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경복궁이고, 국민청원게시판은 신문고고, 대통령은 제왕이고?

청와대가 설치한 '국민청원게시판'에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올라왔는데, 내가 지금 글 올리는 시각 현재(2019.04.29. 13:36) 389,263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대단하다. 나중에라도 좀 봐야겠다 싶어 일단 링크 걸어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

난 이런 류의 게시판문화가 아주 걍 징글징글해서 ㅆㅂ 제로보드 다 망해라고 고사를 지내고픈 사람 중 하나다. 특히 이 한국 온라인의 게시판문화라는 게 기실 알고보면 관리자들이 죄다 게을러 터져서 지들이 해야 할 일을 딴 넘들이 해결해주도록 만드는데 요긴하게 사용된지라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생각되고.

물론 나도 이놈의 자게판 키워질 하면서 온라인형 멘탈을 만드는데 도움을 받았다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뭐 좀 이젠 사그라들 때도 되었는데, 이젠 아예 청와대가 나서서 이런 짓을 하고 자빠졌으니... 청와대가 게시판 돌릴 때, 처음부터 이거 완전 골때리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니 무슨 21세기 AI들이 바둑도 대신 둬주는 세상인데 하는 짓이 원시반본도 아니고 조선시대 신문고를 온라인에 옮겨 놓는 형식인데다가,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시민인지 신민인지 구분이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내 뇌구조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끝판왕을 이렇게 보게 되는데, 정당해산을 국민청원으로 진행하게 되면 이거 민주주의 꽃이 피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민주주의가 개판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과거 통진당이 해산당했을 때, 이거 뭐 민주주의국가가 이거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정권이 선봉뜨고 사법부가 입장정리하면 그냥 정치조직이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게 헌법에 민주공화국을 천명하고 있는 나라에서 가당한 일인지 사고체계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더랬는데,

아니 이제와서 이번엔 자한당 해산하자는 청원이 거센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형평의 차원에서 보자면 좌파정당을 해산할 수 있으면 우파정당도 해산할 수 있긴 하다. 여기서 통진당이 좌파냐 뭐냐는 문제는 그냥 접어두자. 해산대상으로 국무회의에 올라가고 헌재에 올라갈 때 좌익이라고 치부되었으니 거기 따라 이야기하기로 하고. 암튼, 그러니까 좌파가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파가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면 해체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계적인 형평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장 나라를 뒤집을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는 한 좌고 우고 간에 지들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도록 놔두는 게 원리다. 좌파정당 날렸으니 우파정당도 날리자고 할 게 아니라 좌파정당 날린 게 완전 개판이니 그런 시스템을 민주사회에 걸맞게 고치자고 주장하는 게 깨시민이 할 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게 뒤집어져서, 되려 깨시민인냥 하는 자들이 물경 40만 가까이가 신문고를 울려대며 정당해산하라고 난리를 친다. "전하, 저 간악무도한 자한당을 해산시켜주소서..."

비록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이 신민양성시스템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은 있었어도 그동안은 그냥 말을 아꼈는데, 이건 갈수록 가관이다. 형식에 대해 존중할 수는 없다만, 그래도 오죽하면 저기들 몰려가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싶기도 하고, 그나마 일정인원 이상이 되면 반응도 있고 하니, 직접민주주의제도가 중앙정치차원에서는 거의 제도화되어있지 않은 현실에서 갑갑한 사람들 숨통이라도 좀 되어줄까 싶어서였다.

난 통진당 해산에도 반대했듯이 그 방식에 따른 자한당 해산도 반대한다. 그럴 거면 한국에 정당제도를 둘 이유가 없다. 정당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주권자에 의해 평가받는 존재지 존립 자체를 행정부와 사법부가 좌지우지할 대상이 아니다. 지금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은 저대로 두면 그냥 인민재판정의 역할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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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14:00 2019/04/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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