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예산

요새 누가 쪽지로 예산 들이미나? 다 문자나 카톡으로 하지. 이제 카톡예산이나 문자 예산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긴 뭐 이름 바꾼들 그 본질이 어디 가겠냐만.

연말 예산편성할 때면 항상 나오는 말이 이 쪽지예산이다. 이번에 손혜원 건에도 또다시 쪽지예산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에 원래 예산이 없었는데 손혜원이 밀어 넣어 예산에 반영된 거 아니냐는 거다.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 한국당이 꺼낸 '손혜원 쪽지예산'의혹, 박지원이 일축

긴가민가하는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아마도 이 문제는 별다른 반향을 못일으킬 것인데, 규모 자체가 작은 건 둘째치고 박지원의 말처럼 근거없이 배정된 예산도 아니다. 이 문제가 더 커지지 않을 결정적 이유는, 아니 뭐 쪽지예산 그거 손혜원만 한 것도 아니고, 따져보면 여야 막론하고, 하다못해 진보정당도 별반 자유로울 수 없을 문제이기에, 동업정신이 어떤 직종보다도 투철한 국회의원들이 이 건을 가지고 시끌벅적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쪽지예산 운운하면 이걸 되려 지역구에 신경 쓴 표지로 내세우는 지역구의원들이 쎄고 쎘다. 지역주민 여러분~! 제가 이렇게 지역을 위해 애 쓰고 있어요~! 꼭 기억했다가 다음번에도 절 꼬~옥X3 찍어주셔야 해요~! 이 근거라는 거. 손혜원 이야기가 나오니 당장 박지원을 비롯한 평민당에서 아녀, 그거 우리가 한겨! 이러고 나선다.

관련기사: JTBC - 한국당 '쪽지예산' 비난에 ... 반발한 평화당 의원들, 왜?

기실 이런 기사가 나가면 해당 의원들은 쪽팔려야 하는 게 원칙이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대표이지 지역의 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 제46조 ②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국가이익을 우선하라고 명정한다. 그래서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취해서도 안 되고, 타인의 사익을 도모하는데 도움을 줘서도 안 되며, 자기 지역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가전체의 균형적 이익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뭐 그따위 거 개나 줘버리...

헌법에 따르면, 다음선거 당선을 위해 지역 유권자들에게 침바를 목적으로 쪽지예산 들이미는 거, 이거 하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할 수 있으면 하려고 하고, 그거 할려고 당의 실세가 되려 노력하거나 예결위에 들어가려고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것도 안 되면 예결위 의원하고 아삼륙이 되기 위해 애쓰거나.

최근의 예만 살펴봐도 쪽지예산이 얼마나 먹혔냐를 보면 누가 오늘날 이 땅 정치의 실세인지, 혹은 예결위에 대충 누가들어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019년 예산편성과정에서 SOC 예산은 국회심의과정에서 정부안보다 대폭 증액됐다. 정부가18조 5천억을 제출했는데 국회가 여기에 1조3천억을 추가한 것이다. 왜? 지역 쪽지예산 덕분에.

당장 국회의장인 문희상이 지역구에 수십억을 가져갔다. 예를 들자면 애초 정부안에는 아예 없던 망월사역 시설개선 예산이 졸지에 15억원 책정되기도 했다. 이해찬 더민당대표는 세종시에 몇백억을 땡겼다. 윤호중 더민당 사무총장도 대규모 예산 몰아가고. 자한당이라고 빠질 수가 없다. 김성태 원내대표, 안상수 예결위원장 등 역시 짭잘하게 지역구로 예산을 끌어갔다.

2018년 예산편성이 있었던 2017년 연말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 거 없었다. 당시 예결위원장이던 더민당 백재현 의원은 지역구인 광명으로 예산을 꽂았고, 간사였던 윤후덕 역시 지역구인 파주로 상당액을 끌어갔다. 자한당 예결위 간사 김도읍은 부산지역에 예산을 꽂았고, 당시 국민의당 황주홍 간사 역시 마찬가지로 지역에 예산을 끌고갔다.

이러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애초 정부안에는 없거나 소액이었던 것을 신설하거나 증액하였다는 것. 누가? 실세와 예결위 의원들이. 어떻게? 쪽지 꽂아서 지들끼리 그거 가지고 소소위 열어 나눠먹기로. 다 알려졌다시피, 이놈의 소소위(小小委)라는 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게 되어있다. 회의록도 없고, 뭘 어떻게 심의하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이렇게 쪽지가 오고가고, 알람이나 진동이 울리면 문자나 카톡을 확인해서 실세의 쪽지, 예결위원의 쪽지, 뭐 이렇게 저렇게 자기 이해와 맞아 떨어지는 쪽지의 내용을 예산으로 올린다. 어떤 이해? 뭐가 있겠어? 다음번 지역구 표다지기 좋은 이해지.

이렇게 지들끼리 나눠먹은 예산은 국민혈세이니 당연히 비판이 대두된다. 따라서 상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쪽지예산처리는 쪽팔려서라도 쉬쉬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쪽지예산으로 예산 따오게 되면 이걸 무슨 실적 자랑하듯 떠들고 설친다. 내가 말야, 막판까지 애써서 우리 지역에 돈 끌어왔단 말이야. 뭐 이런 생색내기로 쓰이기도 하고.

관련기사: 미디어오늘 - "쪽지예산 비판에도 홍보돼서 좋아해"

사정이 이러니 손혜원 건에 쪽지예산의 문제가 낑궈져 있다고 한들, 이게 뭐 정치적 사안으로 크게 커질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비례성 강화 역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편 중 하나가 될 거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도 이젠 물 거너 가는 분위기니 다 글렀다고 해야 하나.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01/22 10:51 2019/01/22 10:51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