원의 사업들의 결과로 지속적으로 빈민층에 속해온 메스티소와 원주민 농민의 명확한 구분은 더욱 불가능하다결국 원주민으로 분류되는 집단에게 요구되는 본질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활용이 필요한 모습들 혹은 국가 폭력에 의해 제거될 위험이 있는오랜 시간 속에서 변화해온 전통적인 요소들이다.

 

본론 2: 정치적 전략의 원주민

지금까지 멕시코 지역에 원래 살던 종족집단이 갖는 역사성과 본질로서의 원주민()’은 별개이며 후자는 구분짓기와 배제를 위해 구성된 개념임을 살폈다하지만 이것이 곧 원주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치환될 수는 없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원주민이 동등한 사람이자 시민이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된 경험을 부정하며 현재진행형인 것을 가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또한, ‘-원주민들에 의해 인종화되고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역으로 원주민()’이라는 개념을 통해 독자적인 정체성을 추구하며 자신을 방어하고 생존을 위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메스티소라디노와 동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의 정치적 전략 중 하나일 것이다국민국가가 호명하는 원주민에 담긴 수동적 의미를 전복하고 주체로서 공론장에 참여하려는 시도다.

특히 이들의 권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와 대형 자본이다경제적 이윤을 우선의 목표로 세워 대규모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원주민 공동체의 생활 터전 및 경제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파괴하고 있다. 우선,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에 저항하는 원주민 운동은 서론에서 언급했던 1994년 사파티스타 운동이 시발점이었다봉기와 같은 날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는 멕시코의 시장을 전면적으로 미국에 개방하는 것이었고멕시코 정부는 농산품 생산에 대한 보조금 및 시장가격 통제 등 농촌 공동체 보호를 위한 모든 프로그램을 폐기했다그러나 시장 개방의 이익은 미국과 멕시코 중북부 지역에서 상품작물을 집약 농업하는 소수 엘리트들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다사파티스타 운동이 전개된 치아파스 주를 포함하여 원주민 공동체 다수가 위치한 농업 토대의 남부지역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도태될 위험에 봉착해 있었다이런 위기 앞에서 무장봉기한 그들은 -원주민적’, ‘-마야적이라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내세웠다서론에서 밝혔듯 그간 원주민으로 불린 수많은 공동체를 포괄하지 못한 운동이었지만그럼에도 이 운동의 참여자들은 스스로를 원주민이라고 직접 표방했다이를 통해 거대한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기존 문법에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었다.

사파티스타는 곧 무장을 해제했다처음부터 유혈사태를 일으키고 국가로부터 분리되고자 함이 아니라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수용 속에서 국가 권력이 보호하지 않는 원주민’ 역시 동등한 시민이며 정치적 공론장에 설 것이라는 외침이자 경고가 목적이었으므로하지만 사파티스타 혁명군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흐름은 빠른 속도로 멕시코를 집어삼켰다자본은 멕시코 국내 곳곳을 잠식해 대규모 개발을 행했고 원주민 공동체들이 주로 위치한 남부의 환경 보호구역 등을 파괴하는 방식이었다정부는 해당 지역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직접 나서기보다개발을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일자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하지만 이는 개별 원주민 공동체 내에서 유지해온 경제활동 방식 및 자연환경과의 관계 맺음 방식 등을 모두 무시하며 국가와 기업이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함이었다이들에 맞서다 한 해 수백 명의 원주민이 살해되고 있는데살해 배후에는 개발에 참여하는 범죄조직과 기업 뿐 아니라 국가의 개입까지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가장 최근에 논란이 되고있는 것은 마야 열차(Tren Maya) 건설 사업이다현재 대통령인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MLO)가 대선 운동 당시부터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마야 열차는 그의 당선 이후 곧바로 추진되었다유카탄 반도의 5개 주에 걸쳐 만들어질 마야 열차는 멕시코 내 최대 열대우림생물자원 보호구역마야 유적지와 원주민 공동체들의 거주지를 지나갈 예정이다충분한 환경 영향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역 내 원주민 공동체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방법도 없었다이렇게 일방적이고 파괴적인 개발과 이에 대한 저항은 마야 열차의 사례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긴 하나연방 환경부 장관의 집계에 따르면 비슷한 사례의 개발 사업은 현재 500건 이상이다엄연히 그 지역에 존재함에도 침묵당하는 이들을 원주민으로 결집하고 자신으로서그리고 나머지 공동체 원주민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활동하는 EZLN과 국가원주민협의회(Congreso Nacional Indí́gena, CNI)는 이번 사안에도 일찌감치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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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l Economista 

