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을 이름

0. 

'노동당'이라는 당명을 가진 정당이 남한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조만간 어쩌면 "있었다"로 표현될 지도 모르겠다. 일기장에나 남아 있어야 할 소회가 나름 쌓일만큼 쌓였지만, 자랑스러웠던 기억의 끝자락이기도 했고 부끄러운 기억의 중첩이기도 했으며 청춘의 정열을 바치기도 했지만 오늘의 빈한함을 예비하지 못했던 그런 순간들의 이야기들이 자꾸 불끈 거리고 있다.

1.

남한 사회에서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건설된다는 건, 반외세독립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한 이래 한 세기가 지난 후에야 논의가 되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늦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 남한 사회는 '노동당'이라는 당명을 가진 정당이 건설되기엔 이른 시기가 아니었던가싶다. 노동이라는 말이 이토록 천덕꾸러기취급을 당하는 세상에 신심을 가지고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걸고자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지 다시 생각해본다. 아, 물론 나 자신도 위로해야 하겠고.

2.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내세웠던 사람들 중에는 나와 같은 생각, 즉 남한사회 노동정치의 토대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보다는 노동계 일부 세력의 돈과 사람을 보고 이름으로 그들에게 어필하고자 했던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통합이라는 명목과 결집이라는 미명하에 정의당으로 갔다. 정의당으로 간 사람들 중에는 '노동당'이라는 이름에 사상적 애착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또 통합하고 결집하기 위해 많이들 떠났다.

3.

탈당을 한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노동당'이라는 당이 쇠락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데에는 나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정치적 책무를 완수하지 못한 자의 죄책감은 앞으로도 계속 남게 될 것이다. 탈당 이후에 그 당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인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밉고. 이런 걸 애증이라고 할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어느 누구처럼 떠난 당의 씨를 말리고자 하는 짓은 결코 할 수 없었다. 글쎄, 그 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노동당'의 상태에서 눈을 떼기는 어려웠다.

4. 

'노동당'이 당명을 '기본소득당'으로 바꿀 모양이다. 2017년 여름에도 한 번 난리가 났다가 유야무야 되었었는데, 이젠 진짜 그리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구 사회당 계열의 상위 서열들은 뒤로 물러났고, 형식적으로나마 그들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는 신진그룹이 당의 집행부를 장악했다. 형식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 집행부의 행태는 구 사회당 계열이 추진했던 정책/실천 노선을 답습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최소한 2017년 당시만큼이라도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거의 사라졌다. 아마도 당대회는 현 집행부의 생각대로 진행될 것이고 이제 남한 사회에서 '노동당'이라는 당명은 사라지게 될 듯하다.

5. 

약간의 반발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명개정 반대의 목소리도 몇몇이 내고는 있다. 그런데 당명개정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지난 약 4년에 걸친 기간 동안 구 사회당계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김길오 사조직에서 함께 움직이면서도 노동당을 어떻게든 정상화시켜보자고 만들었던 조직에 양다리를 걸치고 프락션을 했던 자도 있고, 현재 집행부가 저리 들쑤시고 움직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자도 있다. 그 때는 이리 될 줄 몰랐던가? 그냥 지금이라도 차라리 다시 머리 숙이고 들어가 기본소득당에서 당협위원장이라도 하지들 뭘 반대를 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6.

할 말은 많지만 아직은 가슴에 남겨두어야 하겠다. 이러다가 세월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종내 입을 닫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거 대로 괜찮다. 다만, 저들이 기획하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이제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놔줬으면 좋겠다. 기본소득당을 하든 김길오신당이라고 하든 그건 알아서들 하고. 그러면 나도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다시 내 가슴에 남길 수 있을 듯하다.

뱀발>

기본소득당이라... 하긴 뭐 요샌 개나 소나 다 기본소득이라고 하니 그거 지들 거라고 선언하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 걷기만 해도 받을 수 있다는 신종 '녹색기본소득'이니 뭐니 하면서 기여분에 대한 수당조차도 기본소득이라고 이름붙이는 게 일종의 트랜드가 된 마당에, 저작권이 지들에게 있다고 믿는 자들이 아예 자기 조직의 이름을 그걸로 바꾸겠다는 게 뭐 문젠가? 오히려 저 '녹색기본소득'이니 뭐니 하면서 시류에 편승하는 자들이 나대는 게 더 문제지. 

기본소득 열심히들 하기 바란다. 뭐 나도 꽁으로 돈 준다면 안 받을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돈이 궁한 처진데 땡큐지 뭐. 하지만 그걸 무슨 대안체계처럼 이야기하는 자들, 종래 그 가면이 벗겨지고 나면 뭐라고 할지는 궁금하다. 저 신종 '녹색기본소득' 이야기하던 자들이 과거에 민중의 집이 구원의 거처가 될 것처럼 구라치고 다녔었는데, 오늘날 그 민중의 집 프로젝트가 기실 개뿔이나 암 것도 아니었다는 게 확인된 마당에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물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고. 애초부터 민중의 집 프로젝트는 진보정치/노동정치/지역정치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들 개인정치프로젝트였으니. 거기 놀아난 것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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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11:05 2019/05/1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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