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걸 아니까 하는 패스트트랙

이상돈 의원의 견해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 아, 이러면 뭐 결국 행인도 수구반동편이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만, 어차피 이 블로그야 내 일기장이니 별로 볼 사람도 없겠고. 아무튼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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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 정권이 들어설 때, 촛불의 염원을 받들겠다고 해놨으니 촛불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다 거둬서 자신의 책무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엔 당연히 검찰개혁도 끼어 있었고. 검찰개혁은 모르긴 해도 그저 촛불의 염원 운운하는 수준에서 받아안은 책무 정도가 아니었을 터.

기본적으로 검찰개혁이라는 건 무릇 역대 어느 정권도 단 한 순간 빼먹은 적이 없는 개혁과제였다. 그러니 당연히 순위 안에 들어갈 개혁과제가 되었을 터. 게다가 이 정권은 검찰에 대한 지극히 정치적이면서 개인적인 해결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검찰의 횡포 속에 전 대통령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구원이 있는 상황이다.

촛불은 물론이려니와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대다수의 한국사람이라면 그래서 이 정권이 검찰개혁만큼은 좀 밀도있게 진척시키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기 조각을 하면서 현 정권은 박상기 교수를 법무부장관에 앉혔다. 학계에 있을 때부터 검찰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인데다가 DJ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연거푸 검찰개혁의 자문을 역임했다. 현 정권 초대 검찰총장인 문무일 역시 검찰개혁을 위한 실무차원의 배치라고 여겨질법 했다. 조직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법무부와 무난하게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었다. 더구나 청와대에는 조국을 들여놓았다. 조국은 일찌감치부터 검찰개혁에 대해 많은 안을 내던 사람이었던데다가 학자로서는 드물게 대중적 인기도 갖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깡다구 있고 저돌적인 한인섭 교수를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많은 개혁안들을 내놓으니 뭔가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꽤나 진진하게 높아졌던 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2018년 7월에 문재인 정부 1기 검찰개혁위원회의 임기가 종료한 후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1기가 임기 중 제시한 권고안 들 중 일부가 반영되는 듯 했으나 조만간 유야무야 되었고, 기실 이 때부터 검찰개혁은 뒷심을 받지 못한 채 부유했다.

그런데 이제 공수처 법안이 그것도 이리저리 짜깁기 된 채로 패스트트랙을 타게 된다. 물론 바미당이 오늘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바미당은 기실 이거 그냥 대충 마지못해 승락해주는 입장만 취해도 본전이다. 이상돈 의원의 말처럼 어차피 안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더구나 되건 말건 결과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 내용이 그지같으니까. 더군다나 검찰개혁하고는 큰 관련이 없으니까.

이 마당에 조국은 페이스북에다가 아쉽지만 합의안에 찬동한다는 글을 올렸다. "법학은 이론의 체계이지만 법률은 정치의 산물"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론과는 차이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현재의 안이 검, 경, 법원의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과 함께. 그러면서 한 마디 더 재밌는 말을 남겼다. "온전한 공수처 실현을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겠지만, 일단 첫 단추를 꿰고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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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설치된 공수처는 과거 사직동팀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사직동팀과 다른 점이라면, 사직동팀이 초창기 휘둘렀던 강력한 권한 따위는 아마 거의 누려보지도 못할 것이라는 점이고. 아마도 출범 후 몇 년 간 존치여부에 대한 논란과 확대강화의 논의로 우왕좌왕 하다가 빠르면 5년 내, 늦으면 10년 내에 아예 해체되거나 이름만 남고 다른 열할을 할 수도 있다. 현재의 검찰조직을 그대로 둔다면 아마도 공수처는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뇌사상태에 빠질 것이고.

