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런 이야기

1. 상대성

일희일비 하지 않고 좌고우면 하지 않겠다. 뚝심있고 강단있는 표현이다. 결론은 갈 데까지 가겠다는 이야기. 누가 짖던 정면만 바라보고 뛰겠다는 이명박의 이 취임 1주년 소회는 매우 재미있다. 지야 앞을 보고 뛰는 거지만 그 방향은 시간의 흐름과 정반대 방향. 시공간의 상대성은 같은 순간 존재하고 있는 동시대인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극단적으로 발현한다.

용산 참사가 30년 전 개발 독재시대의 악몽을 되살리게 했다는 것은 애교수준일 정도다. 이명박 정권의 성격이 신자유주의? Oh, No. Never~! 이 인간의 발상과 전망은 400~500년 전 유럽의 중상주의를 향한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팔자에도 없는 타임머신 여행을 하면서 시공간을 거슬러 간다. Dr. Who는 드라마의 주인공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2. 팔자?

대선 지지층조차도 이미 절반 이상이 지지의사를 포기한 정권. 그러나 제어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처럼 앞으로만 달려간다. 물론 우리의 뒤를 향해. 그러면서 뒷걸음질치며 따라붙지 않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겐 가혹한 응징을 가한다. 때론 물대포로, 때론 화염으로, 또 때론 법치라는 미명으로.

문제는 이 상황에서 적대적 대응이라는 것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 억지능력이 없는 대립관계는 힘을 가진 쪽의 일방적인 상황주도일 뿐이다. 그리하여 운동은 촛불의 일렁임만큼이나 불안하게 흔들리고, 내성을 기른 바이러스는 '수퍼'라는 접두사를 지 정체성에 더해가며 면역체계를 비웃는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21세기 한국의 인민들은 맘에 없는 시간여행을 팔자려니 하면서 끌려가야할 판이다. 말 그대로 미래4년은 고난이다.


3. 대안부재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로 무장한 정권에 브레이크를 걸고자 하는 마음이야 이젠 대선 당시 이명박이 대세라고 환호했던 자들에게조차 넘실거린다. 이만하면 분위기는 오케이. 그런데 왜 후방질주하고 있는 폭주열차에 제동은 걸리지 않는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검토할 수 있다. 하나는 상황적 요인, 하나는 주체적 요인.

첫째, 경제상황을 비롯한 주변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마치 IMF 당시 처럼, "경제위기"라는 공포는 축적과 욕망을 삶의 축으로 삼고 있는 평균적 인민들의 두뇌활동을 정지시킨다. 그 결과 초법적이고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진 시장과 자본의 위세에 몸을 움츠릴 뿐, 당장 이 정권에 대한 전복적 대응은 불안만 가중시킬 뿐이다. 정권차원의 실착이라고는 하지만 대북관계며 대미관계며 이런 류의 대외관계 역시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다. 기타 등등 마찬가지.

둘째,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정치적 대항마의 역할을 해야 할 위치에 서 있는 자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스코어는 역전승은 커녕 무승부를 만들어낼 여지조차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현 정권에 대해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 상대자가 없다. 김영삼을 때릴 수 있었던 김대중의 존재가 없는 상황. "정권타도"의 구호는 그래서 목구멍까지 치밀다가 명치끝만 내리 누르고 만다.

역시나 고달픈 것은 능력의 부재다. 능력의 부재는 대안의 부재를 낳고, 대안의 부재는 현실타개의 시간을 그만큼 늦춘다. 미래4년이 고난임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손으로 새로운 미래4년을 지금 만들면 될터이나 이게 불가능하다.


4. 박근혜?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이 둘의 차이는 노무현과 이명박의 관계에서 만큼이나 별반 특별한 것이 없어보이긴 하다. 작년 이래 최근까지, 이명박의 불도저식 삽질의 한 켠에서 불로소득을 살짝 누릴 수 있었던 박근혜. 왜 박근혜 이야길 하냐고?

사실상 현재 상황에서 이명박을 권좌로부터 밀어낼 때, 인민의 봉기가 아닌 절차적 민주주의의 틀을 따른다면, 이명박 이후 가장 유력하게 대권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는 박근혜 단 한 명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정몽준?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고 또다시 붉은 악마 4강 신화를 만들어낸다면 모를까, 정몽준이 다음 대권주자로 들어 앉기는 요원하다.

김문수야 경기도지사하는 것도 모자라 택시운전까지 하면서 유권자의 마음을 끌어안아보겠다고 하고 있지만, 지금 김문수 하는 짓거리는 이명박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전혀 딸리는 구석이 없다. 이 외에 몇 명 이름이 생각나는 유력 인사들, 줄줄이 검색을 해봐도 그닥 대안이 되지 못한다. 야당 일각에서는 반기문을 데려오자고 하는 똘아이도 있다보던데, 이건 코멘트가 필요 없다.

문제는 이명박을 끌어내리고 박근혜를 그 자리에 앉히면 미래4년 고난이 희망찬 21세기로 바뀌냐 이다. 그닥 그럴 가능성은 없거니와 더더군다나 이념적으로 이들과는 밥상을 같이 할 수 없는 행인이나 행인보다 왼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모두 복제된 Dr. Who에 불과할 따름이다.


