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쿨'임을 인정하시죠
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만, 적어도 청와대 블로그처럼 이름만 블로그라고 걸어놓고 쌍방향소통은 개뿔 지 혼자 줄창 떠드는 그런 곳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던 곳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였다. 그래서트랙백을 걸었었다. 그러나 반응은 묵묵부답. 하긴 관리하는 거 쉬운 거 아니란 거는 잘 안다. 그래서 서운할 거는 없다만, 이거 뭐 혼자 메아리 없는 외침을 쎄려 짖는 것도 아니고 좀 거시기 하긴 하다. 어쨌건 이번 글도 트랙백 건다.
지난 번 글이 꽤나 길어서 마우스 휠 상당히 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게다. 그래서 내, 될 수 있는 한 이번 글은 좀 짧게 요점만 간단히 정리하련다.
로스쿨은 '돈스쿨'이 아닐까?
한겨레 21에 기고된 사법감시센터의 글에 보면 로스쿨이 의외로 장학금이 많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 사법감시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25개 로스쿨 장학금 비율은 등록금 전액 대비 39%에 이르는데, 이에 따르면 전체 입학생 2000명 중 800명 가량이 무상교육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일부장학금 수혜자를 감안하면 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의 수는 더 늘어난단다.
그런데 교과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국 로스쿨의 전체 장학금 지급현황은 20%에 머물렀다. 참여연대가 전액장학금 수혜자 비율만을 가지고 내세운 39%와 비교해도 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당연히 일부장학금 수혜 예정수치와 비교하면 이 비율은 훨씬 더 떨어질 것이다.
단순계산만으로 볼 때도 무상교육 수혜학생의 수는 사법감시센터가 집계한 800명은 커녕 일부장학 수혜자까지 합친 숫자가 400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보다 정확하게 계산해보면 전액 및 일부 장학 수혜자 전체가 360여명에 불과하게 된다. 이 중 대체 무상교육 대상자는 몇 명이나 된다는 말인가?
일부 학교는 향후 단계적으로 장학생 비율을 높여가겠다고 하지만, 물론 이러한 계획의 이면에는 단계적으로 등록금을 올리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부 학교의 전언을 100% 믿는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돈이 퍼부어져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로스쿨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타 학과 학생들을 비롯해 대학 구성원들이 져야할 부담분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도록 한다. 이거까지 논하게 되면 로스쿨 돈스쿨이라는 것이 너무 선명해져서)
이런 상황에서 사법감시센터가 이야기하듯이 "서민과 가난한 천재들을 위한다면 그들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상황이 해결될 듯 보이나?
산수는 산수일 뿐
로스쿨은 법률에 의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정원의 6%를 '사회적 취약계층 특별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면서, 사법감시센터는 구체적으로 그 숫자를 거론한다. 2000명 중 6%니까 전체의 120명, 변호사 시험 합격률 80%라고 할 때 매년 100명의 취약계층 출신 법조인 탄생. 따라서 사법시험보다 훨 낫다 뭐 이런 논리다. 과연 그럴까?
일단 이 특별전형에 응시할 수 있는 취약계층 학생들은 4년제 학부를 졸업했을 것이 요구되나, 이건 논외로 하자. 다들 가는 대학이니 집안형편 어렵고 개인적으로 힘들더라도 다 다녔다고 치자. 우선 변호사시험 합격률 80%라는 이 구체적 수치는 도대체 뭘 근거로 만들어진 건가? 희망사항? 그랬으면 좋겠다는? 또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
다음으로 취약계층 학생들이 매년 120명 로스쿨에 들어온다고 해서 이들이 정상적 과정을 밟아 변호사시험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은? 평균합격률 그대로? 아니면 더 훌륭한 성과를 거둬 평균합격률을 상회하는 합격률을 자랑하게 될까?