가장 거시기한 시나리오는, 공수처가 사직동팀처럼 정권보위차원에서 운용됨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마위에 오르다가 결국 여야 합의로 사라지는 거다. 왜 이런 시나리오가 자꾸 떠오를까? 그건 조국이 말한 바, "일단 첫 단추를 꿰고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의미 있다"는 "이론의 체계" 수준에서 판단한 정치는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돈 안 드는 정치를 하겠다며 만들어낸 '오세훈 법'이 되려 돈 있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위치만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거나,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표로 설립된 로스쿨이 기존 사법고시제도의 파행을 형태만 달리하여 반복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 처음 시행될 당시, 이래 저래 누더기가 되어서 애초 설계와는 달리 온전한 형태로 출발하지는 못했으나 첫 단추를 꿰고 첫 발걸음을 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정치의 산물"로서 인정한다던 "이론의 체계"를 만든 법학자들의 박수를 받았었더랬다. 지금은 어떤가? 그들 법학자들은 자신들은 "이론의 체계"만을 이야기했을 뿐 "정치의 산물"을 만든 건 정치인들이라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조국도 마찬가지.

자, 뭐 그러하니, 그렇다치고, 아무튼 중요한 건 이상돈 의원의 분석처럼, 이거 330일 이후 처리되는 것도 요원하고, 설령 처리된다고 한들 개혁적 의미도 그다지 없다. 이상돈 의원은 기간 때문에 처리의 곤란이 생긴다고 하지만, 기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건 정치적 역관계때문인데, 저 안들이 패스트트랙을 태웠음에도 처리되기 어려운 건 기간의 한계보다는 바미당과 민평당이 선거 전에 어떤 처지에 처하게 될 것인지의 문제와 더 큰 관계가 있다는 거다.

바미당은 현재 29명 의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년 총선 전에 분명히 갈라설 수밖에 없다. 그걸 뻔히 아니까, 한 쪽에서는 자한당행을 원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민평당과 합당하고 싶고, 양쪽이 껄끄러운 입장에서는 제3지대 운운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제3지대는 뻘소리에 불과하고 이건 안철수가 돌아온다고 한들 될 일이 없는 상황인지라 대세는 양분. 양분 되는데 민평당으로 갈 자들과 더민당으로 갈 자들이 또 나뉠 거고.

민평당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짱구를 굴리면서 독자생존을 결행할지 아니면 그냥 다 까고 더민당으로 기어들어갈지를 고민할 거다. 그 판단의 기준은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될 터인데 이거 만만치 않다. 호남 사람들을 알로 보지 않고서야 호남의 유권자들이 이번에더 더민당 제끼고 민평당 지지해줄 거라고 착각할 수는 없을 터. 지역기반에서부터 흔들린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까이꺼 패스트트랙 태워서 올려놓은 선거법 개혁안 돼봐야 별로 티도 안 날 거고, 그러면 굳이 민평당 간판 걸고 버틸 이유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거대 양당체제로 정계가 재편될 것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되면 자한당은 물론이려니와 더민당도 굳이 비례대표 확대에 의미를 둘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법안의 처리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 법안 처리가 나가리 될 가능성이 높으며, 되더라도 질이 더 떨어지게 만들 수 있게 된다. 결국 여야 4당이 합의를 했다는 이 패스트트랙 안은 실제로는 정의당을 뺀 나머지들은 안 될 걸 아니까 합의해준 것에 불과하다. 자한당은 안 될 걸 알면서도 때는 이때다 하고 노이즈를 내는 거고.

이런 상황에서 "법학은 이론의 체계이지만 법률은 정치의 산물"이라는 신선놀음같은 소리 하고 있는 조국이 곱게 보일 수가 없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지금 자신이 법학자로서 처신하고 있는 것인지, 청와대의 핵관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처신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부터 조국은 헷갈리고 있는 처지다. 정말 이 참에 목소리는 높이면서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는 위치에서 나와 부산에서 출마를 하든 뭘 하든 똥물에 발 담그고 현실정치의 구린 맛을 한 번 봤으면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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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3 10:13 2019/04/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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