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의 몸짓

한동안 뻥구라닷컴이 개그닷컴화 되는 거 같아서 뭔가 진중한 글을 좀 올려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능...

 

사실 이 코메디같은 현실에서 진지한 글을 생산한다는 것이 쉽지도 않거니와, 코메디같은 현실을 진지하게 엮어봐야 그건 또하나의 코메디가 될 뿐이지 않는가라는 고뇌가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맴도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진지한 글을 쓸만한 "지적수준"을 가지지 못했다는 자괴감 또한 가볍디 가벼운 글을 쓰게 되는 일종의 도피장치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탈출구를 마련해 준 변대표에게 감사...

 

법학박사이시며, 법대 교수이시며, 유럽헌법학회 부회장이시며 동시에 '대법관 앤드 그리고 감사원장에다가 총리까지 역임하신 당대표를 가진' 자유선진당의 대변인씩이나 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분의 성함은 박선영씨 되시겠다. 이분이 "국민을 섬기는" 자유선진당 대변인의 자격으로 이번 국장과 관련된 논평을 하나 내시었다.

 

논평의 요지는 이거다. "원칙을 지키자"

좋은 얘기다.

 

솔직히 말해 DJ 장례를 국장으로 치루던 뭘로 치루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요즘 사회 각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장관련 설왕설래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박선영 대변인의 논평에 각별히 관심이 가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가 왜 "원칙"을 새삼스레 강조하고 나오는가 이다.

 

일단 이 논평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거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원칙을 지키자고 하는 건 좋은데, 이번 논평의 발단이 된 사건은 DJ의 장의절차다. 그렇다면 이번 장의절차는 이러저러한 것이 문제이므로 이렇게 했어야 한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원칙을 마련해 다음번엔 이러저러하게 하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어야 자연스러울 게다.

 

그런데 박선영의 논평에는 이러저러한 게 문제라고 막 뭐라고 하긴 하는데, 그러므로 어째야 한다는 이야기는 두리뭉술하게 원칙과 정도를 지키자고 하고 만다. 뭐하자는 걸까? 기껏 지는 신경질 다 내고 결과는 교장선생님 애국조회 훈화말씀으로 끝나면 듣는 이들은 괜히 정신만 산란해진다.

 

암튼 그건 그렇다 치고, 박선영이 주장하는 내용을 잠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왕권통치를 하던 조선시대에도 현직 왕이 붕어하거나 상왕 등이 승하하는 경우에 예법과 절차가 완전히 달랐다."

 

미안하지만 그 땐 "국장 국민장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던 시기가 아니다. 더욱이 주자성리학의 득세하던 시절이라 예법에 대한 기준이 어느 때보다 명확했던 조선시대에조차 상복을 얼마나 입을 것이냐를 두고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사실 예송논쟁은 정권교체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판단에 관한 정치세력 간의 치열한 정쟁이었으나, 어쨌든 그 때도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말이 많았던 거다.

 

"국장과 국민장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적용되어야 한다. 국장이면 국장이고 국민장이면 국민장이지 억지로 공휴일에 맞추기 위해 6일 국장을 한다면"

 

물론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야 깔끔하지. 그런데 지금까지 "국장 국민장에 관한 법률"이 이렇게 엉성하게 되어 있어도 실제 별 문제가 없었다. 왜? 지난 60년 동안, 건국된 이래 한국에서 벌어진 국장 국민장 다 합쳐야 15건. 비율로 따져봐도 4년에 1건이다. 건수 자체가 드문데다가 어차피 법률에 따르면 장의위원회가 구성되게 되어 있고 거기서 의전에 관한 실무적 내용이 결정된다. 왜냐하면 망자의 개인적 조건, 예컨대 종교나 지역이나 생전의 기호 등등에 따라 의전의 형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휴일 안 만들려고 6일장 한다는 듣보잡 수준의 장의일정은 황당하긴 하다. 그러나 뭐 어쩐단 말인가? 유족과 국가가 그렇게 합의를 했다는데야. "자유선진당"의 모토인 "자유"에 따르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박선영의 "원칙론"은 일견 수긍이 갈만하지만 왜 지금 시점에서 이런 "명확한 기준"을 떠드는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대충 이해가 간다.

