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띄우고 서영교 지우고

난 처음엔 이 문제가 헤프닝 정도로 지나가지 않겠나 생각했다. 사건을 안일하게 바라보는 게으른 자의 시각적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하면 당사자가 아, 투기는 아니고 선의로 한 건데 이게 문제가 되면 쏘리고, 차후 목포의 발전을 위하여 사회환원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으며, 내친 김에 국회에서 좋은 대안을 법률로 만들도록 해보겠다, 뭐 이렇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목포 구도심에 그렇게 여러 채의 건물을 직접 매입하거나 매입토록 유도한 이유가 그토록 선의에서 출발한 거라면 말이다.

땅 투기 한 번쯤 하지 않은 고위공직자가 거의 없는 한국의 공직윤리에 비추어볼 때 손혜원의 행위는 그 부류 인사들의 벌인 사건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안은 아주 심각하게 번지는 것으로 보인다. 손혜원은 벼랑끝 전술을 채택했으며, SBS를 비롯한 사회악인 '기레기'들과 일기당천으로 정면대결 하는 위치에 자신을 올려 놓았고, "전 재산과 손모가지 하나"를 거는 것에 비견할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판을 키운다. 이젠 전쟁이다!

거듭, 난 애초 이 사건을 그리 크게 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서영교의 재판청탁 사건이 일파만파가 되지 않을까 했고,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손혜원의 구도심 투기/투자 건은 정권에 영향을 미칠만큼 파장이 커져버렸고, 반면 서영교 건은 수면 밑으로 잠수한다. 당연하게도, 아마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될 것이고, 사법농단은 이제 법정의 절차적 문제로 전환되면서 외곽의 투쟁동력은 사그라들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불을 질러야 할 국회가 오히려 이 문제에 침묵하게 될 가능성은 커지면서 서영교 건은 유야무야 흘러갈 위험이 높아진다.

손혜원은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서, 특히 문광위의 간사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 손혜원은 이 '이익상충'의 원리문제를 회피하면서 SBS가 대표하는 '기레기'와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토건세력들의 문제로 물타기를 한다. 이러한 태도 역시 문제적이다. 여기서 물타기에 성공하게 되면, 즉 사건의 추이가 토건세력과 문화유산 지킴이 간의 대립으로 구획되면 앞으로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은 직업윤리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면서 손혜원과 같은 투기/투자를 해도 된다.

왜 손혜원이기에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지는지는 그의 국회의원이라는 직을 다른 직으로 바꾸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목포시의원 중 문화담당하는 위원회의 위원이 목포시의 문화조례를 바꿔 구도심 고건물들의 가치를 높이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거나 취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자비를 들여 건물을 대량 매입하고 다른 이들을 부추겨 같은 일을 하게 하고 급기야 차명으로까지 건물을 사들였는데 이게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고 가정해보라. 별도의 설명이 없더라도, 이 경우 당사자는 손혜원처럼 기자회견을 하기는커녕 아마 온 사방에서 돌팔매를 맞게 될 거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게 정쟁의 대상이 될 정도로 파급력이 높은 동시에 진영에 따라 입장을 가르기 쉬운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종국에는 파장의 크기와 관계없이 최소한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여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영교 건은 그게 그렇지 않다는데서 손혜원 건과 차이를 가진다. 서영교 건은 작금 사회적 문제가 된 사법농단의 한 부분이며, 더구나 3권 분립의 두 축인 의회와 법원이 고돌이를 짜고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즉 분립해 위치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 두 축이 견제와 균형은커녕 한 몸이 되어 귀족정의 폐단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데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 야합이 손혜원 건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여야가 다르지 않고, 사건의 추이가 단지 서영교 개인의 문제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음모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국 서영교 건은 지우고 손혜원 건이 커지는 건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손해는 아니다. 게다가 손혜원은 탈당을 했고, 정치적 칼부림을 나경원에서 박지원으로 확대함에 따라 더민당이 별달리 신경을 쓸 일도 없어졌다. 서영교 건은 더민당이나 자한당이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므로 애초에 불씨가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자한당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손혜원 건 키워서 서영교 건은 물론 다른 건까지 다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싶을테니 나경원 선봉에 서서 손혜원 약올리는 짓을 계속 할 것이고.

이거 뭐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는 통에 사법농단사건도 일단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개혁은 그냥 다 물 건너갈 것으로 보이고, 그 틈에 각종 노동사안, 예를 들면 김용균 사망으로 불거진 비정규직 문제라든가 ILO 협약 가입 문제라든가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의 참여 문제라든가 하는 문제들은 아예 쑥 들어갔다. 이러다가 내달 북미 2차 정상회담이라도 가동하게 되면 뭐 개혁사안이고 뭐고 다 공중에 붕 떠버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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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11:03 2019/01/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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