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이 노리는 건 보수정당의 지속적 균열, 그러나 맘처럼 될까?
박지원은 날이 갈수록 모사꾼의 기질을 발휘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 즉 자신의 말이 일정하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각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각자의 계산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영향력을 십분 발휘한다.
대표적으로 이런 거.
뉴시스 - 박지원 "박근혜 신병, 총선쯤에 풀리지 않을까"
더불어민주당이 죽을 쑤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죽죽 빠져나가는 상태에서 자유한국당은 '당사수파'였던 나경원을 원내대표로 앉혔다. 조만간 있을 당대표 선거 역시 이 기세대로라면 소위 '탄핵탈당파'들에겐 별로 좋을 일이 없을 듯하다. 원내외에 탄핵을 부정했던 세력이 자한당의 주축이 된다는 건 곧장 2020에서 이들을 중심으로 수구연합의 세력재편이 이루어지게 됨을 뜻한다.
문제는 이들 중에도 골수와 덜 골수가 있는 건데, 골수들은 당사수파고 뭐고 간에 박근혜 방탄에 소극적이었던 것들이 뭘 하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그 정체성을 통해 확보되는 무시못할 지지율을 자신들의 것으로 온전히 유지할 것을 원한다. 현재 스코어, 이들은 자리보전하고 있으면 자한당 이름으로 권토중래의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
박지원이 던진 메시지는 그래서 이들 친박에게도 어떤 사인이 될 수 있지만, 비박들에게도 모종의 신호가 된다. 거기 있음 다 죽는다, 그러니 나와라.
이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 한, 민평당도 웅치고 뛸 여지가 생긴다. 자한당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되면, 바미는 어쩔 수 없이 짐 싸서 각개약진해야 한다. 자한당으로 다시 기어들어갈 놈들은 기어들어가고, 그게 안 되겠다 싶으면 더민으로 가던가. 이건 민평에게 특히 박지원에게 별로 안 좋다. 자한 - 더민 양자구도가 강화되는 그림은 민평에게도 더민으로 합류해야 한다는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갈 때 가더라도, 뭐 먹을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가야 남는 것이 있지,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귀가하는 꼴이 되면 면이 서질 않는 거. 박지원의 입장에서 어차피 더민으로 가더라도, 내가 아쉬워서 가는 게 아니라 니들이 아쉬워서 간다거나, 나 어차피 니들하고 같이 안 해도 먹고는 산다는 표가 나야 체면이 구기질 않는다.
자한당이 저렇게 하나로 굴러가기보다는 친박이 나가든 비박이 나가든 18대와 19대에서 벌어진 공천학살이 또 발생해야 이래 저래 떡고물이 생긴다. 박지원은 그래서 떡밥을 던진다. 그것도 박근혜를 미끼로. 박지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운운하는 건 그냥 인사치레다. 박지원은 연동형 할 이유가 없다.
자한당에 있는 자들도 산전수전공중전에 우주전까지 시뮬레이션 해본 선수들인데 박지원이 한마디 했다고 홀랑 넘어가겠느냐만은. 그게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 중 귀얇은 자들이 있어 박지원이 던진 떡밥 물고 후두둑 하게 되는 거...를 염두에 두고 저런 말을 휙휙 던진다. 박지원은.
대단한 잔머리이긴 한데, 뭐 말대로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간에 저런 시나리오를 만들어 던질 수 있는 능력은 인정할만하다. 확실히 그림도 그려본 자가 그리는 법이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간에 저런 구라는 흥미를 끌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