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은 그대로 남았는데
여기 두 개의 글이 있다. 시간상으로는 내가 올린 질문이 먼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올린 금민 의장의 글이 나중이다.
윤현식 : 사회주의강령과 기본소득론의 충돌(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6.02, 제28호)
정책위원회(금민) : '미래에서 온 편지'의 기본소득 관련 두 편 글에 대한 반론(노동당 당원게시판 72421. 2016.2.19)
금민 의장이 올린 이 글은 내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작성되었다. 그런데 금민 의장의 글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 나오게 된 이유를 다시 정리한 것이다. 금민 의장이 올린 주장들은 내가 위 글의 질문을 하게 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금민 의장이 친절하게 Q&A형식으로 정리한 저 많은 내용들은 이미 앞선 나의 질문을 올리기 위하여 다 들여다 봤던 내용들이다.
이렇게 되면 금민 의장의 답변은 답변이 아니라 왜 문제가 제기되었는지 그 이유를 다시 밝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기본소득이 어째서 사회주의적 기획이 될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글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사회주의적 기획으로서의 기본소득"이라는 글에서 기본소득이 세 가지 차원으로 사회주의를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들여다보자.
"나는 두 가지를 가정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우쭐거릴 수준은 아니지만 남부 끄럽지않은수준으로살수있는수준이어야한다. 즉, 그 급부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즉, 임노동자 생활을 안하는 것]이 유의미한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두 번째 나는 이런 급부 수준이, 노동자에게나 투자자에게나, 장기에 걸쳐 그 급부를 지속불가능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동기부여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들에 근거하는 한에서, 기본소득은 사회주의적 기획들의 세 가지 원칙들 각각에게 기여할 것이다."
이 인용문을 보면서 우선 드는 의문은 그 상당히 높은 급부 수준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수준이어야 하는가이다. 노동시장에서 개인이 철수할 수 있을만큼의 수준이 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한국인에게 한국정부는 얼마를 줘야할까?
다음으로, 급부지속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지속이 가능하기 위한 재원조달의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나? 조세전환과 자본가로부터의 중과세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급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위한 담보물로 충분한가? 기본소득론자들의 입장조차 경제위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이런 주장이 논리적인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에릭 올린 라이트의 이 주장은 선후가 바뀐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에릭 올린 라이트가 제시한 기본 전제가 충족된 시점은 이미 사회주의체제가 일정한 정착을 이룬 단계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애초에 이런 전제가 있으면 사회주의적 기획을 진행할 수 있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사회주의적 기획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효과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문때문에 나는 위 질문을 했다. 그런데 금민 의장의 답은 에릭 올린 라이트의 글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금민 의장은 내 글이 "기본소득으로 자본과의 협상력이 증대할 것이라는 비전은 자본에게 어떤 위협도 주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이러한 단정 이외에는 어떤 분석도 생략되어 있기에, 에릭올린라이트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라고 하면서 나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만들었던 에릭올린라이트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답변을 하고 있다.
질문하게 된 근거를 소상하게 밝히지 않은 나의 탓도 있겠으나, 의문의 원인을 의문의 해답으로 제시함에 따라 여전히 의문은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저 질문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기본소득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금민 의장은 물론이려니와 웬만한 기본소득론자들이 하는 주장은 거의 다 일별하였음을 밝혔어야했나보다.
어찌되었건 금민 의장의 답변은 내게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함은 밝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