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한때, 운동권들 사이에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얼마나 쉽게 해야 하는가를 두고 한참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다. 한 쪽에서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을 골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다른 쪽에서는 주의주장이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서로 공방이 있었다. 쉽게 해야 한다는 쪽에 대해서는 대중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어려워도 된다는 쪽에 대해서는 대중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자기 가치관의 기준은 대중이었는데, 난 이 논란의 와중에 어느쪽에도 끼지 못하는 비겁한 위치에 있었다.
두 입장 모두 경청할만한 내용이 있었고, 또는 두 입장 모두 비판할 부분이 있었는데, 양비양시를 하기도 곤란한 처지라 입을 다물었다. 그 배경에는 두 입장에 모두 친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쪽으로부터도 욕먹고싶지 않은 거, 그런 거 있잖은가.
그런데 그 당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발화를 어떻게 하든 간에 그걸 받아들일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는 거다. 어차피 자기가 필요하면 어려운 말이라고 해도 사전을 찾든지 물어보든지 해가며 다 소화하게 되어 있다. 자기에게 필요 없으면 굳이 쉽게 이야기해봐야 듣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대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뭘 이야기하고 있는지가 아닐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한 줄이 뜨겁게 논란거리가 되었나보다. '기생충'이 많은 이들의 관심거리이긴 한갑다. 뭐 한 줄 평에 대해서는 내가 이러구저러구 할 사안이 아니니 됐고, 다만 '기생충'에 대한 온갖 글들을 원치 않아도 보게 되는 상황인데, 그러다보니 누군가 '기생충' 보러 안가냐고 물었을 때, 그닥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더 심각한 건, 괜히 '기생충' 보다가는 생각하기도 싫은 어떤 일들을 생각하게 되다가 기어코 끊었던 담배까지 피우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흐...
아, 한 가지 더 든 생각은, 뭔 글을 이따위로 어렵게 썼냐는 비판들 중 상당수는 동의하기 어려운 게, 그 내용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그저 내가 읽기 어려우니 너는 글을 쉽게 써라라고 요구하는 그런 류의 비판을 보면, 아놔... 이건 뭐 그냥 밥 떠먹여 달라는 주장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다. 세상 너무 편하게 살려고 그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