일본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대충 우리랑 비슷한 상황이니 한 번 대입해보자. 넉넉잡고 평균합격률을 45%라고만 쳐도 여기서 벌써 취약계층 학생들의 예상합격인원은 기껏 54명 나온다. 학습진도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장학금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중간탈락하는 학생들까지 예상하면 예상 합격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떨어질 것이고. 기타 여러 종합적인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취약계층 학생들이 로스쿨을 나와 최종적으로 변호사가 될 가장 안정적인 예상인원은 불과 20명 안팎이다.
사법감시센터는 사시에 합격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연간 100명도 절대 안 될 거라고 자신있게 주장한다. 반면 계산을 뽑아보니 로스쿨을 하면 연간 100명은 충분히 사회적 취약계층 내에서 법조인이 탄생할 거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행인이 계산 뽑아본 결과 로스쿨을 다닌 사회적 취약계층 중 기껏해야 20명 안팎. 그렇다면 현재 사시 합격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연간 20명 안팎이 되지 않을까? 어느쪽 계산이 더 현실적일까?
그래서 뭐 어쩌자고?
물론 행인은 강용석 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 선발하는 예비시험제도를 두자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밝혔지만 한나라당에서 이야기하는 가난한 사람 운운은 벼룩이 낯짝에 페이스페인팅 하는 짓이다. 일단 강용석 등의 이야기는 그러므로 패스. 문제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를 비롯한 일군의 로스쿨 지지단체들이 현실상황이 완전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대로 로스쿨 제도 자체에서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로스쿨 제도 같은 거 두지 말고 사시합격자 수나 2000명 이상 확 늘리는 것으로 밀고 나가지 못한 것에서부터 문제가 출발했다. 사법감시센터가 누누히 강조하는 것처럼 로스쿨이 법률가를 양성하는 곳이 되도록 하려면 변호사시험 역시 쉽게 합격할 수 있고 합격자의 수도 더 많아져야 한다. 죽으나 사나 사법감시센터는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주장할 거다. 예비시험제도는 로스쿨의 설립 취지를 어기는 것이므로 절대 반대라는 입장 역시 강조할 거고.
그리하여 일본처럼 인가기준 확 떨어뜨리고 정원 대폭 확충해서 학생들 많이 들어오면 로스쿨 학비 싸지고 무상교육 늘어나고, 취약계층이 법조계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게 될 정도로 변호사시험 쉬워지면 문제가 다 해결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제안을 하나 하자면, 괜시리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처럼 없는 사람 생각해주는 척 하지 말고 걍 로스쿨 = 돈스쿨이라는 거 인정해버리라는 거다. 취약계층이고 뭐고 그런거 우린 몰라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로스쿨 졸업생들이 알아서 어려운 사람 도와주길 바라기로 하고 변호사 시험이나 쉽게 합격할 수 있도록 하자구요. 대신 전국의 학부 법학과는 싹 없애버리기로 하고. 무슨 얼어죽을 일본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니고 한국식으로 한다고 설레발이 치지 말고 걍 미국식 로스쿨 만들자고.
이건 좀 부담스럽나? 그래도 명색 시민단첸데 로스쿨이 취약계층에게 유리하다는 이야기는 계속 해야겠다는 부담이 그대로 남나? 부담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로스쿨 살릴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그래야 한나라당 얼치기들이 고양이 쥐생각하는 짓거리에 정면으로 맞짱 뜰 수 있을 거다. 물론 그 전에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원죄에 대해서 먼저 대국민 사과부터 하고.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 개념이 없었던 것이고, 이렇게 되더라도 일단 만들어놓고 보자는 심사였다면 그 많은 법조희망자들을 농락한 것이고.
결국 사법감시센터에서 활동하는 교수님들을 포함한 전국의 법대 교수님들께서 그동안 학교에서 법조인양성의 근간이 되는 법학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뭐 다른 걸 가르치고 있었다는 이야깁니까? 그럼 그분들이 왜 법학교수라는 타이틀을 앞에 붙이고 다니셨을까요? 비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