 

올해는 멕시코의 독립 200주년이자 테노치티틀란8 함락 500주기다. AMLO는 지난 5유카탄 반도를 방문해 300년의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동안그리고 독립 후 200년 간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마야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학대와 폭력에 사과했다그와 동석한 내무부 장관 올가 산체스 코르데로(Olga Sá́nchez Cordero)는 우리가 추구하는 회복은 우리가 멕시코라는 단일한 목소리라는 점을 모두가 다시 한 번 이해하는 것이라며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그 (단일한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그가 이에 대해 연설하고 있을 때 연설장 바깥에서는 원주민 공동체들의 시위와 함성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들은 연설장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그리고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원주민 공동체들의 반대에 부딪쳐 중단된 마야 열차 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정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움직임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원주민들의 역사와 현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국가 권력에 맞서고자 원주민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다시 원주민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이는 올가 산체스 내무부 장관이 차별과 피해 상황을 가린 채 화해를 위시해 이야기하는 하나의 멕시코에 전면적으로 대항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이렇듯 원주민’ 침묵시키기에 저항하고 이를 전복하여 원주민으로서 목소리 내기가 여전히 유효한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백인 지배세력이 자신들과의 구분 속에서 만든 원주민()’이라는 개념은 독립 후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무시제거되거나 혹은 근대적인 개조를 거쳐 국민성 정의에 사용되었다이후엔 국민국가의 시민을 해치지 않고 관광 자원문화 자원이라는 안전한 맥락” 내에서만 원주민()’의 발현이 허용되었다다양한 종족집단의 연속성과 공존에 대한 무지는 현재까지 이어졌고 원주민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져왔다원주민들은 지배세력이 부여한 원주민과 그 성질을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재정의하고 오랜 시간 원주민으로 묶인 여러 집단의 결집을 이끌어내며 생존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이는 원주민 개인과 개별 종족집단의 생존을 넘어세계 여러 곳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와 맞서는 약자들에게 연대하며 확장성을 보인다지배세력에 의해 본질이라며 고정되고 화석화된 원주민()’역사의 흐름에서 유영하며 확장성을 가진 성질로 전복한 셈이다멕시코 원주민들의 투쟁이 지구 반대편의 우리가 감각하기 어렵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연대의 손을 내밀고 맞잡을 것이므로그와 동시에 본질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함께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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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버트 M. 카멕 외 3인, 강정원 역, 『메소아메리카의 유산』 (서울 : 그린비, 2014), 672.텍스트로 돌아가기
  2. 1997년 12월 치아파스 주 악테알 마을에서 정부 인사와 관계한 민병대원들이 가톨릭 활동가의 기도모임을 덮쳐 원주민 45명이 피살된 사건이다. 해당 민병대원들은 마야인들이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최진숙, 「‘원주민’ 담론 생성과 물화된 ‘문화’ 개념 : 과테말라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베로아메리카연구』, 20:1(2009), 214.텍스트로 돌아가기
  4. 김윤경, 「멕시코의 “혁명적” 인디헤니스따들(Indigenistas)의 원주민(Indigena)에 대한 인식과 평가: ’타자’에서 국민문화로」, 『서양사론』, 87(2005), 196.텍스트로 돌아가기
  5. 로버트 M. 카멕 외 3인, 같은 책, 566.텍스트로 돌아가기
  6. 최진숙, 「인종화(Racialization)와 종족화(Ethnicization) 사이의 이중 구속」, 『비교문화연구』, 11:2(2005), 154.텍스트로 돌아가기
  7. 최진숙, 같은 논문, 156.텍스트로 돌아가기
  8.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 현재 멕시코시티 지역. 1521년 식민지 '개척'을 위해 스페인에서 건너온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함락되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