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반란이 새삼스러운 역사학자라...
하도 헛소리를 많이 늘어놓는 사람인지라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남쪽 어디 대학에서 교수자리 하고 있는 사람의 글인데, 다른 글들과 달리 이 글을 걸고 넘어지는 건 그가 글머리에 역사학자의 소임을 운운하기 때문이다. 학자의 소임. 그것도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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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는 어떤 사건이 나고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그것의 의의를 찾는 일을 맨 먼저 하곤 한다. 소위 조국 사태의 첫번째 역사적 의의는 검찰과 언론의 반란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노골적인 모반이 가장 중요한 의의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의의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소위 스펙 안에 든 계급, 세대가 아닌 계급의 문제다. 그런데 지식인 층이나 진보 일부는 후자는 매우 큰 의의로 두는 반면 전자는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와 그들과 생각이 다른 지점은 현실성에 있다. 전자를 이루지 않고서 후자를 이루려 하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본다. 그런데도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후자만 강조한다. 계급 문제가 민주주의 문제보다 더 진보적이고 본질적이라는 착시이자 진보성의 과시라고 본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의 권력을 위협하는 권력층이 존재하는데도 계급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단 말인가? 주장과 담론과 당위성이 아닌 현실 가능성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의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을 청산하려는 전쟁을 치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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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도대체 이넘의 것은 링크를 어떻게 걸어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겄네. 지난번엔 어떻게 되더니 이건 또 왜 안 되는 건지... 암튼 본문을 긁었다.
이 '역사학자'씩이나 된 인물은 이번 조국사태가 남긴 의의의 첫 번째로 검찰과 언론의 반란을 꼽는다. 이 반란의 본질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을 검찰권력이 위협하는 것이며 이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문제는 계급문제보다 우선하며, 따라서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과의 전쟁이었다는 의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난 이 이야기가 어떤 정신나간 넘이 뒷골목에 퍼질러 앉아 주절거리는 소리라면 그냥 웃고 말겠는데, '역사학자'이자 교수씩이나 하는 자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받아주질 못하겠다. 왜냐, 우선 검찰과 언론이 국민이 선출한 권력을 위협한 게 이번이 처음인가? '역사학자'라면 엔간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텐데 검찰과 언론의 반동이 이번 건보다 더 심각했던 일이 없었나?
없기는커녕 한 두 번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수도 없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논두렁 시계사건이다. 그 외에도 건건이 따지면 검찰과 언론이 반민주적 반동행위를 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학에 대해선 개콧구녕의 코털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조차 구글 몇 변 돌리면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역사학자씩이나 된 자가 새삼스레 검찰과 언론의 반동적 작태를 확인하고 이들과 전쟁을 치른 게 이번 사태의 의의라고?
그렇게 따지면, 박근혜 정권에 대해 검찰과 언론이 기냥 앉아서 긴 건 민주주의에 대한 승복이었나? 아, 원래 반민주적인 것들이었으니 반민주적 정권과 아다리가 맞았을 뿐이라고 할 건가? 뭔 헛소린지... 아니 ㅆㅂ 그럼 예전에 검찰과 언론이 저 주접을 쌀 때, 도대체 이 민주화세력은 뭘 했던가? 뭘 했냐고? 평검사와의 대화를 했지... 검찰조직을 분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어쭈쭈쭈쭈... 해주면서 달랠라고 했지. 그러곤 그 사달이 났고.
이번엔 다른가? 뭐? 전쟁을 치러? 웃기고 자빠졌다. 조직체계의 근간을 뒤집을 방안은 없이, 기껏 뭐 공수처 설치한다고 하고, 법무부에서 자리 몇 개 빼고 그러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칼을 휘두르라"면서 진짜 칼잡이를 검찰 수장에 앉힌 게 이 정권이다. 어라? 지난번하고 별 차이가 없네? 조국이 검찰과 대화까지 한다네? 이걸 전쟁이라고 하나? 역사학자는 이런 걸 전쟁이라고 하나? 이 역사학자는 아마도 세계 전쟁사에 대해선 전공이 아닌 듯 하나 이 사람이 그동안 올린 글을 보면 전쟁사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다.
더 웃기는 건, 계급문제가 본질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본질이라는 발상이다. 역사학자가, 무려 역사학자가 이런 저렴한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한국 역사학의 불행이다. 역사적으로 계급문제가 곧 민주주의의 문제였다. 특히 민주주의를 누가 어떻게 전유하는지가 바로 계급투쟁의 과정이었음은 '역사학자'들이 그동안 검증했던 바다. 한국의 헌법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이 체제가 수용한 민주주의의 성격을 선언했을 때,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를 둘러싼 계급의 각축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패배했음을 확인하는 절차였단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은 총칼을 휘두르던 군화발 아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피를 흘리는 것이었고.
그런데 이제, 민주주의와 계급문제가 전혀 별개의, 더 나가 운선순위가 나뉘는 문제로 정립된다. 무려 역사학자에 의해. 물론 이 역사학자는 검찰문제는 제껴놓고 계급문제만 이야기하는 '일부 진보 진영'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그거다. 어차피 계급문제를 논하는 입장에서 검찰따위 계급문제=민주주의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다룰 문제지 검찰문제를 따로 떼어 놓고 이야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학자'의 인식이 어디서 출발하는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꺼내들기도 무색하지만, 이건 그냥 서 있는 자리가 어딘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 사람은 진보가 어쩌고 현실정치가 어쩌고 말은 많은데, 결과적으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이해에 충실한 사람이다. 이 시대에 대학 교수를 하고 있는 기득권자로서, 일정한 자산과 지위를 확보한 상위계층의 사람으로서, 제도의 보장 속에서 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로서, 조국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따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좀 사소한 일에 발끈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이번 글도 이 자가 자기 글을 시작하면서 '역사학자' 운운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짜증이 나진 않았을지 모르겠다. 가소롭기 그지없는 글을 올리면서도 '역사학자'라는 권위를 앞세워 마치 그 글이 진리인 듯한 냄새를 풍겨 사람들을 꼬으려는 짓이 아니꼽기도 했다. 물론 유명하신 분이고, 역사학자시고, 교수님이시니 사람들이 많이 꼬이겠지만.