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자세

겨울이 가고 또 겨울이 찾아올 동안 용산의 악몽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만드는 한편 니들이 얼마나 버티나 두고 보자는 식으로 사건을 내팽개치고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정부의 대응은 얼마든지 신속하며 신중하며 착실하게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며칠 전 부산의 한 실내 사격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사망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본인 관광객이었기 때문에 사건이 더 커졌겠지만, 이 사건에 대응하는 정부의 행보를 보면 거의 광속에 가까운 수순이라고 할만하다.

 

총리는 영안실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행안부는 사고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고 문체부는 보상을 비롯한 모든 사후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 예우가 경우에 따라 이렇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냐, 혹은 경중의 배분이 사회일반의 인식과 상규에 이리도 어긋나야 하는 것이냐를 묻고 싶은 거다.

 

쌀쌀해지는 날씨지만 노여움이 앞서다보니 열이 훌훌 오른다. 이런 식으로 가면 올 겨울 난방비는 크게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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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6 10:44 2009/11/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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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냐하면 용산 철거민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도실용정책 한다면서 일자리 만드는게 최고라고 하면서 비정규직은 양산하는 이 정권한테는 비정규직도 인간이 아닙니다. 하층민이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세상입니다. 참 스바

    • 인간이고자 하지만 인간이길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거, 이거 하나만으로도 분노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정말 욕나오죠.

  2. 이나라 사람들의 죽음에도 무릎 꿇는 위정자들이 있었다면...ㅠㅠ

  3. 한국 정부 입장에선, 관광자본으로 창출된 시장의 (잠재) 소비자인 일본인들이, 건설자본이 키우고픈 시장의 성장을 훼방놓는 한국인들보다 기본적으로 우선인 '고객관리' 대상여서겠죠.; 참사로 희생된 일본인 분들도 얘길 듣자니, 평생 처음 큰맘 먹고 나선 해외여행이었다는 걸로 봐선, 용산 주민들과 처지상 그다지 멀어 보이진 않지만 말예요.ㅠ

    • 죽은 사람들에 대해 애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항간에 총리가 무릎꿇은 것 자체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던데, 어차피 문상간 자리에서 절하는 게 한국사회의 일반적 예법인데다가 자기 스스로 애통한 나머지 그리했다면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겠죠. 국적과 관계없이 돌아가신 분들과 그 유족에겐 아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자주 들어가는 꼴통사이트에서는 이번 일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관광자원을 육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칼럼이 올라왔더군요. 보면서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습니다만(꼴통들의 이야기를 희화화하는데 이력이 난 저입니다만 이런 것까지도 웃기는 걸로 만들려고 노력하긴 정말 어렵습니다), 그게 현 정부의 생각과 같은 것이려니 하면 참 암담하기 이를 데가 없군요. 외교상의 의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살게 해달라고 하다가 죽은 사람들에겐 도리어 몽둥이 찜질을 하면서 사고사로 사망한 관광객들에겐 그보다 더할 수 없는 예우를 한다는 것을 납득하기가 힘드네요. 정말 들사람님 표현처럼 '고객관리'차원이라면, 이건 거의 타는 가슴에 시너를 끼얹는 짓이겠죠. 근데 그게 진짜 그런 거 같다는 느낌이 드니 환장하겠습니다. ㅠㅠ

  4. 그러게요.. 설사 정 총리가 깍듯했다 한들, 더구나 여행온 정황을 보건대 더 짠한 애도심이 생기는 거야 하등 이상할 게 없죠. 그 대상이 '쪽바리'라서 더 기분나쁘다고 반응하는 찌질한 댓거리야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요.ㅠ

    어떻든, 대한민국 정부서 설레발치는 소위 세계화가, 장삼이사들의 소비와 소득 능력을 척도로 해 어떤 위계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던 풍경인 건 분명하지 싶어요. 꺼진 불 보듯 다시 보고, 속지 말아야 할 건 북조선공산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이기도 하단 걸 스스로 보여주고 있달까요. 앞으로 제대로 대처를 하려면 적어도 이 점만큼은 놓치지 말아야겠다 싶은 것이-.

    다만,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할까요. 저들은 저런 성심과 성의가 이곳 정세와 맞물려 어떤 (복합적) 반응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해선 통 감이 없을 듯하네요. 엄밀히 말함 이번 화재로, 구매력 없는 난민들은 신경 끄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을 본의 아니게 들키게 돼 난감하게 됐다고도 해야겠지만 말예요. 이런 정황들이 당장은 어려워도 '국면 반전'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텐데..ㅠ

    • 그렇죠. 저도 동의하는 것이 언필칭 국제관계에서 성심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넘어 자국민들의 감수성이라는 것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일관성인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차원에서는 자폭이라는 거죠. 아무리 한국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한들 뭔가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아쉬운 것은 저도 마찬가지로 '국면전환'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별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제무덤을 저리도 성실히 파고 있는 자들에게 한 삽 보태주려는 마음들이 서서히 일어날 것이고 이미 그런 조짐들이 보인다는 거죠. 요소요소에서 말이죠. 비록 저는 그러한 국면전환을 위해 당장 들고 뛰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말이라도 한마디씩 더 얹어놓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심정입니다. '양질전환'이라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그 말들이 행동으로 전환될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좀 띨한 생각에서지만 말이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