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는 어디까지가 직접민주주의인가?

서울시 조례 중에 "서울특별시 시민민주주의 기본조례(이하 기본조례)"라는 게 있다. 작년에 만들어지고 이번 5월부터 시행된 조례다. 이 조례는 시민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1조) 것인데, 이 조례에서 정의하는 "시민민주주의"란 시민들이 시의 의사결정 과정에 자발적으로 차명하는 시정운영체계라고 한다.(2조 2호)

기본조례에서 정하는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서울 민주주의위원회"라는 기구의 구성이다. 독립적인 사무기구를 가지며 시민민주주의와 관련된 각종 사안을 심의 조정하며 게다가 합의제 기관이다. 기본조례가 정상시행되기 위해서는 이 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한데, 당 조례에 규정된 사항만으로는 구체적인 위원회 구성과 소관사무의 분장 등에 근거가 부족하여 서울시장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기구 설치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하 조례안)"이 서울시의회에서 논의되었다.

그런데 이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소관 위원회에서 지적된 가장 큰 문제점은 시민민주주의위원회의 권한 중 예산/사업 심의권한인 것으로 보인다. 심의되는 예산의 비중도 비중이지만 이러한 위원회의 권한이 시의회의 권한을 침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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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시민민주주의위원회에 대해 "설치된다면 사실상 전국 최초로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틀이 마련되는 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기본조례는 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위원의 자격은 5년이상 재직 경력의 4급이상 고위 공무원, 부교수 이상의 직에 상당하는 직에 5년 이상 재직한 전문인, 법조 등 자격인으로 5년 이상 재직경력자, 시민단체 10년 이상 경력자이다.(10조) 이러한 사람들 중에 시의회나 구청장협의회, 서울시 특정 공무원 등이 추천하면 시장이 위촉한다.(9조)

이렇게 구성되는 위원회가 어떻게 '직접민주주의의 틀'이 될 수 있을까? 그 근거는 기본조례 7조가 규정하고 있는 민주주의 위원회의 업무규정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특히 '시민민주주의'와 직접 관련 있는 업무는, (1) 시민민주주의 계획에 관한 사항, (2) 민관협치에 관한 사항, (3) 서울특별시 위원회 운영 계획에 관한 사항, (4) 마을공동체 계획에 관한 사항, (5) 시민참여 숙의예산제 운영 계획에 관한 사항이다.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직접민주주의'의 개념이 기본조례 7조와 연결되려면, 저 '시민민주주의 계획'이 서울시민의 직접참여가 가능한 장을 만드는 등의 계획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계획이 어떤 게 나올 수 있을까? 서울시민투표제?

기본조례에 규정된 위원회의 소관사무 중 직접민주주의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당 규정들은 시가 계획하고 의회가 조정하여 시가 집행할 일이다. 이 과정에 위원회를 만들어서 시의 계획수립이나 시장의 판단 및 이후 집행에 일정하게 기여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게 직접민주주의로 이야기될 뭔가가 기본조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위원회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 건 내 기억에 아마도 김대중 정부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 당시만해도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나름 그 긍정성에 기대를 했던 이유는 이전의 정권들이 절차적 측면의 민주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이념적 측면의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일방향적인 면이 그대로 있어서 독재정권이 남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의견이 제출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과연 이런 의미가 여전히 유효할까? 난 노무현 정부 이래 이런저런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오히려 정부의 반민주성을 위장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만.

그러나 위원회는 어떤 형태가 되든 '직접민주주의'의 형태가 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어떤 '직접민주주의'에 관한 내용들이 생산되더라도 그것이 '직접민주주의'라고 평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요컨대 '직접민주주의'의 개념이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여 사안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바뀌지 않는 한, 저렇게 위원회 꾸려서 할만한 직접민주제는 뭐 별 거 없다는 거다. 직접민주제로 할 수 있는 절차라는 건 발안제, 투표제, 소환제인데 지방자치차원에서는 그 실질적 한계의 유무는 차치하고 이미 법제화 되어 있는데다가 개헌이 된다면 아마도 이 제도들이 가장 먼저 새 헌법안에 삽입될 것이다.

그거 말고, 직접민주주의가 저 위원회를 통해 구상될 것이 뭐 어떤 것이 있는지, 어차피 사업의 계획이나 사안에 대한 대응을 직접민주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건 의회에서도 가능한 건데, 굳이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질 이유가 있는 건지, 그렇게 해서 또 어떤 거대 기구를 만들고 그 기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필요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위원회의 구성이라든가 지위 및 소관업무를 보면, 이건 서울시장이 의회를 회피하거나 압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구가 아닌가 싶다. 형식적으로보자면 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나, 이 위원회는 실제로 서울시 의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앞서 보았던 7조 소관업무 중 "시민민주주의 계획에 관한 사항"인데, 이 사항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실질적으로 서울시가 하는 모든 일 또는 시장이 하고픈 모든 일에 대해 "계획"을 할 수 있다.(18조)

해당 규정은 어떠한 범주나 한계도 설정해놓고 있지 않아서,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이게 시민의 뜻이요"라고 정의된 '기본계획'이라면 뭐든지 내놓을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제시되는 '계획'은 직접민주주라는 미명하에 시민들의 의사를 등에 업은 것으로 간주됨으로써 의회를 압박하는 장치가 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심각한 건 이 계획은 주민투표라는 '직접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의기구인 의회도 아닌, 시장이 위촉한 몇몇 위원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청회를 하든 뭘 하든 '민주적' 절차를 거치겠지만, 어차피 결정은 위원회와 시장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이게 '직접민주주의'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건 그냥 대의기구 무력화 장치일 뿐이다. 잠재적이긴 하지만. 어차피 그 잠재성이라는 건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박원순 시장의 선의를 믿더라도 언제까지 개인의 선의를 믿어야 하는가? 개인의 선의에 의지하지 않고자 지향하는 체제가 민주주의체제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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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09:29 2019/06/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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