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방안이라...
내가 아는 한 거의 최후의 로맨티스트이자 휴머니스트인 장규형은 노동시장의 불평등 내지 분단을 해소시킬 방안 세 가지를 거론한다. 장규형이 이야기하는 세 가지 방안은 이렇다.
첫째, 상층 노동시장의 특권을 줄이면서 문호를 넓히는 것. 둘째, 하층 노동시장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 셋째, 노동시장 간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것.
훌륭한 제언이지만, 기실 이러한 방안은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런 방안을 해보려고 하지 않는 현실도 문제지만, 방안의 실현이 곧장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효과를 가져오지도 않는다. 요컨대 답은 질문 안에 있다. 즉 노동시장 자체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차별철폐만이 불평등 해소의 효과를 가져온다.
상층 노동시장의 문호를 넓힌다고 할 때 아마도 가장 우선은 전문직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될 터이다. 그러한 문호확장이 필요한 예를 들자면 아마도 판사를 들 수 있겠다. 2014년 법무부가 내놓은 판검사 증원안에 따라 그동안 판사의 수가 늘었다.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바, 올해까지 3200명이 훌쩍 넘는 판사가 활동하게 된다. 물론 이 중에서 여러 사정에 의하여 실제 가동되는 법관의 수는 약 10% 쯤 빠진 정도에서 계산될 것이다.
한해 판사들이 다루는 사건이 1,233건이 넘는다고 한다. 2018년 집계이지만 지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자, 여기서 판사의 문호를 넓혀서 지금보다 한 10배 정도 판사를 증원한다고 치자. 대충 약 3만명의 판사가 활동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3만명의 판사라면 무진장 많은 숫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가 4300만명이 넘는 한국의 경우, 직업으로 판사를 하는 사람의 숫자는 전체 대비할 때 약 140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의사나 변호사를 그렇게 늘리면 어떨까? 법무사 노무사 회계사 변리사 한의사 약사... 뭐 당장 생각나는 전문직이 이정도인데, 이들 숫자를 10배 정도씩 늘려봐야 인구전체로 보자면 그냥 새발의 피다. 그럼 전문직 말고 대기업 정규직의 숫자를 늘리는 방안을 살펴보자. 이건 좀 더 심각한 문제인데, 국가가 그 자격부여의 사무를 관장하고 일자리를 보장하고 있는 각 전문직이야 정부가 나서서 확 늘려버리면 되겠지만, 대기업 정규직 채용을 국가가 어디까지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상층노동시장의 문호확장은 한계가 너무 뻔히 보이는 대책이다. 게다가 전문직이라고 해서 그 직역이기주의를 뚫는다는 게 쉽지도 않을 것이고. 둘째, 셋째 방안 역시 이건 기업들의 태도에 전적으로 성패여부가 달린 방안이다. 자, 이쯤 되면 결국 해야 하는 건 혁명밖에 남는 게 없는 것인가...
노동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모색의 필요성에 대해선 뭐 두 말 할 나위 없이 동의하고, 나도 그동안 무수하게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대학 들어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사회를 만드는 거다. 여성도 남성에 비해 임금이나 처우에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학벌따위 일해서 먹고 사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더 나가 쥐뿔도 아닌 시험성적을 공정성으로 등치시키는 닭대가리들의 뚝배기를 해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필요하고.
문제는 이러한 필요를 시대정신으로 승격시키고 사회의제화하면서 정치적 프레임을 형성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느냐이다. 있나? 어헠ㅋㅋ 없다. 좌파정당이라고 할만한 정당들은 정치력이 없거나 우경화되어버렸다. 그나마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결합한 민주노총은 이미 남한 최대 통일운동조직이 되었을 뿐 이러한 사회의제화의 동력을 잃었다. 그렇다고 한국노총에게 바랄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장규형이 목놓아 부르짖는 저 알량한 방안들조차 현실적으로 밀고 나갈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뭐 좀 해보자고 할라니 정당이고 총연맹이고 시큰둥 하게 서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난데없이 조국수호의 전선으로 뛰어들지 않나, 시계를 1919년으로 되돌려 만세운동을 조직하지 않나...
추석도 지나고 했으니 사람들 좀 만나서 이야기나 들어봐야겠다. 뭐 뾰족한 수야 당장 나오질 않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답답하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사람이라도 붙들어봐야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