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강요되는 시간
1. 솔론의 ‘중립 금지법’
설이 분분하긴 하지만 널리 익숙한 설에 따르자면, 아테네인들이 솔론을 집행 조정자에 앉힌 건 부자와 빈자 모두가 기대를 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보자면 좌파와 우파로부터 공히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위치라는 거다. 왕족 출신이지만 가산 거덜난 덕에 거지노릇을 하다가 자수성가하여 자본가의 반열에 올라선 성장배경 덕이었단다. 부자들 입장에서 보면 있는 놈이니 빨갱이짓 하지는 못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빈자들 입장에서 보면 고생 깨나 했던 놈이니 못사는 설움을 살펴주겠거니 했던 듯하다. 아무튼 대립하는 양 계급으로부터 동시에 인정받은 솔론은 그 여세를 몰아 개혁을 주도한다.
고대 그리스의 7현자를 꼽을 때면 빠지지 않는다는 솔론의 개혁은 정치, 행정, 군사, 경제 등 사회 전방위적으로 시행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생략. 어쨌거나 이렇게 개혁을 추진하던 중 ‘중립 금지법’을 제정한다. 이 법은 “도시에서 내란이 일어났을 때 무기를 들지 않고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사람은 불명예를 당하고 폴리스의 공적인 일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시민은 반드시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워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거다. 대단히 급진적인 법률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솔론의 개혁은 미완으로 그치고 만다. 애초 그를 지지했던 양쪽은 모두 등을 돌렸다. 부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뭐 고갱이 빼먹듯 기득권을 박탈하는 것처럼 보였고, 빈자들 입장에선 도대체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개혁이라고는 개뿔이나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것으로 느껴졌을 터이다. 권좌에서 물러나던 솔론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어쩌면 그가 이야기한 “중립 금지”는 나의 개혁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적대할 것인가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물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 시민들이 은근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희망했던 솔론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아테네의 시민들이 이게 지금 솔론의 편을 들어야지 말지를 선택하기 어렵도록 솔론 스스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 중립을 위해 준비된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
존 F 케네디의 연설로 유명해졌다는 문구가 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케네디는 이 문구를 단테의 말이라고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테의 신곡에 이런 문구가 있다면서 잘 가져다 써먹은 말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단테의 신곡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주장한 케네디의 말은 소위 ‘가짜뉴스’임이 밝혀졌다. 단테의 신곡에는 그런 문구가 없다는 것이다. 뭐 이것도 자세한 내막은 역시 생략.
케네디는 이 문구를 여러 번 써먹은 것으로 보인다. 1956년에도 써먹었고, 1960년에도 써먹었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써먹었다고 하니 자기가 생각해도 제법 그럴싸했기에 사골 곰국 우리듯 우려먹었겠지. 그나저나 아폴로 11호를 달로 보내 달나라 달토끼 이야기가 죄다 개구라였음을 증명할 정도로 능력 있는 케네디가, 게다가 신곡이라는 불멸의 저작을 쓰신 단테님의 이름을 빌려 중립을 지키면 죄다 지옥행! 이렇게 선언을 해버렸으니 결정능력이 부족한 주제에 예배당까지 다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상당한 공포를 느꼈음직도 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약해빠진 것이던가.
아무튼 나는 케네디의 이 말도 역시 “내 편 들 거여 말거여?”라고 묻는 것처럼 생각된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태도의 설정이 자칫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 시기, 예컨대 케네디 집권기에 미/소를 중심으로 하는 냉전의 격화시기 같은, 어쩌면 더 적나라하게는 한국전쟁 전후의 극심한 좌우 대립시기와 같은 그런 시기에, 너 우리 편이 될래 아니면 쟤네 편이 될래, 확실하게 정하라고 요구하는 건, 글쎄다, 그게 어디 단 칼에 무자르 듯 쉽게 될 일일까?
3. 이성적 판단을 유보하라는 요청으로서 중립금지
요즘 페북은 물론이려니와 온오프 어디에서도 이런 요구를 받는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태도를 정하라!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요구. 친일파 할래, 애국자 할래? “ ‘전쟁’은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 아놔, 나는 애국자인가 이적분자인가? 적인가 동지인가? 졸지에 칼 슈미트적 정치의 요체를 현실로 꺼내놓은 법학교수출신 조국 수석의 법적 견지로 볼 때, 내가 만일 애국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나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자로 처벌받을 것인가?
조국식 이분법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페북을 비롯한 온라인이고 막걸리 한 잔 걸치자고 만난 오프라인이고 간에 너 누구 편이냐는 질문이 횡행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입장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지게 되며, 귀 얇은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이 말에는 이런 부분이 옳고 저 말에는 저런 부분이 옳지만, 한편으로는 이 말에는 이런 부분이 그르고 저 말에는 저런 부분이 그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쪽에 솔깃했다가 저 이야기를 들으면 저쪽으로 슬몃 마음이 동하는 널뛰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약간은 넋이 빠질 지경이다. 어쩌면 이렇게들 주관이 분명하면서도 지극히 논리적이고 단칼에 피아를 가를 정도로 결단력들이 있으신지.
‘중립’이라는 대단히 모호한 용어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모호한 용어이다. 긍정적으로 봤을 때는 모두의 편이지만 부정적으로 봤을 때는 모두의 적이 되어버리는 상태가 중립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중립’인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누구나 자신의 견해가 있으며, 그 견해는 매우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다른 수많은 사람과 사건과 결합하면서 모 아니면 도로 분류되지 못하는 지대를 가지게 된다. 나는 중립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입장이지만, 태도가 모호하거나 입장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여 중립이 아니라면 태도를 취하라고 강권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정도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솔론의 경우나 케네디의 경우에서처럼, 나는 중립을 비난하는 혹은 중립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어떤 입장들은 그 요구를 하는 자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의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