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법을 뒤집자] 헌법 제8조의 문제
이전 포스팅에서 헌법 제8조를 잠깐 언급했는데, 이걸 좀 더 들여다보자.
애초 제헌 당시에는 헌법에 정당에 관한 개별규정을 따로 두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2차개헌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승만 정권에서는 한결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4.19 혁명 후 등장한 제3차 개헌에서 처음으로 정당에 대한 명문규정이 신설되었다. 당시 제13조 제2문은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단,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판결로써 그 정당의 해산을 명한다."라고 규정하였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들어선 장면정부는 잘 알다시피 박정희의 쿠데타에 의해 1년도 채 되지 않아 뒤집어지고 말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도당이 제5차 개헌을 하는데, 이때 비로소 현행 헌법과 같은 구조의 정당규정이 삽입된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선 정당관련 규정은 유신헌법과 전두환 쿠데타 헌법은 물론, 현행 87년 제9차 개헌헌법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행 헌법과 같은 형태의 규정을 헌법에 두고 있는 나라로는 독일과 프랑스를 들 수 있다. 독일연방헌법은 제21조에서 우리의 현행 헌법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정당을 규정하고 있다. 즉 제1항은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며, 그 설립은 자유이다. 정당의 내부질서는 민주주의적 원칙에 부합하여야 한다. 정당은 자금의 출처와 사용, 그리고 재산상황을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은 "목적이나 당원의 행동이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침해, 폐지하거나 또는 독일 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당은 위헌이다. 이에 대해서는 연방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용과 구조가 현행 헌법과 거의 유사하다.
한편 프랑스는 제4조 제1항에서 "정당 및 정치단체는 선거권의 행사에 협력한다. 정당 및 정치단체는 자유롭게 결성하고 활동한다. 정당 및 정치단체는 국민주권 및 민주주의의 원리를 존중한다."고 규정하며, 제3항에서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다원적 의사표명과 국가의 민주주의적 활동에 대한 정당 및 정치적 결사체의 공정한 참여를 보장한다."고 정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은 명시적으로 정당만이 아니라 정치단체(결사체) 역시 정당과 같은 수준의 보장과 보호를 천명한다. 특히 이에 따르면 정당 또는 정치단체(결사체)는 선거에 참여하는지 여부가 존재를 인정받는 결정적 계기가 됨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정당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으며, 미국 역시 정당에 대한 규정을 별도로 헌법에 두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제헌헌법이래 제2차 개헌까지 과거 한국헌법의 태도와 유사하다.
헌법에 규정을 두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당이 설치될 수 있는지 여부가 갈리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규정이 있건 없건 오늘날 민주주의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는 정당의 설립과 활동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 헌법 상 정당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어왔다. 정당이 국가의 기관이냐 아니면 단순한 사적 결사체냐의 논의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두 가지 견해는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두 가지 성격이 모두 일정하게 반영된 정치적 의사형성의 매개 혹은 중개적 집단이라는 성격규정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러한 입장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1996.3.28. 96헌마18,37,64,66(병합))
아놔... 어쩌다 이렇게 설명만 가득한 포스팅이 되고 있는 건가... 여튼 간에, 현행 헌법 제8조는 구체적으로 정당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까먹을까 걱정이니 다시 한 번 규정을 살펴보자.
제8조 ①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②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③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④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헌법의 규정치고는 매우 상세하다. 정당의 설립목적의 한계, 조직활동의 전제, 국가의 (자금)지원, 한계를 초월한(즉 위헌적인 활동을 한) 정당의 해산까지 상세히 정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애초 박정희가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찬탈하면서 왜 이런 규정을 만들었을까? 87년 헌법이 해당 규정의 구조를 그대로 계수할 때, 과연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구상했던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까? 왜 군사쿠데타로 만들어놓은 규정이 민주화 이후 만든 헌법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