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적 양심과 정치인의 양심은 충돌하는가?
이 글 제목은 그 자체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학자적 양심이라는 것은 자신의 지식체계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일 수 있지만, 정치인의 양심이라는 건 지식체계만으로 획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충돌할래야 충돌할 수 없는, 애초부터 섞이기가 애매한 물과 기름같은 성격의 두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항상 문제가 되는 건, 학자이자 정치인이 학자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와 정치인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부딪칠 때이다. 학자가 자신의 지적 견해를 정치적 견해로 이어갈 수 있는 정치세력의 일원이 된다면야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학자가 자신의 지적체계를 배반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정치세력의 일원이 되면 이게 문제가 된다. 학자로서 자존을 세우기보다는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클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번 4월 총선에서 '진박'의 기수로 우뚝 선 정종섭 교수의 행보는 앞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어떤 실증사례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5월 24일자 각 언론에는 정종섭 교수당선자가 상시청문회를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성이 크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한다. 전에는 오히려 국회가 상시청문회를 하는 것이 국정감사확대보다 낫다는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하지만 일단 이 주장이 가지고 있는 논란의 소지는 차치하자.
정작 중요한 것은 법률안이 발의된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었을 때 어떤 효과가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입을 닫은 것이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는 이 법률안에 대하여 청와대가 꼼수를 피워서 무력화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 문제는 국회의원의 임기, 국회의원 임기만료로 인한 회기 중 법률안 폐기 등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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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국무회의로 넘어가는 시기가 이달 하순쯤으로 예상된다. 제19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5월 31일까지다. 문제는 현직 국호의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시간을 끌다가 제19대 국회가 해산된 후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떻게 되는가가 쟁점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률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는데, 이때쯤이면 제19대 국회는 이미 해체된 상태. 회기가 끝나면 회기 중 통과되지 않은 법률은 자동 폐기되는데, 제19대 국회는 회기가 종료되었고, 법률안은 제19대에서 발의 및 의결되었고, 그렇다면 이 법률안은 폐기되는 것인가 아니면 제20대가 이어가야 하는 것인가라는 절차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재의를 요구할 국회가 없어졌으므로 그 없어진 국회가 발의하고 의결했던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는 견해(폐기설)가 있다. 다른 쪽에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헌법의 명문규정이 없고,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해도 정부가 차후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경로가 있으므로 확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확정설)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종섭 교수당선자는 '사견'을 통해 "이미 국회가 의결하여 정부에 이송한 법률안이 폐기된다는 의미가 아니며"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가지더라도 이는 법률안의 폐기에 종국적인 영향을 줄 수 없는 저지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이 경우에는 "대통령은 반드시 법률을 공푸하여야 한다. 이런 경우에 대통령이 법률을 공포하지 않으면 탄핵사유가 되고 직무유기의 책임을 진다"라고 자신의 교과서에서 밝혀놓고 있다.
명백히 교과서에까지 명정한 자신의 학자적 견해에 대한 질문에 왜 침묵해야 했을까? '진박'으로서의 위상이라는 것이 기껏해봐야 1년여 밖에 유효기간을 갖지 못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