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만두...

차례와 제사를 폐하기로 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인지라, 어쩐지 시간이 많이 남아 돈다는 느낌이다. 실제로는 뭐 어떤지 모르겠지만서두. 아무튼 그렇긴 한데, 이게 물경 반세기(!)만에 처음 있는 일인지라, 왜 그런 거 있잖아? 맨날 하던 짓을 갑자기 안 하게 되면 뭔가 허전하고 아쉽고 막 그런거.

그래서 만두를 빚기로 했다. 이게 참 만두라는 건 김밥하고 마찬가지로 만들어놓는 족족 먹어치우게 되는 신비한 음식이다. 새우깡도 아닌데 어째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가 않으니... 암튼 만두와 김밥은 인간을 돼지로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한 자리씩을 차지한다.

예전에 만두를 빚을 때는, 기본적으로 이게 차례상에 올릴 것이다보니 오신채 등을 쓰지 못했다. 향신료도 쓰면 안 된다고 들었고. 그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른들은 하여튼 이 이승을 떠나 육체를 가지지 못한 존재가 되면 향신채를 못먹게 된다고 생각한 듯. 어쩌면 이게 절간의 문화가 스민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지간에, 아니 이런 오신채고 향신료고 안 쓰면 그게 뭔 맛이여...

생각해보니까 좀 이상한 게, 설날 먹는 만두는 주로 김장의 중간점검과 재고정리 수준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더랬다. 옛날 우리 시골에, 겨울에는 김치와 시래기밖에는 먹을 게 없던 때, 보통 우리 시골은 10월 말이면 동네 김장이 거의 다 끝나곤 했는데, 이때부터 이듬해 3~4월까지는 그 김장김치를 먹어야 했다. 식구들은 또 좀 많나? 거기에 대처 나가 사는 자식들 집에도 얼마씩 보내야 하고. 그러니 한 번 김장 담글 때 배추 800~1000포기는 예사였는데, 이게 들인 배추 절인 배추 쌓아놓은 걸 보면 그 당시엔 어려서 더 그랬겠지만 무슨 성벽을 쌓아놓은 듯...

그래 그렇게 담근 김장이 설날때 쯤이면 어느 정도 동이 나는데, 이 때 재고가 많으면 만두 속에 김치가 더 많이 들어가고 재고가 부족하다싶으면 만두 속에 김치가 덜 들어가고 뭐 그런 의미도 있었다는 거지. 만두는 차례 지내러 귀성한 집안 식구들까지 죄다 먹어야 하고 세배 드리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도 국한그릇씩은 퍼줘야 하니 통상 몇 백개를 만드는 건 보통인데, 이게 다 김치만두다. 김치만두 외에 다른 만두를 만든다는 건 상상을 할 수가 없었는데, 아니 만두 한 두개 취미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만두를 만드는데 종류를 달리하면, 그렇지않아도 차례상 준비하느라 뼈가 빠지는 입장에서 이게 뭔 개뼉다구같은 수작이여, 힘들어 죽겄는데...

암튼 그렇게 김장김치를 만두 속으로 쓰는데, 그런데 어차피 김장 담글 때 여기에 마늘이며 파며 뭐 오신채 향신료 다 들어가지 않더나? 그렇다면 절간의 습속에 세속으로 스며들고 자시고는 개뿔이고, 애초에 오신채고 향신료고 간에 아까워서 아낄라고 그랬던 것인가... 모를 일이로다...

옛날엔 그랬다치고, 이제 차례에 올릴 음식이 아니니 우리 입맛에 맞는 만두를 빚도록 하세! 이걸 모토로 삼고 만두제작에 진입. 그리하여 이번 만두는 고기만두, 새우만두, 김치만두라는 고전적 만두 3종 세트를 만드는 것으로 하여 각종 속 재료를 준비하고 속을 만들었다. 아우, 이거 밑처리 하는데만 시간이 제법 걸리누만... 만두피는 시간관계상 공산품을 사서 하는 것으루다가.

제작과정 생략.

만든 만두는 일단 찌는 것이 원칙. 그래서 쪘는데, 아뿔사... 만두스킨이 죄다 터지는구나... 이런 안타까운 일이... 만두피가 살아 있는 만두는 그동안 만들어왔던 어떤 만두보다도 육즙이 살아있고 속이 보들보들하며 피와 속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피가 터진 만두들은 육즙이 죄다 흘러내리고 그러다보니 속이 퍼석해지고 피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아우... 속터져...

이번 만두제작과정에서 발견된 문제는 첫째, 만두피를 우짤 것인가? 예전에 쓰던 만두피가 어떤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부실공사가 30% 이상 되는 일은 없었던듯. 그렇다고 시중 판매되는 모든 만두피를 전수조사하기엔 버겁고, 만들어 쓰자니 역시 귀찮고...

둘째, 찜기가 필요해... 만두피의 문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찜기가 없으니 냄비에 실리콘 찜판깔고 대충 쪘던 것도 문제가 있는 듯. 일년에 한 번 만두를 찌기 위해 전용찜기세트를 갖추어야 할지에 대해선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험...

셋째, 잘 만들어진 성공작도 겉보기가 좀 거시기 하다. 보기 좋은 만두가 먹기도 좋다던데... 아무리 노력해봐도 만두집에서 만드는 만두의 겉보기 등급에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후줄근한 만두의 외관은 노력에 비해 많은 아쉬움을 준다. 이건 전적으로 제작자의 기술적 한계일 듯.

그리하여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그냥 요리학원을 다녀볼까? 한식요리학원. 만두도 만들어 보고. 암튼 그런 대안에 대해 조까 생각을 해보다가, 이게 또 만두피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귀찮은 것이어서 생각을 중단하기로. 만들어놓은 만두나 맛있게 잘 먹어야겠다. 어차피 뭐 접대용으로 내놓을 것도 아니고, 내 뱃속에 들어갈 건데. 

암튼 만두 200개 만드는데 장보는 시간 재료준비시간과 빚고 찌는 시간 다 합치니 얼추 하루가 소요되었다. 백수니까 할 수 있는 짓이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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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13:17 2019/01/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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