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의 사과

관광차 내한했다가 유명을 달리한 일본 관광객들과 관련해 각하가 일본 총리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문득 드는 궁금증은, 글로벌 호구 이명박 각하가 어떻게 사과를 했을까 하는 거다.

 

"하토야마상, 쓰미마셍~!" 이랬을까?

"미스터 하토야마, 암 쏘뤼~!" 이랬을까?

아님 기냥 "하토야마, 먄~~!" 이랬을까?

 

시장바닥 돌아다니면서 천것들하고 오뎅 먹어가며 사진 몇 장 박아봐야 약발이 먹히기는 커녕 지지율은 날로 떨어지고, 해서 얻은 결론은 "인기, 인심 얻는 데 연연치 않겠다"는 옹골찬 불도저식 신념이었으나, 경우를 달리하여 불문곡직 일단 사죄부터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인기를 얻어보겠다고 노력하는 각하는 니뽄노 다이토료데쓰까?

 

돈 안 되는 것들은 죽거나 말거나 간에 일단 '고객관리(들사람님 표현에 따르면)'차원에서 돈 되는 분들의 생사에는 광속의 속도로 애도를 표하는 각하를 보면서, 행인 성격상 "이런 빌어먹을 쥐박이 생퀴"라는 욕을 하고 싶다만, 그랬다가 지금도 음지에 숨어서 양지를 샅샅이 훑어보고 있는 사이버감시망에 걸려 명예훼손 고소드립이라도 걸리면 만년백수 주제에 책값도 없어 벌벌 떨고 있는 학삐리가 벌금대신 강제노역이라도 신청해야 하는 사단이 벌어질 수 있으므로 욕지거리는 생략하기로 한다.

 

엄동설한에 죽어 다시 엄동설한이 돌아올 때까지 냉동실에 안치되어 있는, 그래서 죽어서도 이승의 혹한을 견뎌야만 하는 가엾은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손톱만치라도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와 인심 같은 것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뚝심의 각하에게 용산참사에 대한 성의있고 책임있는 자세를 바라는 것은 이제 공염불에 불과한 것 아닌가 싶다.

 

말을 빼앗긴 자들의 슬픔은 그래서 갈수록 커진다.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달랑 두 가지. 체념하거나 전복하거나. 이 양자 간의 선택지 사이에서,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들은 권력과 폭력을 동원하여 체념을 강요한다. 강자의 위치에 서 있는 자들은 결코 말을 할 수 없는 자들에게 인기와 인심을 청원하지 않는다. 자신들 사이에서의 인정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하니까.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각하의 건재를 간구하기 위해 여의도에서는 부흥성회가 열린다. 수고하는 이명박 장로 대통령 각하를 위해 기도하는 개독 먹사들이 있는 한, 고객의 인심만을 챙기며 삽질의 나날을 보내는 각하의 안위는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신다는데야 뭘 어쩌겠는가? 물론 이 똘추들의 만세삼창인지 통성기도인지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는 것은 신이 없다는 거. 신이 있다면 이것들이 이럴 수는 없음이렸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체념과 전복의 양자택일이라는 선택지가 놓여진 듯 보이지만, 실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다. 체념이라는 것은 더 물러설 곳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체념은 곧 죽음이다. 차라리 각하께서 더 몰아쳐 주기를. 말을 빼앗긴 자들이 신체마저도 버릴 것을 요구해 주기를. 그 순간 사과따위는 필요치 않을 테니까.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신체는 물론이려니와 잃어버린 말까지 회복하게 될 때, 기요틴 아래에서는 사과 한 마디 없었던 누군가의 입이 뒹굴고 있을 것이다. 전복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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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7 12:25 2009/11/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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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우 강렬한 마지막 문단~!

    • 아, 물론 은유는 은유로 받아주셔야 하는데, 각하 휘하 한 자리 하는 분들이 요새 좀 민감하신듯 해서 걱정이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