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티셔츠

나는 방탄소년단(BTS)이 누군지 모른다.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 적도 없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노래나 춤추는 모습을 광고 같은데서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광고를 보았더라도 BTS인지 어떤지 알 도리가 없다.

전 세계가 이들에게 열광한단다. 세계일주를 하며 공연을 하고, 소위 '한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단다. 빌보드를 석권했다는 것이 뉴스에도 나올 정도다. 이들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이들의 이름과 노래를 줄줄이 꿰고 있으며, 초등학교 4~5학년 된 항렬 끝물의 조카들이 BTS 공연을 보여달라며 삥을 뜯을 정도이므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으며 앞으로도 관심을 가질 생각은 없다. 어느날 문득 귓가에 들리는 어떤 노래에 충격을 먹고, 도대체 이 노래를 누가 부른 것이냐 궁금하여 파헤치다보니 그게 BTS였다면 그 때부터 좋아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예의 그 선배나 조카들이 이건 꼭 들어봐야 한다며 BTS를 강권하는 지금도 나는 그 강권에 오히려 불쾌할 지경이다.

이 아이돌 그룹 멤버 중 누군가가 원폭장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었다보다. 그것 때문에 말이 많다. 국내에서는 이들이 애국을 했네 하는 입장의 사람들과 원폭이 다 뭐냐며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 간에 공방이 한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때는 이때다하고 반한 및 혐한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기세를 올리는가 하면, 이런 걸로 국뽕 마케팅을 하냐며 우익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저 원폭 티셔츠는 대단히 큰 문제라고 보는데, 이건 국뽕의 문제로 비하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우선 원폭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는가를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원폭이 해방을 가져온 것도 아니라는 사실, 원폭을 투하하지 않았어도 일본은 패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는 항복을 깔끔하게 할 방법을 고민하던 와중이었다는 사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쓰잘데기 없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자들을 비난하는 입장이라면, 쓰잘데기 없이 원폭을 터뜨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행위를 긍정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건, 저 원폭 티셔츠는 애국의 표상이 아니라 그냥 촌티의 표상이며, 더 나가 그 촌스러움으로 인해 주객을 전도시켜버린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원폭의 함정은 일본을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아니라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폭은 일본이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알리바이가 되었고, '보통국가'로 포장된 군비증강 요구를 꾸준하게 뒷받침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어왔다. 끊임없이 피해자가 되려 하는 저들의 노력에 왜 도움을 주는 걸까?

이번 사건은 그렇다. 촌스럽고 생각이 없다. BTS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높이고 이를 통해 시장성을 확장하려는 노이즈마케팅으로 이 사달을 벌인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랬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버섯구름 아래 죽어간 사람들과, 살아 남았지만 죽는 것보다 못한 여생을 보낸 사람들이 있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8/11/13 00:11 2018/11/13 00:1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