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찢기

대자보 써본지도 꽤나 오래 되었구나. 하룻밤에 손으로 수십장씩을 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최근 '안녕하십니까?' 시리즈가 유행할만큼 대자보라는 '매체'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자 한편에서는 이걸 또 찢고 낙서를 하고 옆에 '장군님' 사진을 붙이는 등 일종의 테러를 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어떤 주장이 눈길을 끄는데, 대자보가 총학이나 학교에 의해 허락을 받고 지정된 장소에 일정 기간을 정하여 붙여야 한다는 것. 물론 그렇게 붙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대자보 부착의 원칙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많이 어이가 없다.

 

대자보는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어디에라도 붙일 수 있어야 했다. 과거에는 총학생회 등 학생조직에서 쫓아와 제발 자기들 붙일 공간만은 남겨놓고 대자보를 붙여달라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섣부르게 철거를 했다가는 엄청난 후과를 감당해야 했고.

 

사람들이 저마다 안녕을 묻고 있는데 그 방식이 대자보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쩌면 이것은 신문, 방송, 하다못해 SNS까지 통제되고 감시되고 방해되는 것에 대해 가장 원시적 방법을 통한 대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원시성이라는 것은 제도와 권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겠다.

 

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고 태운다면 그거야말로 이 사회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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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8 17:59 2013/12/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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