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낙서...
한 숨 돌리기가 영 쉽지않은 시간들. 바쁨이라는 어떤 상황적 조건이 영 내키지 않는 것은 체질적 귀차니즘의 발동때문이 아니라, 그 바쁨이 메너리즘에 갇힌 지루한 일상들을 탈출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 오히려 이 답답한 일상을 연장해버리는 것이기 때문. 그나마 잠시 쉴 틈이 생긴지라 때를 놓치지 않고 엄습하는 잡생각의 쯔나미. 아, 이것이 인생이련가... 인생은 뉘미럴...
최근 든 생각인데, 아니 최근 새롭게 한 생각이라기보다는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인데, 어떤 사건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은 그 사건의 무게때문이 아니라는 것. 그럼 뭐?
일단은 거리. 이건 심리적 거리 운운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리적 거리.
연상녀의 노년기로 말미암아 욕구불만에 시달리던 '꼬마'가 열대우림출신인 주제에 동면의 경험조차 없이 청계산 추운 골짜기로 탈출을 감행했을 때, 이 나라 모든 언론은 얼마나 알뜰하게 그 안위를 걱정했던가? 심심산골(?)을 자식 찾는 어미의 심정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돌아다니던 사육사가 돌아온, 아니 다시 포획된 '꼬마'를 앞에 놓고 흘린 눈물은 또 어찌나 심금을 울리던지...
이 와중에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을 유발한 어떤 한국 기업에 대한 기사는 찔끔 흘러나왔다가 사라졌고, 어느 얼음바다에서 실종되었다는 배사람들의 행방에 대해선 여전히 남의 일처럼 흘러 지나간다. 하긴 내집에서 칼부림 나지 않으면 옆집은 먼 나라. 그런 거긴 한데.
관심이라는 것을 촉발시키는 사건의 성격 중 하나는 책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건에 대한 관심은 높고 책임져야한다는 부담이 작용하는 사건에 대해선 관심이 적은 것. 당연한 것일까? 관심이 적다기보다는 회피라고 해야할지...
돌아온 '꼬마'를 보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가 먹을 것을 던져주는 한편, '꼬마'의 욕구불만을 해소시켜 줄 획기적 대안...이라고 해봐야 또 곰 한 마리 더 들여오는 건데, 암튼 그것도 대안이라고 관심 쏟아붓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저리 살뜰하신지들...
반면 일단 내 머리 위로 장사정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한, 찜질방을 가장한 수용소에서 연평도 주민들이 웅크리고 있던 어떤 비정규직이 이 살떨리는 한 겨울에 고공농성을 하던 그쪽으로는 왠지 눈돌리기가 어려운 듯 보인다. 뭐 당장 내 먹고 사는 것도 바쁘니 그럴 수도 있다.
하긴 이렇게 무슨 사건이 어쩌구 하면서 되도 않는 걱정과 쥐뿔 도움 하나 안 되는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같잖은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거 뭐 이거야 개인적 취향이니 태클은 사양. 지 발등에 불도 끄지 못하는 주제에 남 걱정가지 하고 앉았는 것이 가당찮기도 하거니와 솔직히 스스로 생각해도 주제넘는 짓 같기도...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