 

"앞으로 영면하실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거다. 현재 남아 있는 전직 3명.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오락가락 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던 노태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두환, 김영삼 두 전직의 현재 용태를 볼 때 아직 이들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오히려 빨리 가시길 앙망해야할 처지. 그러나 이 앙망은 당분간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보일 정도다. 하긴 뭐 연로하신 어르신들이야 밤새 안녕이지만서도...

 

문제는 518 학살 주범인 전 노 두 전직은 이미 전직예우를 박탈당했으므로 국장이고 국민장이고 해당 안 된다. 되려 죽기 전에 미수금이라도 받아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특히 29만원 밖에 현찰이 없다는 전씨의 경우, 이건 도대체 아직도 29만원인지 잘 모르겠다만, 어쨌건 다 토해내고 가야 하는데 이게 별로 가망이 없다는 거.

 

따라서 박선영의 논리에 따를 때 장의절차가 문제되는 사람은 김영삼 한 사람 뿐인데, 글쎄다... 이분 성격에 DJ도 국장 했는데 나도 국장으로 해줘... 이럴 거 같다만서도, 전직이라는 요건만 있을 뿐이지 나라 재정 거덜내서 암에푸에다가 갖다 바치는 망신살이 뻗친 주제에 그걸 뭐 공식요청할 정도로 낯짝이 두꺼울지는 그 때 가 봐야 알겠고...

 

사실 법학을 전공한 것도 모자라 법학 교수를 하고 있는 분이 이 정도 법률적 요건이나 기타 상황을 판단하지 못해서 이런 뜬금 없는 논평을 내진 않았을 거다. 따라서 논평의 내용은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이런 논평을 낸 저의가 뭔가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저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일단의 문장은 바로 이거다.

 

"국립 현충원에 자리가 없어 대전으로 가야 한다던 정부가 이틀 사이에 어떻게 땅을 만들어 장지가 바뀌었는가? 밤새 어디 땅을 불도저로 파왔는가?"

 

불도저...

그거 다른 말이 아니다.

 

불도저=이명박

 

박선영의 의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작금 DJ 국장 정국에서 갑자기 들고 일어나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 열폭하고 있는 보수집단(엄격히는 수꼴들). 얘네들에게 지금 손짓하고 있는 거다. 이명박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아노미에 빠진 보수들에게 박선영이 유혹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 중이다.

 

여길 봐주세요, 선진당이 있어요~~ 불도저 이제 그만~! 선진당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물론 박선영 및 자선당의 삐끼질은 그닥 영양가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들의 손짓 저편에 있는 극보수 여러분들은 그 숫자가 얼마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잔여생명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들. 하긴 자선당의 잔여생명 역시 그 수준이긴 하므로 동류의식의 발로로 볼 수도 있겠으나 암튼 남는 장사질은 아닌 거다.

 

그러나 뭐 어쨌건 간에, 끼리끼리 어울려 보겠다는데 뭐라 할 맘은 없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자유선진" 국가 아닌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내버려 두지 머. 차라리 이 참에 뭉칠 수 있는 보수들은 한 곳에 다 뭉쳤으면 좋겠다. 한나라당, 친박당, 자선당에다가 수꼴 단체들 하나가 되어 찬란한 보수정치집단 하나 거창하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나?

 

암튼 속보이는 논평 하나 보면서 세상 참 재미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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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1 16:10 2009/08/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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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애라고 봐도 좋죠!!!
    다음에는 제3보수야당

    • 글쎄요... 자선당은 아마 내년 지자체 선거 이후 없어질지도 모르겠는데요. ㅎㅎ

      안타깝게도 구애의 효과는 별로 안 나타날 듯 해요. 물론 이회창도 계속해서 수꼴들에게 구애의 손짓을 하고는 있지만서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