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 결과를 보며 잡상
보궐선거의 결과가 나왔다. 국회의원 2석의 미니보궐이었다고는 하지만, 경남의 정치지형을 살펴보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표분석까지는 뭐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도 귀찮으니 때려치고, 각 정당의 표정만 가지고 좀 보자면.
더민은 간발의 차이로 체면을 구기진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경남에서, 더 나가 PK에서 지난 대선 및 지선 때 거뒀던 만큼의 성과는 이제 글렀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원래 그 동네가 그런 건데 이번에 그나마 통영 같은 곳에서 가능성을 본 거 아니냐고 딸딸이를 칠 수도 있겠다.
실제 그런 자도 있나보더라. 아직 정신 못차렸다고 하기엔 원래 정신머리가 없는 거라고 봐야할 입장이다. 지난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통영시장과 고성군수는 더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런 동네에서 이번에 당선자보다 겨우 절반 남짓 득표한 걸로 성과 운운하는 건 좀 민망치 않나? 원래 그 동네가 자한당 텃밭이라는 주장이 무용한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과 지선에서 가능성을 봤니 어쩌니 설레발을 치더니만 꼴랑 이꼴이라는 건 좀 심각하다.
더구나 창원성산에서 후보랍시고 끌어 앉혔던 자의 면면을 보라. 거제시에서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으로 도의원, 시장을 연거푸 하던 자다. 조폭동원 정적제거 의혹 등 거제에서 상당한 물의를 일으킨 바 있고, 거제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더민당 입당 때는 그런 이유들로 인해 입당절차가 꼬였던 자다. 그런 자를 후보랍시고 올려놓는 더민당 수준인데, 창원성산 주민들이 핫바지도 아니고.
지방에서 치뤄지는 보궐선거라고는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라는 건 중앙의 바람을 많이 탄다. 기실 요 사이 정국에서 중앙정치의 난맥으로 인해 더민의 밑장이 빠지는 일이 좀 있었다. 하지만 지역의 인심이라는 걸 우습게 아는 한, 게다가 경남에서 PK에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한 반짝 호황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한다.
자한당은 다른 건 몰라도 철벽의 30%를 굳히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이 축구장을 털고, 오세훈이 망발폭죽을 터뜨렸는데, 내가 볼 때 이러한 짓거리들은 반대진영으로부터 아낌없는 욕을 먹더라도 자신들의 바닥을 다지는 효과를 봤다. 이들이 뭐 언제 윤리고 도덕이고 예의고 염치고 철학이고 이념이고가 있었나? 오로지 지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옹벽을 만드는 데 집착하는 자들인데, 그런 수준의 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옛날 텃밭의 잠재력을 재확인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망해도 그냥 망하진 않을 거라는 거. 자한당의 자신감이 붙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수도권에서 호남에서 종을 쳐도 괜찮다.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줬고, 영남은 여전히 내 거라는 걸 확인했고, 조만간 바른당 깨지고 나면 얼추 대강 보수 재편은 될 거고, 그러면 TK 역시 지금도 여전히 내 거지만 확실하게 나와바리 굳히는 거고.
2020에서 자한당 폭망의 대하사극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건 그냥 망상이고, 이제부터 더 치졸하면서도 더 강력하게 30% 굳히기와 수구저변확대를 기할 자한당은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망하긴 커녕 더 흥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민평이나 바른은 관심대상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자. 손가락도 아프고. 어차피 저 당들 오래 못 버틴다. 바른은 조만간 확실하게 분해될 거고, 민평은 총선직전까진 버티더라도 총선 이후에 답 없다. 아무튼 그렇고. 애국당? 기냥 이것도 넘어가고.
정의당이 관건인데, 정의당은 어쨌든 실속은 챙겼다고 본다. 그런데 그 실속이 진보좌파의 독자세력화라는 오래된 진보정당운동의 목적의식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중도보수 거대정당의 곁가지가 되어야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킨 것이 이번 보궐선거다.
김종대가 또 입 잘못 놀려서 민평과 교섭단체 꾸리는 게 삐걱거리게 생겼다만, 교섭단체 꾸리더라도 시한부다. 2020년 총선까진 교부금때문에 어거지로 묶여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거기까지다. 창원성산에서 그나마 더민이 손 털어줬으니 겨우 당선까지 된 거지 그거마저 없었으면 노회찬 정신이고 뭐고 그냥 공허할 뻔했다.
더 문제는 확장성이 없다는 거. 창원성산에서 겨우 회생했다고는 하나 영남진보벨트는 이미 붕괴되었고, 심상정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국단위에서 먹힐만한 정치인이 없다. 앞으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맘대로 된다면야 뭔 걱정이 있겠나?
이번 보궐 지나면서 느낀 건데, 노동중심 진보정치의 재구성과 진보진영 통합정당추진 노선은 이제 손 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의당과 민중당의 알력이 선거 끝났다고 다시 히죽거리면서 손잡을 상황을 넘어선 듯 보이고, 까놓고 인물이나 정책이나 합쳐봐야 뭐 별 시너지가 기대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거 이런 수준에서 합쳤다가는 몇 년 안 가 또 2008년짝 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진보정당의 인적, 물적 토대가 되어야 할 조직단위들은 이제 그냥 자기 조직관리하기도 벅찰 듯. 민노총 100만 조합원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그 조합원들이 노동계급으로 각성할 수 있도록 도움줘야 할 민노총이나 운동조직들이 별로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경마장 중계방송용 선거평가는 여기서 끝내고, 아유, 걍 손가락이 아프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이 명확히 서진 않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걸 손절해야겠다. 지금까지 매달리고 구상했던 어떤 것들은 아깝지만 이제 소용 없다는 걸 확인했다. 이번 보궐은 그런 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겨준 선거였다.
진짜로 이젠 내 청춘의 한 시대와 완전하게 결별해야만 한다. 아깝고 서럽지만 그래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