5. 뒤집어 엎기

경향의 이대근이 박근혜에겐 "어떻게"가 빠져있다고 하면서 실랄하게 비판한 바가 있는데, 그건 사실 오바다. "어떻게"라는 부분은 이미 다 나와 있는 상황. 박근혜가 굳이 기자들 앞에 놓고 강의하듯이 명박이가 이건 요렇게 잘못했는데요, 그건 그래서 이렇게 해야하는 거구요, 저는 요러저러한 대안이 있거등요. 이런 썰 풀 이유가 없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인사가 아니라 무소속이라면 모를까. 한나라당 안에서도 이미 이런 저런 "어떻게"는 다 나와 있다. 세간에서 알고 있듯이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나 구성원들이 뇌를 집에 놔두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박근혜가 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드는 시기다. 학습효과라는 것은 중요한 것. 이명박은 인민의 학습을 위한, 그리고 차기 정권에게 경종이 될 수 있는 샘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족하다. 즉, 인민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지금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적어도 인민의 힘에 의해 정권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깊이 각인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전례가 물경 반 세기 전 4.19때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자기 직전의 정권에서 벌어진 일임을 항상 되새길 수 있다면, 박근혜가 된다 한들 지금처럼 후진기어 땡겨놓고 악셀레이터만 밟고 있는 짓을 계속할 수 있을까?


6. 조심스러운 이야기

사실 이런 이야기 대놓고 할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몇 차례, 아주 극소수의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 했다가 긍정적인 반응은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다. "난 박근혜 반댈세~"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 뭐 행인도 입장은 동일하다.

더구나 "민주시민", "촛불시민"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뉴라이트나 개독단체 및 수구단체들을 제외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전면에 나서서 이명박 끌어 내리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자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거다. 아마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다. 500원 내기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론은 그거다. 박근혜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 오히려 두려워할 것은 이 상황의 타개, 즉 정권의 타도가 대안부재라는 무시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해 계속해서 늦춰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가끔은 "너희의 대안은 뭐냐?"라는 질문에 대해 대안은 그 때 가서 같이 한 번 논의하기로 하고 지금은 걍 엎어놓고 보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뭐 정 이런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오직 행인 한 사람 뿐이라면, 걍 요새 되는 일도 없고 해서 별 씨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구나 하고 웃어주길 바란다. 하긴 진짜 요새 진도도 안 나가고 상당히 심신이 고달프다. 오늘 포스팅은 완전 용두사미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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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8 18:24 2009/02/2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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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에 있었던 촛불시위가 너무 지나치게 빨리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입법 과정이나 용산 사건과 같은 문제로 일어났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에너지가 소모된 느낌이 드는 거죠.
    해 봐야 소용없다라고 하는 의식마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생각도 들구요.
    작년에 너무 일찍 타올랐다가 결국 힘이 소모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 저도 시기에 대한 미련이 남긴 합니다만, 시기의 문제보다는 질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해요. 결국 명박이는 아, 이게 얘들이 암만 떠들어봐야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없구나, 까이꺼 쌩까도 별 거 없겠군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말이죠. 소모된 힘이야 언젠간 다시 재충전이 되겠습니다만, 그 재충전의 과정에서 질적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뭔가가 나올 수 있을려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네요. 쩝...

  2.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도 그렇지만, 이 이야기도 저에겐 좀 어려운 이야기 같습니다... 이명박이라는 한 시스템의 중핵이 물론 문제이긴 하지만, 그 시스템의 관성에 포로가 된 그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요. 조금스런 이야기라기 보다는 정말 어려운 이야기네요...;;;;

    추.
    건 그렇고, 오랜만에 RSS 리더에서 직접 방문했는데요.
    문패가 바뀌었고만요?
    새봄맞이신가요?
    저도 오늘 내일쯤 블로그 새봄맞이할까 싶습니다.

    • 이명박은 시스템의 상징일 뿐이죠. 제도적 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사고체계에 있어서도 말이죠. 사회적 사고체계.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되던 제도적 시스템은 어렵사리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사고체계를 극복할 방안은 없다고 봐요. 좀 더 시간이 걸리는 문제겠죠. 다만, 당장 필요한 것으로서 현재의 상징인 이명박을 정권에서 끌어 내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정도... 케인즈의 말마따나 장기적으로는 다 죽는 거니까요. ㅎㅎ

      문득 생각이 나서 프로필 사진(치요짱)을 바꾸려고 했는데, 시스템의 문젠지 아무리 해도 바뀌질 않네요. ㅎㅎ 여기도 시스템이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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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송합니다만, 뭘 문의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가질 않네요.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라서요. 혹시 가능하시면 조금만 상세히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썩 아는 바가 그리 많질 않아서요. ^^;;;

  4. 대선 예비후보군 중 그네공주의 지지율이 독보적인 30% 이상이고 나머지는 다 10% 미만이더군요..
    결국 그네공주가 딴나라당을 나와서 새 당(친박연대?)을 만들고 '정권교체'를 하는 건 어떠냐는 뜻인가요?
    흠.. 굳이 그네가 딴나라당에서 나올 이유가 있을지.. 나온다면 정몽준이 차기 대선후보로 확정될 경우???

    •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나오던지 말던지는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건 지들이 알아서 하겠죠. ㅎㅎ

      다만, 저는 당장 계급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면, 적어도 인민들이 정권의 수장을 끌어 내릴 수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체제가 전복되지 않는 한, 이명박이 끌어내려지면 결국 선거를 하게 되겠죠. 지금 상황에서 그 선거를 통해 박근혜가 된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확정적일지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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