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을 둘러싼 '해석'의 다양성

자유한국당이 2월 8일 국회에서 지만원을 불러놓고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를 개최했다. 지만원은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연단에 올랐고,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전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장내는 지만원의 주장을 믿는, 아니 믿고싶어 하는 머리 허연 자들로 가득 채워졌고, 이들 앞에서 현직 국회의원과 원내대변인들은 광주민주항쟁을 폭동으로, 광주민주항쟁의 희생자들을 괴물로 전락시켰다. 이 공청회장 안은 단 한 명의 빨갱이도 용납하지 않는 적색분자 청정무구 지역이 되었다.

광주민주항쟁을 북한 특수부대의 국지전으로 전락시켰다가 법원에서 철퇴를 맞고 현금인출기 신세가 된 지만원의 망상형 발언도 그렇고, 여기에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도대체 정신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으로 광주를 모독하다보니 비난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유한국당이 썩어빠진 꼴통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는 게 있는 건데, 이걸 넘는 건 물론이고 아예 선을 지워버리려 했으니 자유한국당 자체가 지워져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도래할 판이다.

결국 나경원 대표가 나서서 당일 지만원의 발언이나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엇다. 광주 시민의 희생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헌신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경원은 여기에 한 마디를 더 얹었는데,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지만원의 발언을 두고 나경원이 다양한 해석을 운운한 건 의미심장하다. 요컨대 나경원의 입장에서 지만원의 주장은 사건에 대한 평가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수업시간 내내 졸지만 않은 사람이라면 지만원의 주장같은 것은 '해석'이 아니라 '왜곡'이라고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지만원의 주장은 사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경원이 사실은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는 구글신을 영접한 후 온라인의 바다를 헤메며 그동안 세계 각처에서 발견된 외계인이라고 추정되는 어떤 생명체의 사진을 수집한 후, 그 사진에 찍힌 외계인의 외관과 나경원의 외모를 비교 분석하면서 나경원이 외계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성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귓바퀴'의 모양이나, 외계인이 상대에게 뇌파를 전달하거나 최면을 걸려고 할 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눈매'가 일치한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들이밀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접하게 된 나경원은 아마 비웃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나경원이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존재를 상정하여 그에게 나경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왜곡'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위하여 동원된 각종 '증거'들은 기실 증거가 될 수 없는 것들이며, 따라서 '과학적'인 검증이 될 여지가 애초부터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을 접하게 된 나경원은 이를 '해석'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망상의 문제로 치부하게 된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므로 지만원의 발언을 해석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나경원의 발언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 발언을 나경원이 했기 때문이다. 나경원이 누구인가? 현직 국회의원이자 전직 판사다. 판사가 어떤 직업인가? '해석'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분석능력이 탁월해야 하며, 법을 '해석'해서 사실관계에 적용하는 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판사다. 이 어려운 직업을 나경원이 가졌었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경원은 현직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어떤 직업인가? 이 역시 '해석'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다. 사회의 실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가 나갈 길을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일이 정치인의 업무다. 이를 위해 정치인은 현재의 시스템을 '분석'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어려운 직업이 정치인인데, 나경원은 무려 현재도 이런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역시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직업들에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나경원이 '해석'과 '왜곡'을 혼동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어떤 이는 사실 지금 언론에 비춰지고 있는 나경원은 실제 나경원이 아니라 나경원을 흉내내고 있는 나경원의 짝퉁 너경원이며, 진짜 나경원은 행방불명상태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경원의 프로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나경원의 수준과 현재 언론에 비춰지고 있는 나경원의 수준이 이렇게 차이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제시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일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나경원이 아닌 너경원은 분명 해석의 다양성을 운운하며 이 주장을 폐기하자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해석'이라고 볼 수 없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재 '너경원'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비중있게 고려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따라갈 만큼 정신이 혼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식수준의 국민들은 학창시절과 사법연수원 시절, 판사시절과 정치인 시절을 경유하면서 '해석'에 대한 지독한 훈련을 받았을 나경원이 해석과 왜곡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나경원 개인의 장래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이런 수준 미달의 정치인들 때문에 정치혐오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사태로 인하여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상황에서 나경원의 행보는 그나마 사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접게 만들 수도 있다. '해석'과 '왜곡'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법대에 앉아 재판을 해왔다는 건 사법부의 수준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물론 사법부 안에는 훌륭한 판사들이 많이 있겠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수준의 사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게다.

나경원이 '해석'과 '왜곡'을 구분할 능력이 아예 없는 자인지 아니면 그 능력이 있으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아전인수,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자인지 여부른 검토를 필요로 하는 문제이지만, 어느쪽이든 간에 문제는 심각하다.

'해석'과 '왜곡'을 구분할 능력도 되지 않는 자가 판사도 하고 정치인도 한다는 건 한국사회가 아주 후진 사회라는 걸 의미한다. 그를 훈련시킨 교육도 후졌고 그를 뽑아준 시스템도 후졌다는 거다. 그리고 이 후진 시스템에 의하여 고위직에 오른 자가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제 위치를 향유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이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감추고 제 이해관계에 따라 모른척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한국사회가 후진 사회라는 건 변함이 없다. 똑똑하기 이를데 없다고 자부하는 자가 얼마나 대중들을 우습게 봤으면 이따위 짓을 서슴없이 하겠는가? 이건 대중을 밥으로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이렇게 대중을 졸로 아는 자가 국회의원은 물론 제1야당의 원내대표까지 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별로 놀라는 거 같지가 않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졸로 보는 건 자유당때만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사회의 후진성은 자유당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고. 아, 그래서 지금 제1야당이 자유한국당이구나...

나경원은 지만원의 주장과 이에 동조한 자당 의원들의 발언이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경원의 발언이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지만원 등의 주장이 실은 자유한국당의 공식입장이고 나경원의 발언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해석'의 다양성을 나경원식으로 '해석'하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본 나경원은 당장 자신의 발언을 왜곡하지 말라고 항변할 것이다. 이럴때만 그의 두뇌가 상식적으로 회전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처럼 '해석'과 '왜곡'을 혼동함으로써 발생하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경원은 더 늦기 전에 이번 사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발언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근본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얼마나 많은 '해석'이 난무하고, '해석'까리 충돌하고 싸우고 해서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게 되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기술은 나경원 외에는 소지하고 있는 자가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나경원이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 즉 나경원이 사실은 외계인, 또는 나경원이 사실은 너경원 같은 '해석'들을 듣더라도 이를 다양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그래야만이 나경원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나경원이 이런 말들을 혹시 들은 후, 사실관계를 '왜곡'했다고 발끈하거나 명예훼손이니 모욕이니 하며 노여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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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0 10:31 2019/02/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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